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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비 May 04. 2023

바이탈리스

제롬 D. 샐린저가 1951년에 쓴 <호밀밭의 파수꾼>은 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홀든 콜필드라는 고등학교 중퇴자가 특유의 예민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이야기다.


이야기 초반에 콜필드가 데이트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룸메이트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콜필드가 보기에 그 룸메이트는 완전히 속물인데, 실제로도 데이트 상대랑 카섹스 할 생각만 머리에 가득한 놈이다.


대화를 나누며 그놈은 허락도 없이 콜필드의 ‘바이탈리스’를 머리에 바른다. 하지만 콜필드는 그 정도쯤은 체념한지 오래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콜필드는 룸메이트 놈의 데이트  상대가 자신의 어린 시절 소꿉친구였던 ‘제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콜필드의 가슴이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이 장면에서 가장 내 관심을 끈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의 슬픔이 아니라 지나가듯이 언급된 ‘바이탈리스’였다. 콜필드, 더 나아가 50년대 사람들이 쓰던 헤어토닉이라니, 완전 클래식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여전히 판매 중이었다. 가격도 전혀 비싸지 않아서 나는 하나 주문해봤다.


며칠 뒤에 투명한 통에 담긴 노란색 액체가 도착했다. 점성이 하나도 없어서 흔들면 찰랑거렸고, 따라서 보관 시에는 위스키나 소변과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한 번 헷갈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헷갈릴 가능성이 크고, 결국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될 테니까.


사용법은 간단하다. 머리를 감고 나서 말리기 전에 적당량을 두피와 머리카락에 바른다. 그리고 한 20초 정도 마사지를 해준다. 이것을 꾸준히 하면 비듬과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줄어든다는 것이 ‘바이탈리스’의 주장.

그러고 나서 드라이 하면 머리가 약간 이삼일 안감은 것처럼 된다. 손으로 뒤로 넘기면 이리저리 잘 넘어가는 상태 말이다. 따라서 앞머리를 내리는 스타일엔 적합하지 않다. 애초에 이 제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남자가 앞머리를 내린다는 게 선택지에 없기도 했고.


향은, 클래식하다는 표현밖에 안 떠오르는 향이다. 몸이 좋지 않은 자동차를 위해 휘발유에 비타민을 넣은 향 같기도 하고. 그런데 바이탈리스를 머리에 바르고 소파에 앉았더니, 옆에 계시던 나의 1947년생 할머니께선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셨다. 우리 할머니를 믿으시라. 


알코올 향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실제로 알코올이 꽤나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그 옛날, 부랑자들은 이것을 술처럼 마시기도 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위스키와 헷갈리지 말 것.


지금은 거의 골동품 취급 받는 제품인 것 같지만, 너무 오래된 것은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클래식한 헤어스타일이나 제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 검색해보실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홀든 콜필드의 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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