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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정 Dec 28. 2022

아름다운 밤이에요

밤에도 40도인 이곳은 죽음의 계곡.

뜨거웠던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여행을 뒤로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로드트립을 떠났다. 여행 경유지가 많다 보니 구글 맵에 모두 입력되지 않았다. 대충 큰 틀로만 잡아본 결과, 운전만 70시간이 찍혔는데.. 내 생각보다는 시간과 거리가 적게 나와서 ‘해볼 만 한데?’라며 호기롭게 출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522*6

두 번째 우리의 여행지는 데스밸리(Death valley)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터레이(Monterey) 아쿠아리움이었다. 바로 몬터레이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중간에 데스밸리를 거쳐가기로 했다. 데스밸리는 미국에서 별을 보기 가장 좋은 곳 top10에 항상 포함되어 있었고, 라스베이거스에서 2시간 거리인 데다가 몬터레이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미국에서 보는 별은 뭔가 더 환상적일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밤 10시에 데스밸리로 출발했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미국에서의 밤 운전이 어떤 의미인지.. 라스베이거스가 첫 여행지였기 때문일까? 반짝거리고 환했던 조명은 출발한 지 고작 10분 만에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게 이런 말이구나.. 미국은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정~~~ 말 깜깜하다. 가로등이 수없이 많은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데이터는 왜 이리 안 터지는지... 밤 12시면 도착할 줄 알았던 데스밸리는 새벽 1시 반이 돼서야 도착했다. 정말 너무너무 어두워서 도로에 차가 없어도 도저히 빨리 갈 수가 없었다. 무서워서..  

 데스벨리의 자브라스키포인트 도착 4분 전, "오빠.. 여기 맞아? 우리가 제대로 온 게 맞을까? 아니.. 보통 도착 몇 분 전이면 멀리서부터 '여기가 니들이 찾는 거기요'라는 분위기나 사인이 있지 않아?" 하.. 도저히 모르겠다. 분명히 유명한 별 보는 곳이라던데.. 우리는 국립공원에 진입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대의 차도 보지 못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가려던 별자리 포인트가 있는지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가슴을 졸이던 그때.. 러키!! 그럼 그렇지!! 저~멀리 외국인 할아버지가 캠핑카를 주차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 저기다. 분명 저길 거야! 우리처럼 밤에 별 보러 온 사람이 있었어!! 라며 둘이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우리는 가까스로 자브라스키 주차장을 발견하고 벌컥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문을 열자마자 “윽!”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입안으로 훅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랬다.. 지금은 7월 말, 밖은 42도... 해가 없는 새벽 1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데스벨리의 밤은 뜨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나도 바보 같지.. 라스베이거스도 한낮에는 42도, 밤에는 32도였는데.. 데스벨리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 여름밤의 선선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밤 기온은 라스베이거스보다 약 8도가 더 높았다. 내리자마자 등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남편이 하는 말 :  “OO아, 우리 30분만 있다가 가야겠다. 무슨 찜질방에서 숨 쉬는 거 같아”.. 정말 그랬다.. 

별 보러 왔다가 쪄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왔는데! 그냥 갈 수야 없지! 이제 차 라이트를 끄고 별 사진 찍자! 부르릉 시동이 걸렸던 차를 끄고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폰으로 찍은 Death Valley
아름다운 밤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글로 그 경이로운 밤하늘을 표현하는 게 벅차다. 40도의 기온과 3시간 반의 질주는 하늘을 보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등에 줄줄 나는 땀방울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육안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운하와 별똥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차 안에 있는 간이 의자를 꺼내고 30분만 보기로 했던 별을 1시간 반이나 보았다. 온몸은 땀으로 젖고, 다리에는 모래바람이 일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내 인생에서 저런 별은 앞으로도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 보기 잘했다 오빠” 새벽 3시가 돼서야 우리는 몬터레이로 출발했다. 별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달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하늘 위에는 끝없는 별이 수놓아져 있었고, 새벽 6시쯤에는 여명이 밝아오는 해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슈퍼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체력으로 휴게소만 몇 번 들르고 정확히 정오에 몬터레이에 도착했다.    


새벽 6시쯤 도로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데스벨리에서 몬터레이까지 달린 그날 밤이 우리의 로드트립중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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