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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무법자 ‘깜상’

고양이가 싫다는 엄마가 붙여 준 애칭

by 필명이오

우리 집에서 고양이들을 부를 때는 본명보다 애칭을 더 자주 부른다. 애들이 회사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본명에서 한 글자를 따서 연달아 부른다거나, 회사 어른분들은 애들 생김새에 따라서 직관적인 표현으로 ‘고등어’, ‘검둥이’… 종류는 다양하다.


고양이가 사람 말만 못 할 뿐이지 상당히 똑똑해서 본명과 별명까지 다 알아듣는다. 이쯤 되면 사고 칠 때는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것 같다.


고양이들 때문에 화병 나기 직전인 우리 엄마는 막내를 ‘깜상’이라고 부른다. ‘장꾸(장난꾸러기)’ 정도의 애칭이랄까? 그래서 엄마가 “어이, 깜상!”이라고 할 때는 막내가 사고 쳤다는 뜻이다.


1. 택배 박스 모서리를 한가득 물어뜯어 바닥에 데코레이션

이것 때문에 청소기 연장관에 삑사리 나서 바로 돌릴 수 없다. 빗자루는 필수다.


마지막에 박스 조각으로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여주면 엄마가 좋아한다.


“저것들 밥 먹고 할 짓 없으니까 자빠져서 저지레만 하노.”


“귀여우니까 냅둬.”


“늙어빠진 게 귀엽기는 무슨, 귀여운 애들 보도 몬했나? 쪼마난 애들이 귀엽지.”


2. 집사들이 밥 먹는데 첫째와 싸움 붙어서 털뭉치를 반찬으로 얹어주기

초밥 먹으려고 간장 부어 놓으면 얼마 안 있어서 털이 둥둥 떠다닌다. 건져내려 하면 손에 묻은 털 때문에 더 더러워지니, 단백질이라 생각하고 그냥 먹는다.



얼마 전 햄버거 세트를 먹으려고 케첩을 뿌렸더니 금방 고양이털이 내려앉았다. 이 또한 집사의 숙명이다.


3. 간식 봉지를 이빨로 뜯어 놓기

새벽에 부스럭 소리가 난다면 깜상이다. 집사가 잠이 많아서 몸은 못 일으켜도 정신은 잠깐 깬다.



최근에는 아빠가 거실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저걸 물어온다. 아빠가 예뻐 죽는다.


“하하하하하!”


“ㅇㅇ아빠, 와 그카는데.”


“하하, 지가 강아지가? 저거 물고 왔다. 어, 요뜨, 예쁜 짓을 했는데 집사들이 간식을 안 주드나? 아저씨가 줄게.”


4. 아빠가 기침 때문에 먹는 배도라지즙을 츄르로 착각해서 터트려놓기



엄마가 일어나서 발견했는데, 이미 바닥에 눌어붙어서 치우기 힘들었다고… 그나마 요뜨가 했으니 우리 넷이 집에서 안 쫓겨났다.


5. 집에 널린 스크래쳐는 내버려 두고 벽지만 뜯어놓기



발톱으로 칼집내고 야무지게 이빨로 물어뜯었다. ‘벽지 뒤에 회색 뭐가 보이는데, 에이 설마 콘크리트가 바로 나오겠어?’ 했는데… 그렇다.


엄마가 급한 대로 테이프클리너를 붙여놨지만, 한결같이 여기저기 뜯는다.


6. 새로 산 건조기에 올라타서 창문을 보며 보초서기

고양이한테는 그저 뜨끈한 전망대


엄마는 또 투덜대면서 안 입는 후드티를 건조기 위에 올려뒀다.


“오, 엄마 우리 고양이들 발 시릴까 봐 편하게 있으라고 이걸 올려놨어?”


“아니거든! 건조기 새 건데, 저놈들이 발톱 자국 만드니까 했거든!”


7. 홈플러스 봉투에 숨기




“거기서 살 거냥?”


최근에 비닐봉지에서 종이봉투로 바뀌니, 배달 온 물품을 정리하고 있으면 막내가 잽싸게 들어간다.


엄마는 투덜대지만, 보일러가 가장 뜨끈한 자리에 종이봉투를 올려놓는다. 엄마의 배려로 깜상이 저렇게 녹는다.


8. 머리끈 갖고 사냥놀이하다가 터트려 놓기

건조기 새로 바꿀 때 기존 건조기를 들어내니 밑에 장난감이 한가득 있었다. 머리끈도 포함. 가끔 서랍 밑에 팔을 집어넣을 때가 있다. 고양이들만 볼 수 있는 사냥감이 있나 보다.


9. 고양이들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침대방에서 신나게 놀기



밑에 서랍장이 있는 침대인데, 고양이한테는 거대한 숨숨집으로 느껴지나 보다.



집사가 침대방에 뭘 가지러 가면 다리 사이를 노려 후다닥- 저 밑으로 숨는다.



“집사, 나는 침대 체질이야.”


어느 날은 이 방에 고이 모셔둔 레드벨벳 콘서트 포토북에 들어있던 필름을 물어 왔다…



“어어어엄마아아아, 으어어어.”


“왜? 아가 말을 못하노. 바보 같다.”


“으어, 요뜨, 내 굿즈으으. 어어어어…”


“아, 깜상이 그 방 들어가서 그거 물어왔나?”


“으으으으응.”


“보자, 이빨 자국 났나?”


“으으어, 이, 이, 필름 구겨졌어어어엉.”


“깜상, 저기서 사냥해 왔더나?”


최애 슬기의 포토카드는 안 건드렸으니 금방 용서했다. 애초에 귀한 물건을 고양이가 1%의 확률로 접근 가능한 위치에 놔둔 집사 잘못이다.


“괜찮아. 저거는 필요할 때 프리미엄 붙여서라도 돈으로 사면되는데, 고양이는 돈으로 못 사니까. 깜상이 더 소중해.”


“칫. 그렇게 넓은 마음을 가지셨나?”


“그럼, 그럼. 깜상은 딱 하나뿐이야.”


엄마도 자기 직전까지 유튜브에서 고양이 영상을 볼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한다. 현실이 팍팍해서 집에 늘어진 고양이들을 보면 부담스러울 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팔자 좋은 것들아, 잘 자라. 나는 돈 벌러 간다. 하… 내 팔자야.”


“움먀오~ 잘 다녀와. 돈 많이 벌어 와.”


“에휴, 저것들 꼴도 보기 싫다. 빨리 나가야지.”


어머니는 고양이가 싫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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