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염한 턱시도 고양이
우리 집 고양이 세 마리는 모두 머리가 반반 가르마 무늬이다. 다들 개성 있고 하나같이 예쁘지만, 요뜨의 무늬가 돋보이는 것은 편애를 안 하려는 필명25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의 앞머리 같은 반반 가르마
딱 입을 만큼만 챙겨 입은 턱시도. 이사 후 그루밍 중독 때문에 털이 잘 안 보이지만, 무늬가 단추 안 잠근 재킷 같다. (너 혹시 사람이냥?)
옷을 입느라 뱃속에서 검은색 잉크가 살짝 부족했는지 귀 끝에 들어간 하얀색 포인트
핑크핑크 코에 살짝 들어간 검은 포인트 (집사 눈에는 테슬라 로고처럼 보인다.)
그루밍하다가 혀 수납을 까먹어서 엄마가 귀엽다고 찍었다.
완벽한 흑백의 조화... 아아, 온 세상이 무한도전 막내냥이다.
요뜨는 가만히 자고 있어도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성격까지 인간친화적이니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엄마가 이런 장난까지 하는데 받아준다.)
우리 엄마는 원래 동물 영상만 좋아하고, 직접 키우는 것은 절대 반대했었다. 그 이유는 동물이 무한 생성하는 초코, 오렌지주스, 털의 삼위일체.
처음에는 고양이를 만지지도 못했다. 부드러운 털 밑으로 울퉁불퉁한 뼈가 느껴지는 기분이 이상해서 소름 끼친다고 했다. 그런 엄마도 요뜨를 보는 순간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엄마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요뜨의 뒤꽁지란다. 머릿결에 윤기가 흐르고, 추운 겨울날 손을 갖다 대면 뜨끈한 게, 사과머리 묶어주고 싶을 정도라고…
그래서 지금은 우리 엄마가 자고 일어나서 출근 준비할 때, 고양이들과 아침 인사부터 나눈다. 엄마 배로 낳은 내가 아니라 크흡…
“요뜨, 잘 잤어?”
(발라당)
“(손가락으로 뱃살의 흐름을 느끼며) 살 많이 쪘네.”
(간식 통 앞으로 가서 머리를 부빈다.)
“하나 달라고? 아줌마 일 가야 되는데, 나중에 누나한테 달라 해라.”
우리 집 고양이들 애칭으로 이름의 한 글자만 두 번 부를 때가 있다. 그래서 필명25도 엄마와 말하면서 본인을 칭할 때 본명으로 그렇게 부른다.
“엄마, ㅇㅇ(필명25 본명 앞 글자만 두 번 부름)도 예뻐해 주세요.”
“니는 너무 커서 징그러워. 귀찮아.”
“세상에, 사실 내 친모가 아닐지도 몰라. 병원에서 바뀐 것 같은 ㅇㅇ의 친모를 찾아 떠나야겠어요.”
“제발 밖에 좀 나가라. 나도 편하게 살자.”
“에이, 밖에 나가면 다 돈이야. 엄마 카드.”
“그냥 마저 자라.”
“네.”
“니 그 말이 듣고 싶어서 그랬지?”
(자는 척)
“불리할 때만 귀가 닫히지 그냥?”
크흠, 고양이가 요물이다. 50여 년 경상도에서 산 여자의 철벽을 무너뜨리다니!
이 요염한 야옹이가 인간의 마음을 뺏는 방법은 다채롭다.
1. 집사가 잘 때 가랑이나 팔 사이로 들어온다.
요뜨는 내 팔의 굴곡을 따라 등을 붙이고 누워서, 축구 선수들이 옆구리에 공을 낀 듯한 자세로 같이 잔다. 특이하게 어릴 때부터 내가 누우면 다가와서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여름에 더워 죽는다.
2. 화장실 뒤처리가 가장 깔끔하다.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신입이나 초바는 방바닥에 초코와 오렌지 주스를 바르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우리 요뜨는 누나 집사를 닮아서 결벽증 같다. 뭘 싸고 나면 모래를 한참 덮고, 화장실 벽면까지 싹-싹- 소리를 내며 삽질을 한다. 가끔 다른 고양이들이 싸고 안 덮으면 앙칼지게 “냐!옹”이라고 혼내며 자기가 대신 덮는다. 단속반 역할을 하며 부모님의 예쁨을 받고 있다.
엄마 왈 “요뜨가 화내면 분명히 이유가 있는 거야.”
아빠 왈 “요뜨, 또 누가 안 덮었드나? 잘했어!”
3. 엉뚱하고 귀여운 행동을 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막내스럽다.
아무것도 모르고 공기청정기 위에 올라앉아서 버튼을 막 누른다거나 (집사의 신상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이불 사이를 파고든다거나 (처음에는 없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근데 이부자리가 불룩해서 찾았다.)
냉장고 위에 올라가서 설거지하는 엄마를 지켜본다거나
집사들이 잘 때 간식봉지를 물고 와서 먹는다거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사냥)
오늘도 요뜨는 집사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고양이들 사이에서 무법자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