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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Jul 22. 2023

츄르 편식하는 공장 출신 고양이

이사할 때 양심을 공장에 두고 왔나

 “엄마, 왔어?”


 “어~ 고새끼들은 자나?”


 “한참 됐지. 아빠는?”


 “뭐 담배 피우고 밖에 운동 좀 하다 들어오겠지. 어이, 고양이들아, 아줌마가 집에 오면 오셨습니까~하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어야지. 그대로 뻗어 자면 되나?”



 “엄마, 뒤에 봐.”



 “요뜨, 멸치 얻어먹을라고 벌써부터 냉장고 앞에 앉아있구만. 잠이 확 깨나? 누나가 안 주드나? 하루종일 붙어 있어도 간식도 안 주고 다 부질없제? 나와봐라. 빨리 주고 나도 쉬어야지. 신입이도 먹을 거가? 자, 조금만 먹어라. 요뜨, 선나, 신입이도, 선나.”


 엄마와 아빠가 최근에 나간 모임에서 어떤 분이 ‘선나’라는 단어를 쓰셔서 오랜만에 생각났다고 요즘 저 단어 쓰기에 꽂혀 있다. 나는 처음에 ‘선나가 무슨 뜻이지?’하고 검색해 봤더니, ‘조금’을 뜻하는 방언이라고 나와있어서 그제야 이해했다.



 “요뜨 반응이 와 시큰둥하는데? 바라던 게 이게 아이가?”


 “츄르 달라는데?”


 “…이놈들 때문에 옷도 못 갈아입고 뭔 짓이고 나온나.”




 “자~ 우리 요뜨~ (달그락) 오줌싸개~ (달그락) 겁보~ (달그락)”


 “어머니, 호칭에서부터 편애가 심해요.”


 “뭐 어쩔 것이여~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 마리는 오줌싸개, 한 마리는 사람을 싫어하고, 내가 예뻐해 줄 수 있는 건 우리 요뜨밖에 없지. 그치, 요뜨야?”


 “딸보다 요뜨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럼~ 오죽하면 그랬을지 스스로 반성을 해보면 알 수 있지요~ 잔소리를 얼마나 했으면~ 요뜨, 맞제?”


 “어린 자에게도 배울 점은 있느니라~”


 “저러니 내가 딸이라도 예뻐할 수가 없어요~ 어이, 초바! 이건 안 먹나?”




(이걸 나한테 먹으라고 줬냥?)


(외면)



 “엄마, 혹시 초바한테 파란색 츄르 줬어?”


 “응. 세 마리 다 파란색 줬는데?”


 “초바가 그 맛만 처음부터 안 먹더라? 저거, 기본 참치맛 빨간색 주면 먹어.”


 “길표가 배불러갖고. 쓸데없이 까다롭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될 것이지. 괜히 신입이만 2개 먹네.”


 “초바는 왕자님이야. 그릇도 자고 있는 자리에 갖다 줘야 먹어.“


 “요즘 요뜨도 해먹 위에서 그카드만. 고새끼들 전부 배불러갖고. 하루종일 뒤집어 자고.”


(집사, 갖다 줘.)



 ”있어봐. 내가 가져와서 초바만 따로 짜줄게.”


 “야야, 초바 뒤에 따라간다. 방에 안 들어가게 조심해라. 털 날린다.”


 “요뜨만 들어올라고 난리지 초바는 괜찮아. 아구구, 우리 초초가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집사들이 몰라줬지? 자, 이건 먹을 거야? 오… 혀가 마중 나왔어. 먹는다.”


 “저, 저… 야, 초바. 밖에 고양이들은 간식 구경도 못 하는데, 니 자꾸 그럼 되나? 공장에 살던 시절은 다 잊었나?”


 “어머니, 얘들도 각자 취향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럼 간식을 안 주면 되겠네! 맨날 놔두는 사료는 안 먹고 내~ 간식만, 간식만. 양심 없는 고양이들. 응? 밖에 애들은 사료도 없어서 못 먹는구만. 행복한 줄 알아야지!”


 “엄마는 얘들이 공장에 있을 때만 해도 초바가 츄르 안 먹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 표현하는 거라고 했으면서…”


 “그땐 집에 털이 안 날렸다이가!”


 아빠가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돌아왔다.


 “어이~ 야옹이들 간식 한 그릇씩 했나? 요뜨, 배 보자, 배. 어어엉, 빵빵하네.”


 “엄마, 근데… 간식 사야 되는데. 지금 살게?”


 “하… 아까운 내 돈… 싼 걸로 좀 적당히 샀으면 좋겠다. 앞으로 츄르 두 자루 갖고 세 그릇으로 짜주야겠다.”


 “하하학! 아니이! 왜 그래 엄마! 애들이 지금 하루에 두 번 주는데도 부족하다고 야옹야옹 하는구만.”


 “ㅇ여사, 쟈들이 무슨 낙이 있겠노. 이제 밖에 못 나가는데, 그냥 먹고 싶은 간식이나 주자. ㅇㅇㅇ(필명25), 애들 빨리 사줘라.”


 “정말 돈 아까운 짓이다. 횟수를 못 줄이니까 양을 줄여야지! 간식값만 한 달에 얼마나 들어가는데!”


(우리 집 김치냉장고 한 칸을 가득 채운 고양이 간식)


 “7~8만 원어치를 3주 만에 다 먹으니까… 한 달이면 츄르만 10만 원 되려나? 요뜨 멸치가 3~4만 원, 신입이 북어도 3~4만 원, 초바 닭가슴살은 한 2만 원?”


 “이봐라! 무슨 고양이가 한 달에 간식만 20만 원 치를 먹는데? 얘들아, 그냥 다시 공장 가자. 집보다 넓은 곳에서 24시간 뛰어놀고, 쥐도 잡고, 얼마나 좋니? 좀 꼬질꼬질할 뿐이지.”


 “공장에서 자고 가는 공냥이 또 있잖아.”


 “뭐 알아서들 살겠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입, 초바, 요뜨의 관리감독 하에 공부하는 집사 필명25입니다. 제가 요즘 브런치에 자주 못 오고 있는데요. 공부 문제도 맞지만, 사실 대략 보름 전부터 초바가 원인 모를 구토로 힘들어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초바는 직접 치료를 받으러 가려면, 그것도 정말 급할 경우에 수면제를 먹여야만 겨우 잡아서 데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바가 물만 마셔도 15분 내로 토해내는 상황이라 수면제 섞은 간식을 먹이긴 어려울 것 같아서, 항상 가던 동물병원의 원장님과 상의 후 약물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위염약을 가루로 지어주셔서 하루 3번씩 습식 사료에 섞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초바는 헛구역질 정도만 가끔 하고 구토는 멎었는데, 신입이도 그제부터 구토를 해서 같은 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있고요. 요뜨는 어릴 때부터 환절기에 한 번씩 오른쪽 눈에 맑은 눈물 자국이 생기는데, 이번 여름에도 그래서 저랑 아빠가 안약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동물이 어디가 아파도 표현을 못 하는데, 새벽에 자다가도 혀를 내밀고 꺽꺽대는 모습을 집사는 옆에서 지켜보고 토사물을 치워주기만 할 수 있는 한계는 마음이 아프지만, 저희 냥이들은 그나마 고질병 없이 무난하게 자라주는 편이라 운명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초바 약값만 1주일에 4만 원 정도 들어갔는데, 이것도 동물병원비로는 저렴한 축에 속하니, 새삼 한국인은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동물병원 데려갈 때마다 괴리감에 ‘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만 바라보는 생명을 책임지는 정신적/경제적 무게란… 지금처럼 성인이 되어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내가 정말 겉핥기 정도만 알고 있었구나…‘라고 느낍니다.


 다음 편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세 마리의 치료 과정이 될 것 같고요. 앞으로 제가 자주 못 오더라도 반려묘들과 건강하고 사랑 가득한 묘생&인생 즐기고 계시길 바랍니다. 삼수생의 취미 생활 공간에 귀한 시간 내어 들어와 주시는 여러분께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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