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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May 24. 2023

연못과 물방개

1981년 똥끼의 죽음


연못 안에는 온통 희뿌연 먼지들과 이름 모를 수풀이 똥끼의 눈앞을 가렸다.


똥끼는 연못 바닥을 짚고 일어나 본능적으로 연못 가장자리를 찾기 위해 눈을 뜨고 연못 안을 둘러보았다.

마치 수천 년 전 태양을 잃고 몰락한 수중 마을에 들어온 마냥 캄캄한 그곳이 똥끼에게는 낯설었지만 신비롭게도 느껴졌다.

이따금 그토록 잡고 싶었던 붕어들이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왔지만 지금 똥끼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똥끼는 울퉁불퉁한 돌덩어리들 틈새로 고사리 손을 넣어가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기에도 버거웠다.

수중에서 호흡하는 방법을 익히기는커녕 동네 아이들이 곧잘 하는 개헤엄조차 잘하지 못했던 똥끼였지만 신기하게도 숨을 잘 참아내고 있었다.


물밖에서 똥끼와 함께 놀던 동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집으로 달려가 똥끼의 소식을 전했다.

연못은 마을 농사를 위해 요긴하게 사용했던 곳으로 장정 두 명의 키를 합친 만큼  깊은 수심이었다.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동네 사람들 여럿이 물에 빠져 죽기도 한 곳이었다.

빨래를 하던 아낙네와 이웃마을에서 술에 취해 돌아오던 술고래 아저씨도 생을 달리 한 무시무시한 연못이었다.


똥끼는 연못 가장자리 돌담을 기어오르다 이끼 때문에 몇 번이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물밖에선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듯 똥끼는 참았던 들숨과 날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미끄러지지 않으려 연못 언저리에서 제법 튼튼하게 뿌리박은 풀들을 부여잡고 한동안 서있었다.

상체는 물밖으로 하체는 물속에 잠긴 채 발끝으로 온 힘을 주어 돌틈사이를 단단히 딛고 있었다.

똥끼는 마지막 기운을 쏟아내어  풀을 잡아당기면서 발끝으로는 돌틈을 지렛대 삼아 완전히 물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순간 학교를 마치고 윗마을로 가던 중 연못 바로 옆길을 지나던 교복을 입은 중학생 한 명이 자전거와 같이 넘어지면서 놀란 눈으로 똥끼를 쳐다보았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걷던 그 중학생 눈에 연못에서 기어 나오는 똥끼의 모습은 마치 물귀신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똥끼는 그 중학생 형을 무심히 바라보고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비틀비틀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똥끼가 걸을 때마다 메마른 흙길 위로 조그맣고 가냘픈 발자국이 선명하게 영원한 기억처럼 각인되었다.

이윽고 사방에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놀라 뛰어나오다가 똥끼를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고 똥끼가 살았네~ 살았어~"

"어떻게 혼자 나왔을꼬"

"아이고 대견하고만~ 괜찮니? 똥끼야"

똥끼는 모여든 동네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집으로 들어섰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똥끼 엄마는 놀란 눈으로 대문을 나서다가 똥끼를 발견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똥끼는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연못에 빠졌을 때 느껴졌던 두려움과 설움이 한데 섞여 따뜻한 엄마의 품에서 눈 녹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똥끼는 연못에 빠질 때, 등뒤에서 떠밀던 누군가의 손길이 떠올랐다.

누구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연못에 빠지기 직전 등뒤에서 놀던 마을 동무가 누구인지는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

그랬던 것 같다.

똥끼가 연못에 빠지기 직전 '대호'는 바로 뒤에 앉아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고, 똥끼는 '대호'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뜰채로 연못 가장자리에 떠있는 물방개를 잡고 있었다.


똥끼는 '대호'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는 똥끼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린 똥끼로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 똥끼는 국민학교 2학년 겨우 8살 어린 나이었다.


똥끼가 다시 그때의 연못사건을 진지하게 회상하며 '대호'가 등을 떠밀었다는 확신을 가졌던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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