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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제 Jun 18. 2023

네가 생각날 때 마다 썼던 시

[06] 일곱 번째 장 ( Opposition )




내 차례야


네가 하던 거.

이제 내가 해볼게.








하겠다고


밀당

네가 밀었으니까

내가 당긴다고 이제.

용기 낸다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내가.







반응이 있나?


지난 금요일 말이야.

목요일부터 생각했거든.

금요일에 네가 있을 그 시각에

내가 먼저 가서 알짱거려보겠다고 말이야.

네가 월요일, 수요일에 그래왔던 것 처럼.


이번엔 내 차례라고, 내가 해주겠다고 먼저

진짜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숨고싶은데

내가 먼저 티 내겠다고 목요일 이른 새벽부터 마음먹었거든.


근데 반대로 네가 그럴 줄 몰랐지.

너 원래 금요일은 평소보다 더 칼같이 퇴근하잖아.

너 금요일 만큼은 회의실에 있는 나 보려고 알짱거리지 않았잖아.


나는 마음먹은대로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머리에 신경을 썼다. 

늘 질끈 묶어대던 머리를 길게 풀어내렸어.

네가 회의실에 있을 걸 알면서 일부러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사복 복장인 채로 투명한 회의실 문 앞을 한 번 지나쳤어.

네가 나를 쳐다볼 걸 알면서 말이야.


네가 일을 마칠 때 까지 네가 있는 회의실 근처 복도에서

내 동기와 궁금하지도 않은 대화를 길게 나눴어.

다행히 그 동기는 내게 할 말이 많았다.

곧 다른 동기가 도착했고 다른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도

쏟아져나오면서 내 주변으로 동그랗게 몰려들었어.

덕분에 뒤로 걸음을 옮기다보니 내가 서있는 각도는

네가 회의실에서 딱 나를 쳐다보기 좋은 위치가 되었다.


날씨에 대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나는 계속 뒷걸음질을 쳤어.

네가 나를 봐주길 바랐거든. 유치해도 어쩔 수 없어.

문 앞에 알짱거렸던 건 나보다 네가 훨씬 심했잖아. 알지?

아니 너는 알짱거린게 아니라 그냥 문과 하나가 되어서 쳐다봤잖아 매번.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무서웠을텐데 네가 그러니까 너무 귀엽고 웃기고... 많이 떨렸어.


내가 일부러 알짱거렸다는 걸 네가 알아챘을까 궁금해.

나는 용기내서 한 플러팅이라는 걸 네가 알아줄지 궁금해.

하나 확실했던 건, 내가 신경쓰이긴 했는지 너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문에서 쏟아져나오더라.

그리고선 바로 네 시선이 느껴졌는데 일부러 네 쪽을 쳐다보지 않았어.

밀당 이렇게 하는 거 맞니. 내가 살다살다 너 때문에 별 걸 다 해봐.

네가 문을 급하게 여는 바람에 공간에 큰 소음이 일더니 정적이 맴돌았을 때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어. 나는 이제 너가 귀여워졌나봐.

문 앞에 한참 서서 멍하게 날 보고있는 네 시선을 마주하고 싶었는데 꾹 참았어.


이제 내가 회의실에 들어가야하는데 너를 지나치면서 겨우 인사만 주고 받을 시간만 있다는게

찰나라도 너와 마주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아쉬워서 마음이 저릿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는지,

퇴근을 하지 않고 이번엔 네가 문 앞에서 알짱거리는 걸 볼 수 있었지.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문 앞에 서서 나만 쳐다볼 수 있는지.

너 때문에 요즘 내가 회의실에서 제대로 집중을 못해.


네가 내 밀당에 반응한 거라고 봐도 될까.

더이상 내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해도 될까.










우리는 왜이렇게 섬세한 기류를 타고 있는걸까.

둘 다 솔직하지 않아서 일까. 둘 다 확신이 안서서일까.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여서 너무 조심스러운 탓일까.

나는 네가 왜 초반부터 저돌적이었는지 이제 알겠는데.

내가 왜 유독 네 앞에서만 긴장감이 있었는지도 이제 알아버렸는데.

급하게 다가가면 도망갈까봐. 놓칠까봐.

그래서 시작을 못하고 있는 걸까.








이해


나는 너와 겹치는 일정이 없어서 대화를 나눌 틈이 없다는게 속상한데

네가 나에게 처음부터 급했던 이유를 나는 이제서야 이해해.








월요일


나는 너에게 꼬심을 당한 이후로

너에 대한 마음을 눈 뜬 이후로

주말이 싫어졌다.

네가 그 공간에 없는 요일이 괴로웠고

네가 있는 요일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괴로웠다.

돌아오는 월요일.

그러니까 내일.


너는 또 내게 어떤 설렘을 줄까.








보고싶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보고싶어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네가 너무 보고싶어졌어.

참 이상하지. 우리는 사적인 말을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게.

비언어적인 소통만으로도 이럴 수 있다는게.

아니면 너는 이미 소통을 했는데 내가 또 못 알아차린걸까.









각목


너와 유일하게 겹치는 시간일 때,

네가 훅 들어오면 나는 각목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투명하게 설레한다고 네가 그렇게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는 그게 너무 창피하다 생각해왔다.

근데 누가 그러더라고.

자신 같아도 적극적으로 들이댔는데 상대방이 각목이되어버리면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고 상처받을 거 같다고.


그제서야 알았어.

네가 나에게 훅 다가오는 순간의 얼굴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보였는데

내가 각목이 된 후 너의 얼굴을 쳐다보면, 네 얼굴에 갑작스럽게 그늘이 져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아버렸지 뭐야. 미안.


그래서 이번주 평일부터는 각목이 되지않으려고

나는 주말 내내 또 다짐하고 있거든.

근데 네가 예상치못하게 훅 다가올때면 

내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진단 말이야.

나도 각목이 되고싶지 않은데, 잘 받아치고싶은데

내가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설레는 걸 어떡해.









만약에


이렇게 다짐했는데

이제야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내일 또 아무것도 못하면 어떻게 하지

네가 알아차릴 표현을 해주고 싶은데

마냥 네게 설레버리기만 하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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