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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제 Jun 15. 2023

네가 생각날 때 마다 썼던 시

[02] 세 번째 장 ( learning )




눈빛


초반으로 돌아가서 말이야.

너에게 꼭 물어보고싶은 게 있었거든.

처음으로 사적인 대화를 짧게 나누었던 날.

대화가 끝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네 시선이 느껴졌던 날.

나는 살면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물리적인 시선을 알아차리는 것에 유독 둔한 편인데도

네가 날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강렬해서 내가 모를 수가 없었어.

뭐라고 비유해야할지도 모를 만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도 모를 만큼


한동안 그 눈빛을 표현할 단어들을 찾아다녔다.

강렬함, 뚫림,진함, 진득함? 똑바른 시선, 선명한 시선, 분명한 시선...

아직도 그 시선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어.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너는 시선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눈빛만으로도 몸이 뚫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거든. 너가 나 그렇게 쳐다본거 아니.

고장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면서 용기내 물었다.


' 왜, 왜그렇게 쳐다보세요...? '


너는 내 말을 못 들은건지, 나에게 원하는 반응이 있었던건지

아니면 나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나를 쳐다보고있으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되려 더 뚫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봐서 나는 도망쳐버렸다.

그럼에도 하루종일 네 시선이 느껴져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날 나를 왜 그렇게 쳐다본거냐고 물어보고싶었거든.

물어보지도 못하겠지만

결국 대답을 못 듣겠지만.









고마운 것


너 때문에 힘들지만 

네게 고마운 마음도 있다.

사랑이란 감정에 서툴렀던 나에게

너는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나에게 보여주는 네 모습에게서도 배웠고

네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에서도 배운 것이 많았다.

다음번에는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거라고

혹시 네가 이미 마음이 떠난거라면

너와 나의 연이 결코 이어지는 결말이 아니라면

다음 번에 찾아올 사람에게는 더 잘해주겠다고

또 그런 눈빛을 마주하면 빨리 알아차려보겠다고


그런 일은 없길 바라면서도

너에게 배운 점이 많아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겠지만

진심으로 고맙다.








직감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점들 중 하나는

감이 좋다는 것이다.

예감을 포함한 직감.


그런데 이상하지.

요즘 네 모습에서만큼은

내가 틀리길 바라고 있다.


네가 설레게 할 때는 내 직감이 맞기를

네가 멀어지는 것만 같을 때는 내 예감이 틀리기를.

사람이 참 우습다.

사랑이 참 무섭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슬플까봐

장난을 걸어볼까 해.

세일러문을 알고 있니.

가끔 편하게 말하고 있는 너를 보면

오타쿠인가? 싶을 때가 있었거든.

사람은 입체적이니까.

네 모습에 오타쿠 한스푼 담겨있더라도

네가 하는 행동에 설레지 않는 건 아니였어.

네 앞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글로는 참 쉽지.

편지로도 좀 쉽네.


근데 왜 너를 마주하는 순간에만

나는 왜 그렇게 너에게는 솔직하지 못한건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걸까 나는.








안하던 짓


너에게 설렌 후부터 말이야.

네게 반한 순간부터라고 정정할게.

아니지. 그 눈빛은 네가 먼저 내게 반한 거잖아.

그냥 네게 설렌 후부터라고 할게.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하게 되더라고.

사람이 사람에게 이성적 호기심이 있을 때

왜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거든.



네 덕분에 나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

근데 사실 말이야. 나 말고도 네 모습에서도 봤거든.

내가 알아차렸다는 걸 너도 알까.

그런 네가 너무 귀여워서 몰래 웃었다는 걸 네가 알까.








본능


너도 알지.

네가 먼저 느꼈던 긴장감.

너한테서 뚫고 나왔거든.


나도 이제는 알겠거든.

너를 볼 때마다 들던 묘한 기분이 뭐였는지.

네 눈빛이 왜 시작되었는지까지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제 6의 감각이 있더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 끌림.

그걸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정체모를 것이 느껴지는 건 알았지만 

무엇인지는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네가 아니였다면 

처음 본 사람에게서도

그런 긴장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란 말을 하고 싶었어.








더 나은 사람


이건 너에게 가장 고마웠던 점이야.

너와 함께 하고 있으면

난 더 발전하고 싶어졌거든.

나는 원래도 발전에 목마른 사람이긴 했는데 말이야.

그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거였거든.


근데 그 분야에 너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버렸더라고.

네 덕분에 모르는 분야를 습득할 수 있었다고.

네가 아니였으면 관심도 안 가졌을거라고.

그 분야에서만큼은 문외한이 되어있었을거라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을 넓혀 주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싶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싶은데.


꼭 하고 싶은데.

그 전에 전제조건을 달성할 수가 없다.








사랑


너무 솔직한 제목이지.

나는 한때 인터넷 밈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이 왜 자해지?

짝사랑이 왜 자해지?


나는 이제서야 200% 이해한다.

그것마저도

바보같이 네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나있는 나를 좀 알아주라.


네가 아니였다면 영영 이해 못했을 문장이니까.








타이밍


사랑은 타이밍.

나 이제 이 말도 이해했거든.

망설이면 더 좋아하는 쪽이 힘들어지는 거라고.

기차는 이미 가고 없다고.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됐거든.


그러니까 또 네 덕분이라고.


그러니까

 그 기차에 타지말고 나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준비


나 이제 준비 됐는데.

너랑 함께 할 준비 됐는데.

나는 네가 그렇게까지 진심일 줄 모르고

네 속과 속도를 모르고

나는 최선을 다해 신중하게 준비했는데,

너무 오래 걸려버린 거냐고 물어보고 싶다.


네가 이미 상처를 받아버린 거냐고 물어보고싶다.








버려야할 것


사랑을 할 때 말이야.

무엇부터 버려야하는지 알았거든.

나에게 있어서는 신중함이었다.

상대방의 속도를 못 알아차릴 정도의 신중함.

그것마저도 네가 아니였다면 몰랐을테지.








적극적


나에게 돌진해오던 네 모습이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너를 보고 배웠다.








비밀


그리고 하나 더 배웠는데 말이야.

이건 차마 글로도 솔직하게 쓰질 못하겠어.

너무 수치스럽거든.

앞으로 내가 무얼 해야하는지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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