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않았다. 며칠 뒤 엄마는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엄마, 이게 말이가? 아빠 유언이였나? 내가 여태 이 집에 해온 게 있는데 자식도 아니가? 이름도 안 쓰여있고 동생들이라고 생각한 애들한테서 아무도 연락 없었다. 애들이 그날 할아버지 병문안 간다고 안 갔으면 장례 치렀는지도 몰랐을 거다. 내가 뭐가 그리 잘못했다고 장례식장에도 안 부르는데..." 하고 한 맺힌 소리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내 죽어도 장례식에도 오지 마라"
"엄마 말이가! 내가 엄마 딸인데 왜 못 가는데.. 왜!"
"니는 할 만큼 했다. 살아생전에 이렇게 보고 죽어서는 보지 말자."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너무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너무 분해 길길이 날뛰었다. 이모들이고 삼촌이고 문자랑 전화로 화를 내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가슴에 피멍이 든 사람처럼 미쳐갔다.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새벽에 문득 일어나 보니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난 참을 수 없어 할머니를 찾아갔다. 혼자 수척해진 얼굴로 가게에 앉아있는데 마음이 아파 도무지 따져들 질 못했다. 엄마가 이모들이랑 싸웠나 봐 하고 슬쩍 떠보니...
"못된 년들 너거 엄마 부끄럽다고 그러는 거다. 이제 앞으로 안 마주치고 살면 된다" 독하게 말하면서도 할머니 눈은 슬퍼 보였다. 자식들끼리 싸우는데 할머니 속은 편할까 싶어 할머니한테 괜히 우스게스러운 이야기 들려드리고 왔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섭섭했다. 매번 싸움이 나면 이모들에겐 쓴소리 못하고 '에고 그러지마' 하며 말리기만 하신다. 언니한테 너무 심하게 말한거 아니냐 왜 그러냐 하며 타이르지도 않는다. 다 큰 머리 혼낸다고 듣냐고 조용히 넘어가실려고 하고 고개를 돌리신다. 허나 엄마에게만 매정하게 말하는 할머니 태도가 지금도 밉다. 할머니 돌아가셔도 장례식장에 오지말라는 말은 엄마 가슴에 콕 박혀 아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여전히 이모와 엄마 관계는 좋지 않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고 나 또한 손을 놨다. 하지만 한평생 그리 살아오신 분한테 원망하진 않는다. 조금 섭섭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엄마는 갑자기 아빠와 헤어진다고 했다. 회사에서 듣고 멍해졌었다. 그러다 부부 싸움했나 보다. 그러다 곧 화해하겠지? 하며 최대한 신경 안 쓸려고 했다. 하지만 두 분은 진짜 갈라섰었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주점을 차렸고 아빠는 주점 운영하는 엄마가 싫었던 건지 집을 나갔다. 워낙 안 맞는 부분이 있었고 서로 참아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 눈엔 보였었다. 그 위기를 벗어나고자 나도 온갖 애를 쓰며 집에서 허당 짓도 하며 우스운 딸, 모자란 딸, 의젓한 딸, 애교 많은 딸 등 가면을 써갔다. 나도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엄마 아빠도 이혼은 쉬운 결정이 아니였겠지
여기며 어른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동생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거 같았다. 이혼 후 주점을 운영하면서 엄마는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매일매일 장사가 잘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장사가 잘 되는 만큼 엄마의 피로가 날로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남자 친구라며 소개를 하는 게 아닌가?
'아빠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 아저씨도 엄마도 다 싫었었다. 그냥 우리끼리 잘 사면되지 설마 재혼한다고 하지 않겠지? 하며 거부 반응이 표출되었다. 엄마도 눈치를 챈 모양새였다. 엄마는 딸들을 불러 모아 훈계를 했었다. 사람 면전에다 대고 싫은 티를 팍팍 내냐며 어쩜 그리 못돼 먹었냐고 혼을 냈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반성의 멘트를 하기 전까지 곤두서 있었다. 본디 내 성격이 진심으로 우러나지 않는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다 보니 오래 서서 훈계를 들었다. 듣다 보니 예의 있는 행동이 아님은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왜 우리끼리 살면 되지 남자가 필요하냐고 남자 없으면 안 되냐고 비꼬우듯 따졌다. 엄마는 사랑이 받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이 그리웠다. 누가 나 좋다고 매달리는데 한번 또 믿어보는 게 어떻냐고 아빠는 헌신짝 보듯 귀찮은 존재를 보듯 상대도 안 하고 뭐 말만 하면 짜증내고 말꼬리 늘어져 싸우게 되거나 아예 입 닫고 살았다. 아빠가 먼저 이렇게 살기 싫다고 이혼하자고 했고 먼저 집을 나갔는데 왜 또 만나면 안 되나? 그리 싫나? 그 사람이 싫나? 그 사람이 뭐가 싫은데?"
하고 되물었다.
이제야 본 사람 얼마나 안다고 싫다 좋다 말할 거리가 없어 입만 꾹 다물다가
"엄마 인생이니 엄마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하고 고개 돌렸다.
이혼한 아빠도 재혼한 아빠였다. 나도 친아빠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다 재혼한 아빠가 나와 동생에게 너무나도 좋은 아빠였다. 엄마에겐 좋은 남편이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그 아빠를 통해 아빠와 딸이 가지는 끈끈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던 터라 엄마의 새로운 남자 친구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특히 동생이 더 힘들어 보였다.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엄마와 난을 치르고 얼마 뒤 할머니 가게를 찾았다
할머니를 보고 나면 마음의 안정이 생겼다. 특히 엄마 때문에 화나거나 속상한 일 있으면 괜히 할머니 찾아가 하소연했다.
"할매 큰 딸 왜글노" 하면서 투덜거리고 나면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날 따스히 어루만지며 달래주셨다. 그게 참 좋았다.
그래서 찾아갔다. 할머니는 이번에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라."였다.
그런데 할머니의 말을 듣고 심통난 내 마음이 무겁지 않고 편해지는 게 아닌가.
며칠 뒤 다시 만난 엄마와 아저씨를 보는대도 한결 편안했다. 엄마에게 잘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사랑받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햇살마저 좋은 날, 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아버지가 생각나 찾아가 봤다. 할머니는 안 가봐도 된다 했지만 그래도 손녀가 한번 가봐야지 하며 찾아갔다. 병원에 도착하고 오랜만에 느껴본 차가운 할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다. 이모들도
"어! 왔나? 저 복도 끝에 보호자 대기실에 가 있어라, " 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네가 왜 오노?" 하며 물으며 고개 돌렸다.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할아버지는 또 왜 나한테 그러지? 이상하네 하며 의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가 부탁한 물품과 간호하는 이모들 드시라며 사온 음료를 내려놓고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잠시 후 이모들이 오더니 내 옆에 앉아서는
"너거 엄마 또 남자 생겼다면서? 또 재혼한데?"
"넌 그런 엄마가 이해되냐? 엄마가 엄마다워야지. 엄마라고 다 엄마가?" 하며 이모 둘이서 날 사이에 두고 시시덕거리는 꼴이 기가 찼다. 속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엄마를 이해도 해보려는 마음도 없이 엄마는 비난하기 바빴다.
그 햇살이 눈부시게 좋던 날이 내 눈엔 갈색 필터가 껴 어두워졌다. 더 이상 그 공간에 버티고 앉아있을 힘이 없었다. 착한 아이 가면에 오랫동안 갖춰 예의 있는 행동이 몸에 베인지라 엄마를 천하게만 보는 이모들에게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나왔다.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짓는 내가 한심했다. 병원 밖을 나와 걸으면서 다시 들어가 따질까? 이모들 이혼하네 마네, 이모부 바람 나서 모텔 들어가는 거 잡아다 각서 쓰게 만들게 도와주고 아파 수술하면 내 봐주며 동생들 각별히 생각하며 추억만 떠올려도 웃음 짓는 엄마인데, 행복을 찾아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그게 그리 죄인가 하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엄마의 이혼과 새 남자 친구라는 이슈 때문에 이모와 할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한심하게 차갑게 쳐다봤구나 싶어 그동안 잘 해온 행동들은 아무 소용없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100-1=0>이란 문구를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딱 이거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