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쉬다 올게요.
“저..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7월 초까지만 근무하고 휴직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얼마나 연습했을까, 나는 아직 2년 차의 신입 공무원이다. 2년밖에 안된 신입이 벌써 휴직 이야기를 꺼내다니, 나를 안 좋게 보시진 않을까? 휴직을 말씀드리기 전 2주간은 오만가지 욕먹는 상상을 했는데, 과장님께서는 내 걱정과 무색할 정도로 심플하게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셨다. “그래요 정주임, 남편이랑 떨어져서 지내는 거 나도 참 안쓰러웠어..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요”라며..
남편은 지난 2021년 8월에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공과대학에 합격해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같이 갈까 망설였지만, 코로나도 심하고, 오랜 수험생활을 견디고 합격한 나는, 일을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또,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 바로 휴직을 하더라 라는 말을 듣기 싫어 1년간 우리 부부는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사실, 떨어져 지낸 기간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달까?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업무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또, 혼자 지내면서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배우고, 하고 싶던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우리가 장거리 부부가 된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이대로 장거리 부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에 결정적으로, 남편이 2022년부터는 연구와 과제 때문에 방학에 나오기 힘들다며 이젠 아예 못 본단다... '이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또.. 내 인생에 미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라는 생각에 나는 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2022년 7월 7일부터 2023년 8월 31일까지
국가공무원법 제71조 제2항 제6에 따라 휴직을 명함.
그렇게 나는 배우자 동반 유학휴직 결재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2022년 7월 17일 출국 날짜만을 기다렸다. ‘버지니아주는 어떤 곳일까? 가서 여행 진짜 많이 해야지, 외국인 친구도 사귀면 좋겠다.. 오븐도 있다던데 가서 베이킹도 도전할 거야! ’라며.. 여행 욕심이 가득한 그때 문득 “로드트립”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미국 관광지는 대부분 서부(LA, 캘리포니아, 시애틀, 그랜드캐년, 라스베이거스, 옐로스톤 등)에 있던 반면, 버지니아는 동부에 있어서 다시 서부를 가려면 비행기로 5시간은 족히 걸렸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왕 가는 미국인데 버지니아주로 바로 가지 말고 서부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라고.. 내 생애 언제 또 로드트립을 해보겠어! 오빠한테 바로 이야기해야지! 그리고 그날 바로 남편에게 머릿속으로 그린 로드트립 플랜을 설명했다. 그렇게 나는 버지니아행 비행기표를 라스베이거스행으로 바꾸고, 남편은 버지니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했다. 남편에겐 사실 많이 미안했지만 (운전만 5박 6일) 내 생애 다신 없을 로드트립을 한다는 생각에 내 머릿속은 온통 설렘과 행복으로만 가득했다.
그렇게 7월 17일 출국날. 나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엄마 아빠와 인사를 나눈 뒤, 출국장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보는 인천 국제공항과 비행기, 면세점. 모든 게 설렜다. 또 그날이 마침 토트넘이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출국장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보며 속으로 “난 역시 러키 걸”이라며 친구들과 엄마 아빠에게 멀리서 찍은 손흥민 사진을 전송했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난 러키 걸이었다. 공직 2년 차에 낸 1년 휴직.. 그것도 미국에서!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동기들과 친구들.. 그리고 우연이지만 같이 출국한 토트넘까지.. 하하.. 그래 출발은 좋았다. 지금도 당시의 내 설렘을 생각하면 다시 기분이 콩닥거릴 정도니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계획했던 3주 로드트립이 6주로 늘어날지도, 여행이 단순히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비행기 안에서 1년 만에 만나는 남편의 얼굴과 앞으로 여행하게 될 넓은 미 대륙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다.
토트넘 출국현장 오랜만에 보는 대한항공 끄적거렸던 로드트립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