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이여 무럭무럭 자라라!
<딸 키우기 쉽다고 누가 그랬나 번외 편>
아들이든, 딸이든.. 일단 어렵습니다만.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 원에 다다르자 아이는 신발을 벗고 유치원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입구에서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엉… 엉…”
쉬지도 않고 계속 울어댄다. 마주 보던 선생님은 아이에게 계속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건지 계속 아이와 대화를 이끌어 내신다.
아이는 구슬프게 울고 있는데 난 그런 우는 아이가 마냥 귀엽기만 하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엄마와 제대로 인사를 못해서 그렇다고… 아마 아침시간이라 엄마도 바쁘게 아이를 내려 주시고 가셨나 보다. 아마 우는 아이를 떼 놓고 떠난 엄마의 마음도 편하지 만은 않겠지.
내가 웃음이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은 방긋 웃으며 들어가는 우리 둘째 때문이다. 지금은 엄마와 웃으면서 잘 헤어지곤 있지만 우리도 한때는 눈물의 대하드라마를 찍은 적이 있었다.
4년 전, 코로나라는 듣지도 못한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덕분에 둘째는 두 돌이 지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낼 거야!라는 굳은 불량엄마의 의지는 급 꺾이고 말았다. 가정보육을 오래 해서였을까. 아니면 원래 그냥 그런 성격이었을까. 5살이 되어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는 등원할 때마다 눈물 바람이었다. 이런저런 배경 다 떼 놓고 보면 엄마가 아이를 어디 버리고 오는 줄 알 것 같았다.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매일 함께 걸어서 등원을 했는데 저 멀리 유치원 정문이 보이기만 하면 아이는 거북이가 되어 엉금엉금 걸어갔다. 달래고, 혼내고… 아니… 다행인지 그런 것도 필요 없었다.
역시 경력자들.
이런 장면을 수 없이 보아온 선생님들은 아이가 울어도 당황하거나 걱정하는 눈빛 없이 목소리는 부드럽고, 행동은 단호하게 웃으며 “엄마 빠빠이~” 라며 아이를 안고 가셨다. 아니 들고 가셨다. 아이는 선생님 품에서 악을 쓰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한 달은 대게 그렇다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되어도 매일 울음 바람이었다. 다 그렇다는 다른 이들의 조언에도 매일같이 울며 등원하는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담임 선생님의 상담전화를 받았을 땐 제일 먼저 물어본 건 아이가 교실에서 잘 있느냐였다. 선생님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교실에서는 아이가 너무 잘 놀고 있다는 것이었다. 훌쩍 거리며 들어오긴 했지만 이내 잘 지내고 있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고도 생각을 안 하셨다고.
두 얼굴의 사나이.. 아니 어린이였나. 아니면 너무 쿨하게 헤어지면 엄마 서운할까 그랬나. 그런 거까지는 생각 안 해줘도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울며 불며. 연휴가 지나거나, 방학이 끝나고 다시 등원하거나… 어쨌든 집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면 등원 울음바람은 더 심해지곤 했다. 나중엔 내가 적응해 버려 우는 아이를 두고 쿨하게 먼저 돌아서곤 했다.
시간이 가고 아이는 자란다. 키만 자란 줄 알았는데 아직 엄마 눈엔 마냥 아기 같던 아이였는데 신기하게 6살이 되고 3월이 되자 울음 한번 없이 들어간다. 아직은 인사하는 것도 쑥스러워 씩씩하게 인사 한번 못하고 들어가긴 했지만 울지 않고 들어가는 게 어디냐. 그렇게 형님이 되어 1년을 보내고 이제는 7살 진짜 형님이 되었다. 유치원에 최고 형님반에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된 아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제는 엄마에게도, 선생님께도 웃으며 씩씩하게 인사도 잘한다. 그때 왜 그런 걱정을 했을까. 지금의 그 아이가 그때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많이 자랐다.
오늘도 울며 등원하는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을 걸로 생각된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시길. 어른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세상을 고작 3,4년밖에 살지 않은 꼬맹이들은 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 이제 겨우 생각의 싹을 틔웠고 원에 적응하면서 떡잎이 자라서 제대로 된 잎을 틔울 것이다. 그리고 꽃을 피운 그날이 되면 조그만 싹을 틔웠던 오늘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울며, 애쓰며 적응 중인 병아리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