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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Jan 06. 2024

딸이 있으면 카페에 매일 갈 줄 알았지





너 딸 낳으면 내가 검정옷만 선물할 거야


핑크와 꽃무늬를 즐기던 젊은 시절의 나였다. 내 취향인지 엄마의 취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부터 난 꽃무늬 치마를 입고 구두를 즐겨 신던 아이였다. 아마 엄마는 어린 시절의 로망을 나에게 실현하려는 듯 대부분 나풀거리는 블라우스도, 자주 입혀주었고, 반짝이는 옷도 자주 사주었다. 내 옷장 서랍 속에는 늘 타이즈가 몇 개씩 있었는데 그중에 대부분은 무릎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던 기억도 난다. 치마를 나풀거리며 뛰어가다가 철퍼덕 넘어졌겠지. 딸이 생기면 공주처럼 키우려던 우리 엄마의 로망. 내 비수기 외모와는 상관없이 로망은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by pixabay

딸은 엄마의 베프라고 했던가. 대부분의 내 옷 쇼핑은 엄마와 함께였다. 빠지지 않는 꽃무늬와 레이스, 그리고 핑크. 친구들은 그런 옷을 어디서 구하냐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참 희한한 일… 백화점에서든, 지하상가 옷가게에서든 내 눈에는 참 잘 띄었으니 말이다. 항상 밝은 색깔의 옷을 즐겨 입는 나를 보고 늘 무채색의 옷을 즐기던 친구는 나중에 내가 딸을 낳으면 검은색 옷만 선물해서 입히겠다고 농담했다. 그럼 아마 내가 괴로워서 소리라도 악! 지르는 모습을 보며 웃었으려나.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 말을 했던 그 친구도 역시 딸을 낳았고, 딸은 레이스와 공주풍 치마를 입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정말 나에게 딸이 생겼다. 아마 임신을 확인하는 그 순간 16주가 되기만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물론 내 자식이니 성별이 무엇이 중요할까 싶지마는 아직 철이 덜 든 새내기 엄마에겐 그동안의 로망을 실현시켜 줄 딸이 필요했나 보다. 이리저리 초음파 기계를 돌려보던 선생님은 일말의 미소도 띠지 않고 딸이라고 하셨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활짝 웃으며 “공주님이네요~” 혹은 “ 파란 옷을 준비하셔야겠어요.”라고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는 선생님 대신 시크하게 딸이라고 콕 집어서 얘기해 주는 극강의 대문자 T선생님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난 설레기 시작했다. 


“아! 딸!!! 드디어 딸!!” 나에게도 딸이 생기다니! 당장 다음 주부터 로망을 실현시킬 수만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걸음마도 시작하고, 예쁜 말도 하게 되고.. 이제 조금만 더 자라서 예쁜 옷 입고 엄마랑 카페에 가자! 그럼 아이스크림도 먹고, 케이크도 우아하게 먹어주고! 

주말이면 동네 커피숍을 종종 다녔다. 남편은 노트북, 나는 아이와 그림 그리며 놀 것 들을 챙겨 카페로 향한다. 남편의 아메리카노와 내 바닐라라테, 그리고 아이의 주스까지. 내가 예전부터 꿈꾸던 모습이다. 아! 드디어 나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 


시간은 흐르고 아이도 자랐다. 내가 이루지 못한 발레. 유치원에서 하는 발레수업을 신청했다. 딸 있는 엄마가 가진 극강의 로망 아닐까? 핑크 튜튜에 올린 머리를 하고 총총 뛰는 아이를 상상하니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다. 저만치 앞서나간 엄마의 상상의 나래는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서 발레리나가 되어 공연을 하는 모습에 까지 이르렀다. 열심히 준비물을 챙겨 보내고, 온갖 칭찬을 듬뿍듬뿍해 주었지만 두어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러더니 아이는 태권도로 방향을 틀었다. 튜튜보다 도복이 더 좋은 우리 딸. 무슨 도복의 마법이라도 걸린 것인지 아이는 운동시간이 아닐 때도 도복을 입고 동네를 활보하곤 했다. 발레리나의 엄마가 되겠다는 나의 로망은 사라진 지 오래. 언젠가는 송판을 맨손으로 격파하는 그날을 기다린다.

by pixabay

핑크 혹은 레이스가 나풀나풀 달린 원피스를 입은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는데 꿈은 꿈이었다. 제빵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빵은 점점 싫어졌다. 간혹 카페에 가도 아이스티 한잔을 원샷하고는 이내 핸드폰 세상 속으로 빠져든다. 레이스와, 공주옷은 벗어던진 지 이미 오래. 내가 그려왔던, 너를 뱃속에 품었을 때부터 가졌던 내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역시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인가 보다.


내 로망과 너무 다른, 취향도 너무 다른 나의 딸. 나와 너무 달라서 가끔은 너무 신기할 때도 있다. 아마 아이는 자라면서 예상과 다른 모습을 또 보여주겠지. 딸을 공주처럼 키우고 싶은 모든 엄마들이여! 훗날 아이가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길. 아이는 아이 나름의 방향으로 열심히 자라고 있을 테니. 


오늘도 난 아이에게 카페에 같이 가자고 조르고,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도란도란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내 로망은 언젠가 이루어지긴 할까. 카페 로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떡볶이 데이트라도 신청해 보아야겠다. 아마 활짝 웃는 미소를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건 카페 데이트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이라는 걸 간과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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