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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Dec 05. 2022

새빨간 [프라이드 베타]

자동차 대마왕(4)

[티코]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뚜벅이 생활을 하던 나는 내 인생 두 번째 애마를 찾으러 형과 함께 중고차 시장을 찾았다. 그 후배의 부모님이 너무 미안하다고 건넨 [티코]의 몸값을 가지고 비슷한 가격대의 중고차를 찾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중고 자동차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자신을 뽐내고 있었는데, 내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은 차는 강렬한 빨간 빛깔의 [프라이드 베타]였다.


[프라이드]라는 차량은 나에겐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 충북의 한 시골중학교를 다니던  때의 일이었다. 그때는 자전거가 대부분 깡통 자전거였고, 요즘처럼 수십 단의 기어비를 갖고 있는 자전거가 정말 드물어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반 친구 녀석이 어느 날 떡하니 기어비가 10단이 넘어가는 사이클을 타고 나타난 것이었다.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든 우리에게 그 녀석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기아자동차에서 신차를 출시하면서 자동차 이름을 공모했고 자기가 [프라이드]라는 이름으로 대상과 함께 상품으로 사이클을 받았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당시 TV를 시청하다 광고를 보다 보면 트렁크를  열자 풍선이 한아름 하늘로 올라가는 [프라이드] 자동차 광고가 큰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그 후로 나는 대림의 신형 오토바이 이름 붙이기에 응모하려고 몇 날 며칠을 잘 보지도 않던 영한사전을 뒤져가며 고민했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마감일을 놓치는 바람에 응모를 하지 못했는데 그 오토바이 이름은 'TACT'로 결정되었고 내가 응모하려고 뽑아놓았던 'ZOOT'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만 남겨 놓게 되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생일선물로 분양받은 지금의 우리 집 강아지 이름 공모에서 당당히 당선되어 현재 매일 부르고 있는 중이다.


'스포츠카는 빨간색이지!'라는 감탄의 문장이 내게는 '자동차는 역시 빨간색이지!'로 변신해서 착각을 일으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나는 그때를 이해할 수 없는 그저 그러 한 보수 중장년으로 변해있지만 그 시절 나는 대학 3학년, 21살의 피 끓는 젊은이였다. 마침, 연식이 오래된 차량이라 내가 가지고 있던 예산 범위 안에서도 가능했던 것은 빨간색 [프/베]를 만나려고 했던 필연적인 운명 같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첫 애마[티코]는 깡그리 기억 저편 무지개 너머로 보내드리고, 나는 섹시한 [프/베]의 자태에 빠져 다시 행복한 자동차 생활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프/베]와의 시간은 생각했던 것처럼 섹시하지도 또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많은 사고로 몸이 망가지고 또 오랜 세월로 쇠약해진 [프/베]는 자주 아팠고, 그때마다 용돈을 받아쓰는 학생 입장이었던 나에게는 커다란 짐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형이 [프/베]가 병든 걸 알아보고 다른 차를 보자고 잡아끌었지만, 내 똥고집에 할 수 없이 백기를 들어주었는데 그런 형한테 [프/베]의 병원비를 달라는 것도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프/베]는 한여름 에어컨을 켜면 그동안 쌓인 병들이 만들어낸 시큼 텁텁한 입냄새를 뿜어내며 골골거리면서 힘을 쓰지 못했다. 일단 입냄새를 제거하려고 여러 가지 제품을 써가며 치료했지만 그 본연의 병을 뜯어고치기에는 치러야 할 값이 너무 컸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가급적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열고 다녀야 했는데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대학 3학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떤 날,

나와 방송국 후배들은 함박눈 가득한 겨울에 취하고 젊음에 취해 [프/베]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외곽도로로 나서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길은 미끄러웠으며 코와 귀를 베어갈 겨울 찬바람이 공기를 가르는 밖과는 달리 차량 실내는 따스한 온풍기의 바람과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으며 웃음꽃을 피우도록 [프/베]의 안락함이 낭만 겨울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덕길을 오르던 [프/베]는 슬슬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엔진 소리의 불규칙함과 핸들의 떨림이 심해질수록 나는 낭만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4명을 태운 [프/베]의 힘겨운 사투가 끝난 곳은 왕복 8차선 큰 도로의 교차로 한 복판이었다. 그것도 차선의 중앙이 아닌 차선을 변경 중이었던 삐딱한 대각선 상태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덜컥 덜컥 몸을 떨어가던 [프/베]가 멈추자 우리는 모두 당황했고, 곧이어 모든 실내외 라이트가 꺼지면서 차 안의 공기도 순식간에 얼어붙고 있었다.

모두 다 밖으로 나와 [프/베]의 좌, 우, 뒤에 서서 클락션을 울리는 차량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옆으로 옆으로 수신호를 보내야 했고, 나는 멀리 보이는 주유소로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변 카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모든 게 지금처럼 빠르게 수습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우리는 몇 시간을 오들오들 떨면서 온몸에 쌓이는 함박눈을 서로 털어주며 견인해갈 차량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그 후로도 [프/베]는 끊임없이 아파서 장거리 운전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학교를 다니거나 가까운 거리를 운행하면서도 탈이 없는 날이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하지만 학생 신분에 또 다른 차량으로 바꾼다거나 큰 수술을 한다는 건 어려웠기에 꾸역꾸역 대학 4학년을 마칠 때까지 내 곁에 두면서 애틋한 정을 쌓아갈 수밖에 없었다. 


1996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사관후보생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입영하기 위해 떠나던 날 아침, 주차장 한편에 누워있는 아픈 [프/베]를 보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다. 훈련 중 부모님이 찾아오신 외출 때 [프/베]가 멀리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후로 지금껏 나는 빨간색 자동차를 사본적도 또 타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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