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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Nov 04. 2022

뒤틀린 자매

칠면조 아빠의 미운 오리 #6

엄마와 이모들은 참 사이좋았다. 자주 이모들이 우리 집에 오곤 했다. 이모들은 집에 오면 엄마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웃다가 집에 갔다. 엄마도 동생들이 오면 좋아했다. 특히 막냇동생과는 띠동갑이라 여전히 귀엽다고 했다. 이모가 귀엽다고? 하며 의아스러웠지만 나 또한 동생이 커도 어릴 적부터 봐와서 그런지 여전히 애 같고 귀여워 보이긴 한다.


언젠가 엄마와 이모가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이모와 삼촌 형제들끼리 계모임처럼 하고 있었다. 형제 모임을 만들어놓고 그 모임에서 우스웠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였다.

이모들이 돌아가고 엄마에게

"엄마, 엄마는 왜 저 형제 모임에 안가?" 하고 물었다. 좀 컷을 때라면 할 필요도 없는 무의미한 질문임을 알았을 텐데 그땐 어렸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빠져야 했던 모임이었고 그 누구도 엄마도 초대할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동생들이 사이좋게 지내니까 보기 좋다며 엄마는 안 모여도 이렇게 자주 보고 웃으며 지내면 된 거라 했다. 엄마는 그런 모임 나가는 것도 귀찮다면서 웃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어울리는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 귀찮을 리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굉장히 쿨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이혼하고 나와 동생을 키우고, 재혼을 하고 살아오는 과정 속에 어느 집 가정처럼 자매간의 싸움은 있었다. 말 한마디 가슴에 박혀 상처를 주고받는 자매들 간의 싸움을 난 모른 척했다. 어차피 이모들이 "언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하며 사과할 거고 그럼 엄마는 이모들을 받아줄 거니

또 싸우는 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할아버지가 몇 달 후 돌아가시고 엄마는 새아빠와 함께 할머니 가게에 갔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던 구멍가게를 이제 접으려 했다. 할머니는 글도 모르시니 혼자 운영하긴 벅찼다. 철거를 위해 일하는 아빠에게 이모들은 인사도 안 했고 형부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라 부르며 이것도 실어 버려 달라 하며 철거 업체 사람 부리듯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기가 찼다.

그날이 사단이 되어 엄마와 이모들은 틀어졌다. 엄마는 장문의 글을 문자를 보내 섭섭함을 표했다.


그 후 이모는 할머니에게 언니나 키우고 살지 왜  재혼해서 우리들까지 낳고 살았냐고 막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이 말을 듣고 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내가 이 정도인데 할머니 속은... 할머니의 슬픈 눈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그 후로 눈치를 보신다.

내가 혹은 엄마가 전화했는데 옆에 이모가 있으면 전화를 안 받거나 힘없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신다. 난 그런 할머니 태도가 더더욱 싫었다. 제발 이모들 눈치 보지 말라고 해도 안 고쳐졌다.


나도 이모들 만나는 걸 꺼려졌다. 우연히 마주치면 날 보는 시선이 차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도 귀여운 막내 이모와는 잘 지냈다. 11살 차이라도 이모랑 놀면 재미있었다. 같이 산책하며 막내 이모마저 딴 이모들처럼 차갑게 변해버린다면 견딜 수 없어질 거 같다며 털어놓았다. 이모는

"언니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행복을 찾아 사는 게 뭐가 그리 불만인데. 난 큰 언니가 행복하게 살면 된다. 거 아빠가 엄마한테 얼마나 못 된 짓 했는지 넌 모를 거다. 사람이 사랑받고 싶어서 새로운 사람 만나 사는 게 뭔 죄라고 이래 간섭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네들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혼이 대수가 너도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이모 늙고 힘없어졌다고 나중에 배신하지 말고 그럼 이모 섭섭하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하며 웃었다. 그때 난 눈물이 날 거 같은걸 참았다. 산책길 풍경을 본다며 이모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다. 막내 이모의 말이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고 여전히 막내 이모는 엄마의 귀여운 동생으로 아빠에겐" 형부! "하며 친근하게 지내는 것도 너무 좋다.



몇 해 전 추석 전 날 셋째 이모 때문에 사달이 났다. 밤에 시댁이 시끌시끌 하니 10개월 아기는 졸린데 시끄러우니 찡찡거려 들쳐 없고 밖을 거닐었다. 애를 재우다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시댁 넘어오기 전 오랜만이  삼촌이랑 숙모도 잠깐 뵈어  기쁜 마음에 전화를 했다. 시집오기 전엔 명절에 할머니 댁이 갔다 보니 숙모를 참 좋아했다. 숙모랑  통화나 할까 하며 전화했더니 할머니 옆에 이모가 있었는지 눈치 보는 목소리였다. 아랑곳 않고 통화하는데 그 순간

"오지 말라 해라!"

라는 쌀쌀맞은 말투가 들려왔다. 그 말에 기분이 잡쳤다. 할머니와 통화 대충하고 그냥 끊었다. 혼자 삭히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내가 내 할매랑 통화하는 것도 눈치 봐야 하고 내가 할매집 가든가 말든가... 왜 오지 말라고 하는 건데!! " 하며 다짜고짜 성질을 쏟아냈다.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쏟아내며 말하다보니  아이처럼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사태 파악을 했고 전화를 끊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할머니 집에 있던 이모와 엄마는 통화로 싸우게 되었다.

그 뒷날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왜 엄마에게 말해 사단을 만드냐고 하셨지만 난 여전히 화가 난 상태라 나도 막 쏟아냈다.

"이모가 뭔데 나한테 오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왜 할머니 집을 오면 안 되는데 내가 손녀인데 손녀가 할머니한테 안부전화했다가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해?" 하며 성질을 내자 웃으며 듣고 있던 삼촌이 " 이모는 원래 성격이 그 모양이다. 지 딸한테도 말 그리 한다. 너무 화내지 마라."

라고 날 달랬다.

"내가 이모 딸이야?? 왜 나한테까지 그러는데... 장례식 때부터 이모가 날 카 취급 해준 줄 아냐 내가 눈치 없는 사람이 가? 이모가 먼저 변해서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하며 애꿎은 삼촌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숙모도 내 옆으로 와 날 달래주었지만 난 굳이 한마디를 더 뱉어냈다.

"앞으로 난 이모 없다고 생각할 거고, 앞으로 마주치지도 않을 거고 마주쳐도 아는 도 안 할 거다." 하자 다들 놀라며 한탄을 했다. 옆에 있던 신랑도 날 뜯어말렸다. 그렇게 추석날 할머니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모가 이해되지 않으며 아는 체도 안 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꿈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정했던 이모들을 마주한다. 난 이모를 미워하진 못하나 보다. 섭섭한 거지...


엄마도 할머니 집 청소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모를 마주치면 이모는 엄마를 아는 채도 안 한다. 엄마가 먼저 큰소리로 말을 건네본다. 그러나 자매간의 사이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할머니는 옆에서 동생 없다 생각하고 살아라고 한다. 그런 할머니 태도가 맘에 안 든다. 치고받고 싸우더라고 자매간에 다시 사이좋게 지내라 하며 이모와 엄마에게 교육시켜야 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머리 다 커서 누가 내 말을 듣나. 다들 지 잘난 줄만 알고 콧대 세우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너도 이모 미워하지 마라. 하며 말하셨다.

그치만 그 시간이 10년이 넘어가고 점점 더 어색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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