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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Oct 25. 2022

첫째 딸은 살림밑천

칠면조 아빠의 미운 오리 #4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재혼가정이다. 엄마가 100일이 되던 날 엄마의 아빠는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할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어린아이를 시댁에 맡긴 채 부산으로 와 일 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산후 붓기도 빠지지 않은 퉁퉁 부은 몸으로 증명사진 찍고 이력서를 내셨다.

 (우연히 할머니 젊은 시절 증명사진을 보았는데 영락없이 동생 얼굴과 똑같아 놀라웠다. 할머니 젊은 시절 얼굴이 내 동생이라면 동생의 미래 얼굴은 지금의 할머니 모습일까? 하며 웃으며 보았다. 그리고 그 사진은 폰에 저장해 두고 여기저기 보여주기도 했다.)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두고 온 할머니 마음은 애달팠다고 했다. 어떻게는 먹고살아야 했는데 할머니는 딸이라며 한글 공부도 배우지 못하였고 삶이 호락호락하지 못했다. 다행히 서면의 동보극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몇 년 뒤 고향 어르신의 중매로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할아버지는 엄마보다 한 살 어린 이모를 데리고 재혼했다.(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잘 생겨서 결혼했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도 할머니가 고와 결혼했다고 했다. 재혼이여도 외모가 중요했던 거 같다.) 엄마는 바로 같이 살지는 못했다. 친가 외가 친척집을 오가며 지냈으며 엄마를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 쪽 어느 어르신이 데려다 키워놓으면 사람 구실 한다고 보답할 거라며 어린 거 데리고 와 키워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차가운 눈길로 쳐다보고 무시라고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길에서 마주치면 할아버지는 모르는 아이를 본 거처럼 눈길도 안 주고 지나치거나, 사람들 앞에서  

"모지리야. 넌 이런 것도 모르지? 네가 알리가 있나?" 하는 모욕감을 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기죽기 싫어서 다 대답을 했고, 할아버지는 혼자 더 성을 냈다고 한다. 그냥 모르는 척했으면 더 나았을까? 싶어 모르는 척하면 좋아라 웃으면서

"더러운 피의 자식, 더러운 년 " 이라며 어린아이에게 심한 폭언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설움을 이겨내기 위해 골방에서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었으나 할머니가 줄줄이 출산을 하며 동생들이 태어나니 엄마는 아기 기저귀 갈랴, 청소하랴 바빴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는데 할아버지가 데리고 온 딸과 성적이 꽤 차이가 나 할아버지 속은 더 부글부글 끓어 엄마를 더 괴롭혔다고 한다.  결국 어릴 적에 할아버지의 반대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흔하지 않은 초졸이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곧잘 잘해 그 당시 고무신 신고 다니는 학생이 아닌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다녀 당연히 중학교는 진학할 거라 믿고 있었다고 한다. 6학년 담임 선생님도 집에 찾아와 중학교 꼭 보내야 한다며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해 달라며 빌어도 보았고 형편이 어려우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학교라도 보내시는 게 어떻냐고 해도 결사코 보내지 않고 옷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시켰다.

그의 반해 이모와 삼촌은 중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까지 다 나왔다. 엄마는 12살에 공장에 들어가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때 사귄 친구들이랑 종종 만나 공장 다니던 추억을 이야기해줄 때가 많다. 머리도 좋고 손재주도 좋아 일을 금방 익혔고 에이스였다며 자랑했다. 공부에 미련이 남았지만 추억을 들어보면 그 또한 엄마는 잘 지내고 있었다. 엄마 월급으로 가정에 도움이 되고 동생들 학비에 용돈도 쥐어주고 하니 뿌듯했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하며 할아버지 말을 잘 들으면 훗날 야간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기대감도 있었다고 한다. 가끔 이야기를 꺼내면 엄청난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엄마도 학교를 포기하게 되었다. 집에서 책만 읽고 있어도 공부하는 줄 알고 뭐라 하니 공장에서 마음이 더 편하고 집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시절에 읽은 소설책 하나가 엄마 가슴에 콕 박혀 종종 그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는데 세월이 흘러 제목과 내용이 흐릿하지만 일본 소설 이라며 기억나는 구절을 들러주시곤 했다. 엄마의 마음을 달래준 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엄마 어린 시절 이야기 들으면 먹먹해진다. 엄마의 강인한 정신력과 생활력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 거 같다.

엄마가 월급에서 돈을 빼돌려 엄마 몫으로 비상금을 만들고 싶어도 할아버지가 공장에 인맥이 있어 월급 얼마 받았는지 알고 있었고 월급날도 이미 알고 있어 할아버지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월급날만큼은 할아버지는 세상 다정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보고 칠면조 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언제 돌변해서 애를 잡을지 모르는 푸드덕 거리는 성격이라며 칠면조 아빠라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였다고 한다. 한 번도 엄마 편을 들지 않고 그냥 머리 조아리라 용서를 구하라며 엄마를 다그치기만 했다. 엄마는 저자세로만 사는 할머니 모습이 더 화가 났다고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할아버지와 엄마의 대첩이 일어났다. 엄마 친구가 할아버지의 조카를 좋아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같이 어울리니 엄마가 좋아하는 줄 알고 불같이 화를 냈다. 엄마는 억울해 있는 힘을 다해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말리던 할머니는 매정하게 엄마를 쫓아냈다. 그때 나이 17살 늦은 밤 비는 오고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다방에 찾아갔다. 다방 안 작은 골방에서 하룻밤 잘 수 있게 되었는데 양아치 같은 놈이 엄마를 범해버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날이었다. 엄마는 그날을 생각하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용서가 안된다고 한다.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아니, 돈이라도 쥐어주며 나가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몸도 마음도 상처가 깊은 채 가출을 하게 되었다. 잠깐의 방황 끝에 엄마는 다시 집에 들어갔다. 구박하는 아빠라도 의지가 되는 든든한 분이라 생각했다. 하나, 그 불상사 당한 것도 엄마 탓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그렇게 시집가기 전까지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월급을 갖다 바치는 살림밑천이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 할아버지 말을 잘 들으며 지내진 않았다. 미친개처럼 더 짖어대니 할아버지도 더 이상 심하게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그냥 네가 좀 참아라. 화내지 마라. 하며 여전히 엄마만 자중시켰다.



 엄마는 비상금을 만들었다. 공장 휴식시간에 장사를 했다고 한다. 공장장도 어린아이가 생활력이 강하다며 기특해서 허락해주어 구내매점처럼 장사를 했다고 한다. 쥐포를 구워 팔거나 군고구마, 달고나 등등 요깃거리 팔았다고 했다. 할머니도 재료 조달에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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