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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Mar 22. 2024

뽀뽀를 요구하는 이유

오빠! 자!!

남편을 향해 입술을 쭈욱 내밀어 본다. 평소에는 여보, 기분 좋으면 오빠. 호칭은 그때그때 다르다. 내 입술을 보자 남편은 얘 또 이러네…라는 표정이다.


“왜 이래~”

“빨리 끝내고 싶으면 알아서 해”


뽀뽀 한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쪽! 한번 하는데 3초도, 아니 1초도 안 걸릴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쪽! 할 때마다 아이는 옆에서 “안 본다!! 또 왜 이래!!”라며 몸서리친다.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초등 고학년이 되며, 괜히 남자 친구들과 멀리 하더니,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애정표현이 나오면 괜히 장난으로 “우웩!”을 한다. 그럴수록 나는 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 특히 큰 아이가 있을 때마다 더욱 남편에게 뽀뽀를 요구한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애정표현을 한다. 남편에게 조금의 애정을 담은 것이긴 하지만,  특히 아이들이 있을 때 더 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쑥스러운지 왜 이러냐며 못 이기는 척, 마지못해 하는 척 넘기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지! 

싫다는 남편에게, 왜 이렇게 매달리냐고 묻는다면 나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언젠가 엄마아빠의 모습이 아이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듣고 난 후였다. 

by unplashed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다기보다 오히려 나빴다는 쪽이 더 맞겠다. 소소한 말다툼은 기본이었고,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그 싸움이 절정에 이르러 한번 싸움이 나면 집안에 폭풍우가 지나가곤 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싸울 때면 강아지마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와 강아지는 꼭 끌어안고 그 시간만이 지나가길 기다리기가 부지기수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두 분의 체력도, 열정도 예전 같지 않은지 싸움은 횟수도, 강도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이 있는 시간이 길 수록 싸울 확률은 높아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내 머리가 커서인지 부모님을 만날 때 두 분이 싸울 기미가 보이면 내가 먼저 소리 낸다. 좋게도 얘기해 보고, 화도 내보고. 그럼 이내 두 분의 투닥거림은 수그러지곤 한다.




얼마 전 남편과 크게 싸웠다. 평소에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던 우리였기에 티브이에 나오는 심각한 부부과 비교할 수 없이 소박한 정도였지만. 나중에 아이가 와서 자기가 원하는 것 아무것도 없으니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의 눈빛은 무척 불안해 보였다. 아무리 이혼이 흔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이에게는 큰 충격일터. 그 상황을 본인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고 했다. 그냥 흔한 부부싸움일 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충격받을 줄은 몰랐는데. 이래서 싸움을 하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며, 아이 귀에도 들어가지 않게 무음으로 하라고 했던가. 순간 화가 나서 왜 어릴 적 내가 불안해했던 그 시절은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참으로 미안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둘이 떨어져 있으면 큰일 날 것처럼 데이트 때마다 꼭 붙어있던 우리였다. 어느새 둘 사이에는 하나, 둘 아이가 생기면서 각자 한 명씩 손을 잡고 걷는 게 익숙해졌다. 둘 사이에 아이 둘만큼의 거리가 생겼나 보다. 이제는 아이들이 없는, 둘이서만 걷는 그 거리에도 아이 둘이 있는 것처럼 떨어져 걷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가끔 길을 가다가 손을 꼭 잡고 함께 걷고 있는 머리 희끗한 노부부를 볼 때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지금도 아이 둘 만큼의 거리가 있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난 후 갑자기 우리 둘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손 잡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큰 기술이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 십 년 동안 서로를 생각하며 배려했던 다정한 마음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왔을 것이다. 어쩌면 물리적인 힘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손잡고 산책하다가 카페에서 커피나 맥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노부부가 되고 싶다. by unsplashed

아니, 이럼 안될 것 같다. 이대로라면 내가 꿈꾸는 흰머리의 손 꼭 잡은 부부는 저 멀리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지. 오늘도 성큼성큼 멀찍이 앞서가는 남편을 붙들어 본다. 그리고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상관없다. 일단 손을 내민다. 매번 ‘또 왜 이러냐~’라고는 하지만 내민 손이 부끄럽지 않게, 하지만 무심하게 손을 쓱 잡아준다.

남편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면 좋겠지마는 극강의 볼드체 T남자를 택한 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나의 선택. 그러니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지. 



오늘도 난 노력한다.

우리의 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나를 위한 건지, 아이들의 정서를 위한 건지… 목적이 어떤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남편과의 스킨십으로 우리 가정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까짓 것 오늘도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난 이렇게 노력하는데 매일 늦게 들어오는 남편 이러기 있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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