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를 위한 창과 뱅패인가
화요일에 묵묵히 혼자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고,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외삼촌 No.4에게 카톡을 남겼다.
‘삼촌 지금 우리 집 완전 비상상황이야. 아빠가 알레르기 너무 심해서 출근도 못했어.’
아빠가 자영업자였으니 그나마 낫지, 일반 직장인이었으면 더 큰일 났을 사태다.
이 삼촌은 수도권에서 버스 운전을 한다. 20대부터 버스기사로 살아서 젊지만 근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만약 수도권에서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젊고, 잘생기고, 키가 크다면 우리 삼촌이다.
삼촌한테 바로 전화가 왔다. 오전조 운행하는 날인가 보다.
“여보세요.”
“어, ㅇㅇ(필명25 본명)아.”
“삼촌, 지금 아빠가 기침이 너무 심해. 잠에 못 들 정도야.”
“엄마는 혼자 출근했어?”
“응… 일찍 택시 타고 혼자 갔지.”
“에휴… 매형 어떡하냐.”
“그러게 말이야. 하, 일단 아침에 엄마한테 고양이들 회사로 옮기자고 말했어.”
“매형 병원부터 가보면 안 되나?”
“어후, 삼촌. 병원은 이미 몇 달째 다니고 있지. 약 맨날 먹어.”
“그런데도 그 정도야?”
“어… 심각해.”
“아이고. 동물 하나도 털 관리가 힘든데, 너는 집에 셋이나 있잖아. 그니까 너 고양이 키운다고 했을 때, 삼촌이 처음부터 말했잖아. 동물 키우는 거 보통 일이 아니라고. 네가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시작하라고. 무턱대고 시작하면 사람도 힘들고, 동물도 불쌍하다고. 그런데 지금 봐. 어떻게 됐어?”
“알지… 삼촌이 말린 거. 나도 어제 나름 이불 다 빨고, 건조기에 스팀살균 돌리고, 청소기 돌리고, 밀대에 손소독제 묻혀서 전체 청소했어. 가습기는 습도 40% 정도, 청정기까지 항상 돌리는데 감당이 안 돼.”
“삼촌이 최근에는 뭐라고 했어?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거, 다람쥐 쳇바퀴 삥삥 돌 듯이 사는 거, 그게 제일 힘들고 소중하다고 했지? 근데 지금 니 상황을 봐. 집에 누가 아프고, 일을 못 가고, 우환이 생기니까 어떻게 돼? 다 무너졌지? 엄마 혼자 회사 일 해결해야 하고.”
“하… 나도 더는 모르겠어. 삼촌이 보기에는 우리 애들 어떻게 생각해? 회사로 보내서라도 키워야겠지?”
“흠… 안타깝지만. 어, 솔직히 말해서… 그게 맞는 것 같아. 매형이 저렇게 힘들면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니 생각해 봐. 사람이 죽는 거랑, 동물이 죽는 거랑. 굳이 비교하자면 둘 중에 뭘 선택할래?”
“내가 우리 고양이들을 엄청 사랑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일이 복잡하지. 게다가 우리는 회사에서 키우는 방법이 있으니 윈윈 해야지.”
“그러니까. 그게 맞는 거야. 사람 죽으면 일이 얼마나 꼬이는데.”
갑자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최최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빠 이름으로 낸 사업자, 아빠 신용으로 금리 인하해서 받은 대출, 온갖 세금, 엄마가 혼자 떠안을 회사일의 강도, 이미 회사를 이전하면서 근간이 한 번 흔들렸는데 다시 위기가 오면 우리 부모님의 또 다른 가족인 직원분들의 생계는… 아빠가 여기서 더 아프면 안 된다.
“거기다 매형은 술담배도 하니까 더 아플 건데. 좀 줄여야 하는데.”
“술은 못 마신 지 며칠 됐어. 수도권에서 거래처분들 내려왔다고 전화와도 술자리 못 가졌어. 지금 너무 아파서 담배 피우러 나가지도 못할 정도야.”
“매형 일어나기는 했어?”
“9시 넘으니까 거래처 전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깼나 봐. 통화하는 소리 들려.”
기침 때문에 목 상했으면서 거래처 전화는 “예, 사장님.”하고 받다니…
삼촌은 내가 첫째를 키우려 할 당시 14살 암컷 노묘를 키우고 있었다. 외숙모의 자취 시작부터 함께한 고양이. 숙모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촌도 집사가 된 것이다. 삼촌의 첫째 아이가 6개월, 걔가 16살 때 노화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숙모가 관리를 엄청 잘해주셔서 병원에 데려가면 걔 신체 나이를 8살 정도, 아무리 많아도 10살은 안 되게 봤다고 한다. 지금은 삼촌이 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우리 가족이 동물을 들이려 할 때부터 그게 어떤지 잘 아는 삼촌이 말렸다. 첫째를 키울 때, 회사 이전하면서 셋을 집으로 들일 때, 언제나 말렸다.
‘우리 ㅇㅇ(삼촌 고양이) 보내면서 숙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다시는 동물 못 키우겠대. 동물 키우는 거 사람 아기 키우는 거랑 똑같고, 나이 들어 죽었을 때 상실감이 엄청나서 다시는 못하겠다고. 그 정도로 무서운 일이야.’
“삼촌은 ㅇㅇ키울 때 어땠어? 기침한 적 있어?”
“삼촌도 알레르기 비염이 있어. 그래서 ㅇㅇ을 예뻐해도 같이 있을 때는 괴로웠지.”
“ㅇㅇ(외삼촌 No.3)삼촌이랑 똑같네.”
“어. 나도 기침이나 콧물 심했지. 지금도 가끔 심해지면 약 먹고 그런다.”
“얘들 당장 회사에 분리해도 집에서 한동안 고양이 털 나오지 않아?”
“당연하지. 가구 옮길 때마다 털이 뭉텅이로 나오더라.”
“청소하면 언제쯤부터 털이 덜 나와?”
“이사 직전까지 털은 맨날 나왔지. 그리고 우리는, 니도 우리 집 와봐서 알잖아. 걔만 한 방에 분리해 놓은 거.”
삼촌은 쓰리룸 빌라에서 시작해, 그 야옹이가 고양이별로 가고 2년이 안 되어 아파트로 이사했다.
“어, 문 크기만큼 펜스 쳐놓고?”
“어, 어. 그러니까 너네 집이랑 상황이 다르지.”
“우리 집은 공용 공간에 애들이 있지…”
“내가 그랬잖아. 고양이들 오면 걔들만 쓰는 방에 두고, 다른 데로 못 나오게 하라고.”
“셋이나 되는데 그럴 수가 있나… 넓은 현장에서 살던 애들이라 지금 거실이랑 방 하나도 좁아서 싸우고 난리인데.”
자는데 막내아들이 올라왔다고 발로 퍽퍽 차는 첫째.
“눈에 안 보이는 털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앞으로 그 집에 사는 이상 몸에 다 쌓인다. 가족끼리 잘 얘기해서 애들 회사에 옮기고, 너도 애들이 거기에 적응하는 동안 같이 출근해서 놀아줘.”
“그래. 원래 그런 환경에서 살았으니까 건물이 바뀌었어도 잘 적응하겠지. 내가 걱정하는 거는 그 건물이 예전 거기보다 오래됐고, 겨울에 실내 온도가 10도가 안 되거든. 애들이 우리 집 난방에 적응해 버려서…”
“그건 고양이한테 상관없어. 다 적응해. 일단 애들도 편하고 사람부터 살고 봐야지.”
“그렇지. 사람이 숨을 못 쉬는데…”
아빠가 병원에 가려는지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왔다.
“오우, ㅇㅇ(막내냥)!”
“아빠, 진짜 애들 회사 데려가자. 아빠 천식 생기기 직전이야. 옮겨도 남아 있는 털 청소로 없애는 기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해야 해.”
“돼쓰. 애들 그냥 놔둬. 지금 기침은 얘들이랑 상관없다.”
누가 봐도 고양이 때문이다.
‘저 정도 고집이 있으니까 20~30년 동료 직원분들을 이끌고 사업자를 낸 거겠지….’ 싶어도, 고집은 건강 문제에 부려야지 아빠… 특히 이 날에 둘째냥 스케일링이 있어서 아빠 외출 후에 나도 준비해서 동물병원에 둘째를 맡겨놓고 왔다.
마침 마스크를 쓰고 외출복을 입고 있으니 청소하기 딱 좋겠다 싶어서 또 대청소를 했다. 3일 연속이다. 마당 없는 가정집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다. 어후, 내가 미쳤지… 알고는 못 가는 인생이다.
그래도 TV 유튜브에서 백현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열심히 했다.
오후에 마취 때문에 비틀거리는 둘째를 데려와서 눕혀 놓고 정리하니, 다시 삼촌한테 전화가 왔다.
“어, 삼촌.”
“아빠가 병원은 다녀왔어?”
“응. 아까 일어나서 담배도 피우고, 집 앞에 병원 다녀왔나 봐. 원래 회사 근처에서 다녔는데, 갈 힘이 없으니까.”
“걔들이 회사 가기 전까지 관리 더 잘해야 해. 너 애들 털 맨날 안 빗어주지?”
“항상 빗어주는데? 고무 빗으로. 장갑처럼 생긴 거 있잖아.”
“고무로 하면 안 되고, 털 사이사이까지 죽은 털 긁어서 빼주는 빗으로 해야 돼. 빳빳한 거.”
“갈고리처럼 생긴 거?”
“어. 그걸로 빗으면 얼마나 털이 많이 나오는 줄 아나?”
“축구공 하나는 나오겠지.”
“하나는 무슨. 축구공 여러 개 계속 나온다. 한 마리가 그 정도야.”
우리 집은 심지어 공기청정기 세 대나 돌리고 있다. 고양이들을 데려오면서 계약한 신형은 고양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거실에. 원래 거실에 두던 것은 세척해서 안방에. 삼성 에어컨 바꾸면서 서비스로 받은 제품은 고양이 화장실이 모여 있는 내 컴퓨터방에. 과열되지 않도록 잠깐 끌 때를 제외하고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신형은 계약할 때부터 필터 교체 주기도 짧게, 범위도 큰 제품으로 설정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이 안 된다. 정말.
“어? 삼촌, 아빠 들어왔다.”
아빠는 고양이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면서 비몽사몽 누워 있는 둘째를 예뻐해주고 있었다. 둘째가 집사들 중에 나만 친하게 지내니까 아빠는 몇 달 만에 둘째를 만졌다. “어구, ㅇㅇ, 고개를 바닥에 박지 말고. 자~ 이렇게 손 위에 올리고.”하면서 자세까지 잡아줬다.
“그래. 삼촌이 나중에 또 전화할게.”
삼촌이 전화를 끊자마자 아빠 전화가 울렸다. 삼촌일 것 같았다.
“어, ㅇㅇ아.”
“매형, 괜찮아요?”
“응~ 이제 괜찮다. 고맙다.”
“아휴, 매형. 고양이들 회사 데려가서 키우세요. 계속 거기 있으면 매형이 힘들어요.”
“같이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뭐.”
알레르기가 적응될 리가 없다.
“매형, 도라지 좀 챙겨 드세요.”
“도라지즙 아침마다 먹고 있다.”
아빠는 아침마다 홍삼 스틱, 배도라지즙, 비타민C, 리버풀(You’ll Never Walk Alone Liverpool FC 말고 Liverfull) 등 영양제를 엄청 챙겨 먹는다.
“어후, 그런데도 기침이 많이 나와요? 병원 약 잘 챙겨 드세요.”
“으응~ 알았다.”
“ㅇㅇ(필명25 본명)이 7일에 우리 집 오기로 했어요.”
문화생활을 하러 1월 7~9일은 수도권 삼촌집에 머물기로 했다. 근데 아빠가 이렇게 아파서… 내가 집안일도 안 하고 집을 비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응. 내 알고 있다.”
“걱정 마시고요. 푹 쉬세요.”
“어~ 니도 운전 조심하고 쉬라.”
아빠가 무슨 마음으로 버티는지 딸은 정말 모르겠다. 아빠가 너무 건강까지 갉아먹으며 희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