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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Apr 05. 2024

이게 이다지도 슬플 일인가

동화책 '알사탕'을 읽고 

‘엄마! 유치원에서 홍비, 홍시 했어!’


응? 무슨 말이야.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유치원에서 구름빵이라는 동화책을 봤나 보다. 홍비, 홍시가 되어 역할 놀이도 해보고, 빵도 만들어봤단다. 재미있었겠네. 엄마는 그런 거 못해주는데. 역시 유치원이 최고다. 구름빵 동화책에 관심을 갖는 아이에게 백희나 작가님의 또 다른 동화책들이 집에 더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사탕. 아이도 알사탕이 뭔지 들어는 봤다고 했다. 옳다구나. 아이를 위해 이사를 3번이나 할 만큼의 교육열이 높은 맹모는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 동화책 한 권쯤은 읽어줄 수 있지. 5살 터울이 나는 큰아이와 작은아이. 역시 그 책을 다시 펼쳐본 것은 5년 만이었다. 큰 아이 방에서 오랜만에 알사탕 책을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알사탕. 소파 장면은 봐도 봐도 재밌다.

구슬치기를 좋아하는 동동이. 여기서부터 난관이다. 라테는 말이지… 둘째 아이는 아직 구슬치기가 뭔지를 모른다. 대충 설명하고 다음 장. 소파 장면은 언제 봐도 내 최애 장면이다. 


‘아빠 여기서 방귀 좀 그만 뀌시라고 그래!.. 숨쉬기가.. 힘들…어…’


동화책에도 나오는 걸 보니 여느 집 아빠들도 다 똑같구나… 소파 위의 방구쟁이 뿡뿡이는 우리 집에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다음 구슬이 알사탕. 나이 먹어서 동동이와 함께 놀기 힘든 구슬이. 예전 노견을 키워본 경험이 생각났다. 아…그다음 아빠 알사탕. 악! 알사탕에 수염이 삐죽이라니!


그리고… 풍선껌이 들어있는 알사탕. 


뭐지… 할머니 알사탕이었다. 풍선을 불어보니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알사탕. 동동이가 풍선껌을 불자 후 하고 날아가더니 퍽! 터지고 난 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할미는 여학교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 동동이도 잘 지내렴.' 돌아가신 동동이의 할머니가 행복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의 동화책을 읽어주던 나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나이를 먹었나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왜 이리 코끝이 시큰해지는지 모르겠다. 눈시울이 붉어질 찰나 아이의 집중력이 흐려졌다. 이러면 안 되지!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며 아이의 시선을 책으로 끌어온다. 다행이다. 아이의 집중력 덕분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동화책을 읽다가 엄마가 울어버리는 웃픈 상황을 유치원생인 아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할머니와 말할 수 있는 알사탕

할머니와의 애틋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아직 슬픈 이별을 해본 일도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주변에서 하나, 둘씩 헤어짐을 말하는 소식을 듣게 되고, 언젠가 나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니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을 떠나겠지. 그럼 남아있는 아이들과 이렇게라도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러면 좋겠다. 


5년 전에도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다. 마술을 부려 책의 내용이 변한 것도 아니라면 아마 나의 생각이 변했을 터.  그때는 이 책이 이다지도 슬픈 책이 아니었는데 다시 보니 느낌이 꽤나 다르다. 이래서 사람들이 영화나 책을 두 번, 세 번씩 보는가 보다. 

작년에 소나기를 뚫고 갔던 백희나 그림책전시회. 역시 인기 많았던 동동이네 포토존

입에 넣으면 달콤한 맛이 퍼지며 녹아내리는 알사탕. 어릴 때부터 난 고급진 초콜릿 보다 알사탕을 좋아했었다. 아마 마지막 입안에 남는 초콜릿의 텁텁함 보다 깔끔하고 달콤했던 사탕의 맛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동화책 속의 알사탕은 달콤한 것만이 아니다. 무뚝뚝했던 아빠의 속마음을, 놀고 싶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서글펐던 강아지 구슬이의 속사정을, 그리고 함께 놀고 싶지만 말 못 한 친구의 속 마음까지도. 과연 이 알사탕들은 진짜 무슨 맛이었을까? 

문득 아이의 지루한 독서록처럼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 알사탕이 하나 생긴다면 어떤 알사탕을 갖고 싶을까 생각해 봤다. 결과는... 하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도 궁금하고 남편의 마음도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풍선껌이 들어있는 알사탕도 필요하다. 이렇게 순수한 동화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욕심이라니... 난 어쩔 수 없이 이미 삶에 찌들어버린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어딘가 씁쓸하지만.. 또 궁금하기도 하다. 다음엔 또 어떤 동화책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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