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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제 Jun 15. 2023

네가 생각날 때 마다 썼던 시

[01] 두 번째 장 ( sincerely )




그렇게 웃지 마라


제발 내 앞에서 그렇게 웃지 좀 말아라.

이건 내가 살고싶어서 하는 부탁이다.

 너 때문에 심장이 아프니까 제발 그만 좀.

그만 좀.








잘해주지 마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알겠어.

근데 잘해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꾸 다른 마음을 먹게 되니까.

나는 너와 이대로 오래 보고 싶다.







퍽(fuck)


너에게로부터 그 말을 들은 나를 걱정했을까.

미안해 했을까. 한번쯤 물어보고싶더라.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 건 괜찮다. 다만,

그 말을 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궁금해 해줬으면 했다.

네 입에서 나온 그 말이 한동안 나를 쫓아다녔다.

하루의 끝에서 샤워를 할 때도,

삼시세끼를 먹을 때도,

네가 없는 요일에 그 공간에 있을 때도

심지어 그 공간을 떠올리기만해도

네 입에서 나온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이 지독하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이걸 알면 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까.








마음접기


오늘부로 끝낸다.

지금 이 순간 이후부터는 끝내는 감정이다.

종이접기를 하듯 별 일 아니라는듯이

아주 손쉽게 마음을 접기로 했다.









여유


마음을 접기로 결정을 내린 후에야

나는 그제야 네 앞에서 뚝딱이지 않는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마침내 본래의 여유를 되찾았다.

네가 불도저처럼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이런 모습으로 너를 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너는.

그제야 너는.








그 표정 뭐였어?


내 눈에는 네가 설렌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고싶었다.

네가 안절부절 내 팔을 만지작거려서

입 다물고 있었다.

불도저인 너를 겪어봤으니

이번에도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 다들 더워서 몸이 뜨겁네요. '


그 말을 들은 나는 순진하게도

네가 만지던 내 팔을 만져보았다.

내내 선풍기 앞에 서 있던 내 팔이 뜨거웠을리 없었다.








염색


내가 흑발로 덮자마자

네가 그 다음번에 날 만나는 요일에

흑발이 되어서 왔더라.

너는 금발이었는데 갑작스러웠다.

나 때문에 염색한거냐고

조금 더 솔직하게는

나를 좋아해서 흑발을 한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삼켰다.

혹시 착각일까봐 무서워서.

그래서 나는 칭찬을 선택했다.

흑발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싶었는데 못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될까봐.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가 불도저처럼 다가왔던 날들이.

지금은 그런 적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네가 밉다.











너와 내가 초면일 때,

네가 먼저 내 손을 잡아보고 갔다.

그럴 상황이 전혀 아니였는데도.

그때부터 너를 보면 설레기 시작했다.

네가 나에게 흑심이 있음을 알아차린 순간이다.

-

네가 또 내 손을 잡아보고 갔다.

내 뒤를 지나가면서.

내가 화들짝 놀라 바보같은 소리를 내자

너는 내가 귀엽다는듯이 설레게 웃으며 지나갔다.

-

오늘은 내가 먼저 네게 손을 뻗었다.

너는 그 손을 잡아주었고

나는 네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근데 왜 혼란스러울까.

나를 등지고 서버린 네 뒷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울고싶다


울고싶었다. 처음으로.

이유는 너 였다.

아니아니, 나 였다.


너를 만나는 요일, 일과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어김없이 네 생각을 하던 중에 

멈춘 어느 버스정류장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앉아있었는데 나보다 한참 어른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피곤한 사람인 줄 알았다.

벤치에 똑바르게 앉아서 얼굴을 팔로 가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몇초간 바라보자 그에게선 피곤함이 아니라

울음이 새어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릎에 올려둔 손은 힘없이 폰을 쥐는듯 마는듯 했다.

나같은 누군가가 켜진 액정을 보든말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울었다.


네 생각을 하던 중에 봐서인지

그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봐서인지

그 날 마지막으로 본 네 뒷모습이 차갑게 느껴져서인지


나는 버스에서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못하겠다


더는. 더는 못하겠다.

이제는 혼자 하는 사랑이 되어버린 이 감정들을

더는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나 이제 못하겠다.

하고싶지 않다.









너를 쏟아내는 것은


끝이 없다. 

아무리 쏟아내도 끝이 나질 않는다.

너는 내 안에서 왜 마르지 않는건지

네가 무슨, 그리스신화 속 포도주라도 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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