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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집사의 고양이 알레르기 수난시대

아빠는 탱커 엄마는 힐러

by 필명이오

평소처럼 부모님 회식에 따라갔던 날, ‘ㅇㅇ삼촌’이 또 나에게 생각할 재료를 던져 주셨다.(얼마 전까지 노견을 키우신 그분이 맞다.)


“ㅇㅇ(필명25 본명)아, 삼촌이 너 갓난아기 시절부터 보면서 솔직히 안타까운 점도 많아. 가정집에서 자라야 될 아이가 엄마랑 아빠 회사를 따라다니면서 크고,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좀 있고, 그렇지?”


“그런 것도 있고, 엄마랑 아빠가 50이 넘어서야 뭔가를 시작하니까 젊음을 뺏긴 것 같고 그렇죠.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뒷부분은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삼촌도 같이 20년은 일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삼촌도 할 말이 너무 많아.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래서 생략하지만, 그렇긴 해. ㅇㅇ이가 이렇게 회사에서 자라면서 보기에는 아빠는 전사고, 엄마가 탱커 같지? 탱커 뭔지 아나?”


“게임에서 몸빵 하는 캐릭터 아니에요?”


“어, 어, 맞아. 그러니까 ㅇㅇ이가 보기에는 우리랑 거래처랑 일할 때, 아빠가 뛰어드는 전사고 엄마가 데미지를 흡수하는 탱커처럼 보이잖아? 근데 그게 아니야. 사실 아빠는 탱커고, 엄마가 힐러야.”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조금 이해가 안 가지? 아빠가 칼 들고 싸우는 전사처럼 보여도, 거래처에서 오는 데미지를 온전히 흡수하고, 엄마는 그걸 한계쯤에서 힐링해주는 거야. 삼촌이 처음 입사했을 때, 아빠는 맥주 한 잔도 못 마셨어. 진짜야. 그럼에도 아빠가 술을 마시면서 거래처랑 일해야 할 위치에 있었으니까 여태까지 억지로 마신 거야. 지금도 보면 주량은 여전히 약해서 힘들어하잖아?”


아빠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안주를 먹으면서 버티는 요령도 없어서 더 많이 취한다고 했다.


“집에 고양이들도 봐. 아빠도 고양이를 너무 예뻐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럴수록 기침하면서 힘들어해. 다른 책임감 없는 사람들 같았으면, 알게 모르게 걔들을 벌써 포기했을 걸? 근데 꾹 참고 버티면서 어떻게든 책임지잖아. 그게 아빠야. 탱커.”


고양이들이 집에 온 지 3개월 좀 지났을 때부터 아빠가 알레르기에 시달렸다. 셋을 현장과 사무실에서 키우던 시절, 아빠가 항상 같이 있어도 고양이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이전한 회사 부지는 마당 없이 통으로 현장 건물이라서 고양이들을 집에 데려와야 했다. 아빠의 알레르기 검사 결과, 고양이 알레르기만 해도 4단계. 처방약을 제때 챙겨 먹고, 가족들이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해도, 자다가 기침 때문에 깰 정도다. 그냥 콜록콜록하는 기침 수준이 아니다.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토해내는 듯한 쿠우에헥하는 기침이다.


요즘은 특히 더 심해져서 아빠가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1월 1일 아침부터 3시간 동안 대청소를 했다.


고양이가 온 뒤로 들인 가구 때문에 청소 루틴은 더 복잡해졌다. 바닥에 넓게 깔린 아기용 매트를 다 접고,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바닥을 깔끔하게 닦고, 매트는 물티슈와 손소독제로 구석구석 닦는다. 양면 4단 매트 때문에 닦아야 하는 면적이 3배 이상 많아졌다.



우리 집 탱커는 개띠인데 고양이를 좋아한다. 몸이 안 따라줘서 서로 힘들 뿐. 아빠가 자는 시간에 나도 자니까 자세히 몰랐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기침 소리를 들으니 탱커도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 출근하면 이 백수가 또 열심히 청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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