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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Dec 07. 2022

까망이 [르망 레이서]

자동차 대마왕(5)

"스포츠카는 역시 빨간색이지!"

아니...

"스포츠카는 역시 검정색이지!"

[프/베]의 아찔한 기억들이 아직 생생한 마당에 또 빨간색이라니! 안 되는 말이지!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첫 발령지가 인천에 위치한 해군 2함대 소속 구축함이었다. 갓 소위로 군함에 승선한 나는 서해바다에서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었기에 자동차의 존재를 망각한 채 몇 개월을 보내고 있었다.

연평도 근해 서해바다에서 구축함은 한 번 출동을 나가면 한 달 가까이 박스권 기동을 한다. 해군 생활을 하지 않은 분들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NLL(북방한계선) 이남 일정 구역에 우리나라 군함의 레이더 유효거리를 산정해 빈틈없이 몇 개의 박스를 그리고 그 안에서만 약 한 달간 왕복 기동을 하는 것이다.


내가 승선한 구축함은 1944년 미국에서 건조하여 베트남 전에 참전하고 버려진 군함을 그 당시 가난했던 한국 해군이 인수하여 수리하고 무기를 보강 탑재하여 쓰던 아주 오래된 고철 덩어리 1급 함이었다. 그 군함의 최대 속도는 30 knot로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54km/h 정도의 제원을 갖고 있었는데, 세월의 흔적으로 내가 승선할 당시 최대 속도는 20 knot를 넘지 못했다. 더구나 망망대해에서 군함의 움직임은 굼벵이가 기어가는 꼴이었으니 그 답답함과 지루함은 불타는 젊은 내 가슴에 사리를 한 사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함정의 정기 수리 기간이 도래하여 남해에 있는 '진해'로 입항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약 3개월간의 긴 시간을 육상 독에 배를 정박시키고 근무하게 되었다. 바다 생활이 육지에서의 출퇴근으로 바뀌게 되자 다시금 내 가슴은 자동차를 향한 갈증으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어엿한 월급쟁이가 되었기에 내 힘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근 중고차 시장을 찾아 이 차 저 차를 구경하다가 한눈에 반한 차량이 있었으니 바로 대우자동차의 검정색 [르망 레이서]였다.


이름만 들어도 스포츠카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 차는 검은색으로 휘감고 달려 나갈 낮은 준비자세로 나를 유혹했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국내 스포츠카로는 현대의 [스쿠프]가 있었지만 차량 가격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바람에 나는 [르망 레이서]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 '까망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물론, 꼭 가격만은 아니었는데 내 눈에는 [스쿠프]보다는 [르망 레이서]의 라인이 훨씬 더 공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날렵한 앞태와 100m 육상선수가 출발 전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습의 뒤태는 내가 이차를 고른 결정적 한방이었다.

중고차지만 한 번에 낼 돈이 없었던 나는 아버지께 부탁드려 현금을 치르고 매달 15만 원씩 갚아나가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르망 레이서]는 나를 진짜 레이서로 키우려는 듯 언제나 그르렁 거리며 달리기를 뽐냈지만 성능 좋은 차들의 토크나 마력에 비하면 새발에 피였다. 그냥 딱 내 수준에서 혼자 느끼는 만족감만으로 레이싱을 펼치는 레이서 같은 기분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면서 다른 차들과 허락받지 않고 레이싱을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어떤 때는 좋은 제원을 가진 차들에게 망신을 겪고는 의기소침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고속 자체가 무섭고 가족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한속도를 넘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당시 고속도로는 지금과 달리 곳곳에 과속카메라가 없었고, 고속도로 경찰관이 한눈에 잡히지 않는 모퉁이 같은 곳에 숨어서 스피드건을 쏘며 직접 단속을 하던 시대였다.


[스피드건 쏘는 경찰관]

한 번은 주말을 맞아 외출한 나는 진해에서 출발하여 대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시속 150km/h 이상으로 내달리다 고속도로 경찰관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 '까망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면서 한산한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길고 긴 코너링에서 갑자기 등장한 경찰관이 스피드건을 쏘면서 저지시켰다. 너무 빠른 속도였기에 급정거 시 차가 내동댕이 쳐지거나 뒤에서 따라오는 차량과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었기에 나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까망이'를 세우려는 경찰관의 몸짓은 격렬했는데 기마자세를 취하고는 곧게 편 손으로 내차를 가리키고 이어서 땅을 향해 절도 있게 수십 번 내리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즉각 세우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온몸에 묻어났었고 그런 경찰관을 순간 지나치면서 클로즈업된 그의 눈빛과 곁눈질하는 나의 눈이 마주칠 때 불꽃이 튀었다.


 "안돼요 안돼요~! 저도 멈추고 싶지만 제가 죽어요~!"


라며 경찰관이 들리진 않겠지만 큰 입모양과 미안한 표정, 간절한 손짓으로 애원하며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랬다. 변명이겠지만 그때 난 너무 젊었고 '까망이' [르망 레이서]의 날렵한 몸놀림이 허락하는 스피드의 중독성에 푹 빠져 어느새 폭주족이 되어있었다.  


3개월간의 함정 정기수리가 끝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시간을 짜내어 '까망이'를 진해에서 '인천'으로 옮겨 놓는 수고로움도 즐겁게 감당했다. 그만큼 차에 미쳐있었고, 자동차를 사랑했다.

다시 돌아간 인천 2함대에서의 생활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들려드리겠지만 육상 생활이 짧았기에 '까망이'는 언제나 인천 군항 부둣가 한편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주하고 먼 외해를 외처로이 쳐다보며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중위로 승급하면서 다시 '진해'에 있는 UDT 소속 예하 반잠수정 모함으로 발령이 났다. 한국 해군사에 처음 만들어진 특수함의 부장이 되어 앞으로 있을 엄청난 고난도 알지 못한 채, 나는 '진해'로 레이싱을 펼치며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준 '까망이'를 조련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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