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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Dec 05. 2022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마르크 샤갈의 <아가서(2) '사랑하는 이의 지극한 아름다움'>

 지혜문학 중 하나인 아가서 중에는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10)”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듯 아가서에는 섬세한 사랑의 표현들이 즐비한데, 이러한 표현들을 색다른 감각의 그림으로 표현한 프랑스의 화가가 있다. 바로 마르크 샤갈이다. 그는 1887년에 태어났으며,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그는 유대인 노동자 집안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조부는 종교학자이면서 교사였다. 또한 유년시절을 신앙적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고 하는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보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샤갈은 종교와 관련된 작품을 다수 그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샤갈의 아가서 연작은 총 다섯 작품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붉은 색채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아가서(2)에는 좌측 상단에 모로 누워있는 나체의 여인이 등장하며, 마치 부드러운 풀밭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여인이 자신의 연인에게 “우리의 침실은 푸른 풀밭이라오(아가서 1:16)”라고 말한 데서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사슴 혹은 노루의 형상을 한 동물이 여인을 지키는 것 같다. 우측 상단에는 날개를 단 천사의 이미지가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오브제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작품을 아가서의 개요 중 ‘연인의 방문’ 이후 곤히 잠든 연인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담긴 그림으로 해석해보았다. 그렇다면 붉은 색채는 ‘사랑’과 ‘원기’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여인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풀밭은 여인이 누워있는 침실이어야 할 것 같다. 사슴이나 노루로 보이는 이미지는, “사랑하는 나의 임은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구나. 벌써 우리 집 담 밖에 서서 창 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아가서 2:9)”에서 알 수 있듯 잠에 든 여인으로 대변되기도 할 것이다. 투박한 이미지의 천사는 여인을 지켜주고 사랑을 불러오는 존재라 생각한다.


  감각적인 시문학인 아가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 작품에는 ‘사랑하는 이의 지극한 아름다움’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여인의 얼굴이 등장한다. 여인의 신체 비율이나 모습은 다른 아가서 연작과는 다르게 사실적으로 묘사된 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가서(3)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한 결합-사랑의 성취’>에서는 결혼식에서 행진하는 연인의 신체 비율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 이렇듯 샤갈은 절묘하게 이 작품의 부제를 지어낸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 샤갈의 아가서 연작은 모두 붉은 색채를 띠고 있다. 다른 연작에서는 붉은색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강렬한 원색의 색들도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는 반면, 이 작품은 거의 모든 색을 붉은 색을 활용하며 유채의 묽기나 채도정도만 조절하여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을 그리기에는 붉은 색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 좋은 묘수였을 것이다. 온전한 사랑에 대한 희열, 따스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우측 상단에 등장하는 작은 천사는 푸른 색과 녹색 계열로 표현되어 있는데, 좌측 상단에 누워있는 여인으로 향하는 시선을 뺏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아가서는 연인이나 사랑 그 자체를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켜 상징성을 부각시켰던 샤갈의 그림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 작품에도 나오는 사슴 혹은 노루는 아가서에 여러번 등장하는데,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돌아와 주세요. 베데르 산의 날랜 사슴처럼 빨리 오세요.(아가서 2:17)”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여인의 잠든 모습이 연인을 기다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여인을 바라보는 연인의 시선이 담긴 모습인 것 같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다소 외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아가서의 내용을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샤갈이 로맨틱한 연인간의 관계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끈끈한 관계로의 희망으로 비유하여 드러내려 했던 것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유와 상징을 즐거워하는 샤갈의 작품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러한 의도가 맞아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또한 처음 아가서를 읽을 때 여자와 남자의 대화로 내용이 전개가 되며,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강조되어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는 단지 여성과 남성의 대화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와의 대화’ 혹은 ‘신뢰할 만한 누군가와의 대화’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 기뻤다. 여성과 남성이 화폭에 함께 등장하지 않고 여인 홀로 등장하며, 부제 또한 ‘사랑하는 여인의 지극한 아름다움’이 아닌 ‘사랑하는 이의 지극한 아름다움’인 것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대상과 주체의 성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잠재성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샤갈은 생전에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열적이고 내밀한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 연작은 이러한 샤갈의 예술적 가치관을 반영한다. 또한 그는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네. 성서는 언제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에게 모든 시대에서 시의 가장 위대한 원천이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던 샤갈은 아가서를 읽고서 강렬한 사랑의 감정과 따뜻함, 욕망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가서 원작이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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