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세 자루.. 아니 스케줄 세게 모두는 필요 없어요.
한 여인이 길을 걷다가 그만 실수로 스케줄표를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흑흐흑… 내 스케줄표…’라고 흐느끼고 있으니 갑자기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이 스케줄이 니 스케줄이냐?'
'아니오. 이것은 저의 첫째 아이의 스케줄입니다.'
'그럼 이 스케줄이 니 스케줄이냐?'
'아니오. 이것은 저의 둘째 아이의 스케줄입니다.'
'그럼 이 마지막 초라한 스케줄이 니 스케줄이냐?'
'예. 그 스케줄만 저의 스케줄입니다.'
참 솔직하구나. 진실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니 이 스케줄 모두 너에게 주겠다~~
아니, 아니요!! 저는 모든 스케줄이 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제 스케줄표만 주십시오!!!
‘스르륵’
어미모에게 모든 스케줄을 남기고 산신령은 사라졌다.
그리하여 첫째 아이의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 학교 녹색어머니회 봉사활동 등등, 둘째 아이의 치과, 안과 병원 검진과 유치원 상담까지 모두 엄마가 그 스케줄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슬프고도 웃픈 이야기.
거기에 학기가 새로 시작되자 중간중간 계속 울려대는 학교와 유치원의 알림 문자들까지 더해진다. 분명 학교와 유치원은 아이들이 다니는 것인데 왜 엄마까지 바빠지는 것인가. 그리고 애는 둘 뿐인데 사용하는 앱이 여러 개니 종일 띠링띠링 울려댄다. 알림 문자에는 ‘일단 읽어 보세요.’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읽어보고 답변 주세요.’의 세 종류가 있다. 알림이 울리면 혹시 준비물은 빠지지 않았는지, 서명은 잘했는지, 선생님의 전달 말씀은 잊지 않았는지 어느 종류의 알람이든 상관없이 온 신경을 집중하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 낸다.
원래 내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직장이든, 친구든, 연애까지.. 나 시간에 맞춰 일정을 짰다. 직장에 다녀도, 연애를 할 때도 내 시간은 나만의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았고, 자고 싶을 땐 잘 수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기에 일정의 변화가 생기면 부모님께 알려 드리긴 했지만 일정을 알려드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분명 내 시간인데 내 시간이 아니다. 친구를 한번 만나기 위해서는 남편과의 스케줄을 확인해야 했으며, 주말은 1. 아이와 함께 다녀도 불편하지 않은 곳. 2.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있는 곳. 3. 아이들이 흥미 있을 만한 것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를 100개쯤 받을 것 같은 인테리어가 예쁜 곳은 아이들에게 위험하기도 하고 덩달아 노키즈존이었기에 탈락, 맛집으로 유명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줄 서야 한다면 또 탈락. 맛있고, 예쁘고 다 좋지만 가는데 너무 멀어도 탈락이다. 이쯤 되면 주말이 내 것인지, 아이들 것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신기한 건 내 것이 아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내 계획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기는 어렵고, 또 그렇게 애를 썼는데 기대했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이런 일정들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내가 왜!라는 소리 없는 울부짖음을 외친 적도 있으나 결국 다 끝마치고 난 후에는 내가 엄마로서 해냈다는 뭔가 모르는 뿌듯함이 몰려오곤 했다.
아마 아이들의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내 것 같지 않은 내 스케줄에는 끝이 있다. 내가 더 이상 내 스케줄을 친정 엄마에게 부탁하지 않듯, 아이들은 자라서 본인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알림을 체크할 것이며, 방학 스케줄도 새로 짜겠지. 그리고 서서히 내 품을 떠나 온전한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버텨야지. 아니 즐겨야지. 그러면 진정한 자유가 올 테니 말이다. 그때는 너무 스스로 잘하는 아이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고는 있지 않을지 변덕 같은 내 마음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이라고 오은영박사님이 얘기하지 않았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이는 알림이라며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올해 녹색 어머니회 일정이다. 아이 스케줄인듯한 내 스케줄이 하나 추가되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한 번 더 볼 수 있겠구나. 스케줄을 하나 더 정리하며 제발 그날은 비가 오지 않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