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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Oct 24. 2022

부고를 알리지 않다

칠면조 아빠의 미운 오리 #1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산책을 하다 그날의 저녁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저녁 하늘... 그날의 하늘이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다 문득 동생이 할아버지가 어떠신지 보러 가자고 했다. 평소 할아버지의 할 자도 꺼내지 않는 녀석이 웬일인지 싶어

 "그래 그러자. 너 내일 학교 마치고 바로 가보자"라고 했다.

몇 해전부터 위암을 선고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할아버지가 궁금해졌나 보다.

난 할아버지보다 홀로 간호하시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바쁘지 않은 날 종종 찾아가곤 했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어 집안에 병원 침대를 설치하고 집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한없이 약해 보이셨다. 보고 오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집이랑 가까워 매일 갈 수도 있는 거리, 산책 삼아 걸어가도 10분 정도 걸릴 거리라 말이 나온 김에 가봐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먼저 가보자고 하는 동생이 신기하고 기특할 뿐이었다.


다음날 동생 하굣길에 만나 수다를 떨며 걸어갔다. 하늘이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며칠 전에 방문했을 때 할머니가 들려주신 오묘한 이야기를 동생에게 해주며 걸었다. 깊은 밤 세 명의 남자가 찾아왔다고 했다. 검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차분한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이 늦은 시간에 병문안을 온 것인가 싶어 할머니는 밥을 차려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밥을 아주 맛나게 잘 먹었으니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하면 할수록 꼭 저승사자 같았다며 들려주신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동생과 나는 바람이 차가워서 인지 소름 돋는 이야기라며 진짜 저승사자일까?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집에 도착하자 현관문이 열려있고 사촌도 이모도 보였다. 모르는 사람들도 보였다. 집 안이 뭔가 어수선하고 분주해 보였다. 동생과 나는 집안을 둘러보니 할아버지가 누워 계신 병원 침대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도 안보였다. 사람은 많은데 투명 인간이 된 거 마냥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았다. 아니 보고도 얘네들은 왜 온 거야? 하고 불청객 보듯 힐끔거리기만 했다.

사촌에게 물었다.

"돌아가셨어. 모르고 온 거야?"

돌아가셨단 말에 동생과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 말 나온 김에 왔어야 했나? 하며 후회하며 언제 돌아가셨냐고 물었더니 오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이 오후 5시인데 여태 우리 집에는 알리지 않았던 거야? 가장 가까이 사는 우리 집에 왜 알려주지 않은 거지? 엄마는 알고 있으려나? 엄마가 알았으면 우리한테도 알려줬을 텐데? 할머니 댁에서 나와 엄마에게 전화했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난 황당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힘없이 주저앉아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야 실감이 갔다. 용인에 사는 삼촌도 보이고 숙모도 보이고 다른 이모들도 다 보였다. 아니 가장 가까운 우리 가족은 모르고 다 알고 있었네? 이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반기며 장례복으로 갈아입자며 이모에게 옷을 달라고 하자

"얘네들은 안 입어도 돼!"

단호한 말에 삼촌도 우리도 머쓱했다.

그러면서 본인들 자녀에게 옷을 입어라 챙겨주었다. 그 모습에 삼촌도 뭐라 반박하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에 난 견딜 수 없어 잠시 밖으로 나왔다.

1층 안내 현판을 보고 난 기가 찼다.

우린 이 집에서 남이구나. 가족이 아니구나. 할아버지가 돌어가셔도 연락 한번 못 받고 이 장례식장에서도 푸대접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남 5녀가 아닌 1남 4녀.

박 씨가 아닌 정 씨인 우리 엄마는 단체 문자도 못 받는 손님도 못 되는 존재구나 싶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엄마 여기 오지 마! 엄마는 여기서 딸도 아니니까 오지 마, 내가 여기 있다가 갈 테니 엄마는 올 필요 없어. 여기 일은 박 씨 집안에서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의 엄마는 내가 일단 챙길게. 엄마는 울 필요도 없어. 여긴 엄마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아"

나이 50이 다 되도록 이 집안 딸로 인정을 못 받나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눈물을 닦고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으로 따졌다.

'죽을 때까지 사과 안 하시더니 유언으로 남기셨어요. 엄마 이름 장녀에 쓰지도 못하게 아니 죽어서도 엄마는 딸이 아니네요. 죽기 전에 사과 한마디 하실 줄 알았어요. 그동안 차별한 거 미안하다. 구박하고 차가운 눈초리로 본거 미안하다. 좋아하는 공부 안 시킨 거 미안하다. 고생이 많았다. 그 미안하다 한마디가 그리 힘드셨어요?'

눈이 시릴 만큼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말하고 또 말했다. 나의 소리 없는 울분은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모두들 애도하는 줄 알았을 거다.

하지만 이상했다. 미워하고 싶은데 좋았던 추억만 떠올랐다. 그래서 사진 속 할아버지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늦은 시간까지 나와 동생은 장례식장에 남아 엄마 대신 조문 온 어르신들께 인사를 다 드렸다. 인사할 때마다 욕을 들었다. 특히 고모할머니가 유별났다.

"니 애미는? 검은 머리 짐승 거두는 게 아니야. 그동안 키워줬더니 정도 없냐. 엄마 당장 오라그래!!" 하며 호통을 치셨다. 난 고개 숙이고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넌 왜 상복 안 입고 있냐? 왜 상주에 너희 엄마 이름은 없냐 너희는 상복도 안 입냐? 하며 부조리함에 한 마디 하는 어르신은 아무도 없었다.

큰 댁에서 온 삼촌과 숙모는 다 안다는 듯 날 보며 웃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밤 12시가 다가오자 삼촌이 집에 가보라며 배웅해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거 같은데 몸이 떨렸다. 몸에 기가 빠졌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방문을 꼭 닫고 있었다. 그날 밤 엄마와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이날은 10년이 넘게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날 중 하나이다.


다음날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내가 전화했을 때 거실 소파에 평소 좋아하시던 옷을 깔끔하게 입으시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엄마를 찾아왔었다.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빤히 한참 쳐다만 보시다 가셨다고 한다.


문득 지난날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건강하셨을 때 할아버지의 낙은 드라이브였다. 할아버지 소원은 나이 80살까지 운전을 하는 거라 말할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는 고향 남해를 좋아하셔 종종 남해까지 드라이브 가시는데 그때마다 내가 대신 가게를 봐드렸다.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는 기회이기 때문에 기꺼이 가게를 봐드렸다.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비도 받았다. 허나 그날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드라이브였다. 그날도 드라이브 다녀오시다 삼천포에서 회를 사 오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이 둘러앉아 즐겁게 수다 떨며 회를 먹다가 할머니가 잠시 자리 비우자 할아버지가 진중히 말씀하셨다.

"너거 엄마는 참 똑똑한 사람이다. 내가 잘 알지. 너가 엄마 닮아 똑똑한 거다.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 엄마가 고생이 많았다."

머쓱하게 난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너 좋다는 사람 있나? 무조건 너 좋다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된디. 너한테 꿈쩍 못하는 착한 녀석 말이다. 나는 여태껏 할매가 좋고 또 무서워." 하며 웃으셨다.

"에? 할매가 뭐가 무서워요. 할매 화내는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본디 화 잘 안내는 사람이 무섭지. 할매가 화 한번 내면 오금이 다 저린다. 식겁해. 그래서 할배가 할매 말을 잘 듣잖아. 너도 할배 같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할아버지의 이 따뜻한 말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았다. 사실 장례식장에서도 이 말이 맴돌았다. 난 그날 때문에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직접 사과는 못했어도 나에게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 영혼이 되어 큰 딸을 보러 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엄마는 아직 할아버지에게 미련이 남은 듯 보였다. 듣고 싶은 말 듣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해지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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