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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Mar 15. 2024

나, 주부, 엄마, 그리고...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미리 준비해 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음쓰 카드를 챙겨 나간다. 아이들이 이제 어느 정도 크니 잠깐 쓰레기 버릴 시간이 생겼다. 조금 더 보태면 근처에 잠깐 커피를 사 올 여유까지도 생겼다. 이게 얼마만인가.

쓰레기 버리고, 커피 한 잔 사 오는 게 뭐가 대수라고


난 전업주부이다.

by pixabay

처음부터 전업주부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말 그대로 ‘전업’ 주부가 되어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까지는 내 이름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이름은 xx이 엄마로 변하고, 강사, 선생님이라는 직업대신 주부라는 직업이 생긴 것이다. 

누가 등 떠밀어서 한 결혼도 아니었고, 누가 시켜서 한 출산과 육아도 아니었다. 내가 원했고, 내가 택했는데 어느 순간 주부가 되고, 아이 엄마로만 살아가는 내 모습이 서글퍼졌다. 아마 내가 sns에 나오는 육아맘들처럼 완벽하거나, 프로 정신을 갖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모성애가 부족해서였을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고, 가족들을 돌보고, 그 가족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그 성장을 나만 빼고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보니 내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을 들어가기까지 수없이 노력했고, 고맙게도 부모님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비싸게 학위를 받았고, 그 외에 추가로 공부를 더 했으며 공부한 만큼 시간과, 내 노력과 비용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노력을 가끔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것 이외에는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 같다.




남편이 유럽으로 출장을 갔다. 자긴 유럽 가는 거 언어도 그렇고, 일도 어렵고, 아무튼 원하지 않는데 떠밀려 가게 되었다며 투덜거린다. 남편의 출장 덕분에 인터넷 면세점찬스를 얻게 되었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며칠 후 면세점 물품을 수령했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끔은 출장지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한다. 

by pixabay

승진을 했다. 특별히 티 나는 승진은 아니지만 어쨌든 연말 고과를 생각보다 잘 받았다며 인사 고과표를 보여준다. 그리고 연말이면 성과급이 얼마 나올 거라는데.. 대출금을 값을지, 뭐 평범한 근황을 이야기한다.

매일같이 출근하기 싫고, 회사는 재미없고, 자신도 살림하라고 하면 잘할 수 있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면 표정은 달라진다. 연봉계약서를 보여주고, 인사고과 결과를 알려준다. 뭐 티브이에 나오는 실장님, 이사님들 같이 멋지게 승승장구하며 출세길이 보장 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남편은 나름대로 회사에서 소소하게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또 그 결과를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질투가 났다. 남편이 잘 나가는 것은 그 만의 것은 아니고 우리 가족 모두의 성과이며 행복임이 분명하지만 남편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때마다 한 없이 내가 초라해지고 있는 듯했다. 나도 분명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가족들을 먹이고, 입혔는데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눈에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들에 손을 놓았을 경우. 매일매일 노력하면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 결과가 안 보이니 의욕은 생기지 않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그것이 집안 일과 주부의 일이 아닐까.

내 마음이 밴댕이여서인지, 아니면 전업주부로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대인배가 아니라는 것.




어느 순간부터 취업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 곳은 있지 않을까?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어딘가는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아이들의 병원 정기검진, 둘째 아이의 하원시간 이리저리 맞추다 보니 갈 데가 없다. 슬쩍 남편에게 일 시작해 볼까 물으니 아직 둘째가 어린데 좀 더 크면 해보란다. 언제는 돈 벌어오라며. 더 늦으면 나이만 많고, 경력이 단절된 아줌마를 써 줄곳이 있을까 의문이다. 이러면 안 되지만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못 박아버린 친정 엄마한테까지 화살이 돌아간다. 이럴 거면 왜 멀리 이사 가지 말고 근처에 있으라고 한 건지. 그러고 보니 난 대인배도 아니거니와 아직 철도 덜 들었나 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된 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 모성애도, 가족애도 덜 커졌나 보다.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성장할게 이렇게 많이 남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취업을 하게 되면 대인배가 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져오면 가족애가 더 살아날까?



확실한 답은 없지만 어쨌든 오늘도 취업 앱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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