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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Oct 07. 2024

F12. 물과 전기

 19세기에 전기를 연구하면서 전기 현상을 물에 비유하여 생각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당시에는 힘에 관한 학문 즉 역학(mechanics)의 범주, 더 구체적으로는 유체역학(fluid mechanics)의 범주에서 전기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전류(電流, current; I), 전압(電壓, voltage; V), 저항(抵抗, Resistance; R)이라고 하여 옴(Ohm)의 법칙(V=IR)이 유도되었다.  옴의 법칙을 다르게 쓰면 I=(1/R)V가 된다. 단위 면적(A) 당에 흐르는 전류의 양을 전류밀도(current density) J라고 하고, 전압을 거리(L)로 나눈 값을 전기장 혹은 전계(electric field)의 세기 E라고 하는데, 이를 정리하면 전류밀도 J = I/A, 전계의 세기 E = V/L이다. 옴의 법칙을 다르게 표현하면 J=σE가 된다. 여기서 σ(시그마)를 전기 전도도(electric conductivity)라고 부른다. 전기 전도도 σ(시그마)는 전기 저항도 혹은 비저항(electric resistivity) ρ의 역수이다. 즉 ρ = 1/σ이다. J = σE이므로 (I/A) = σ(V/L)라고 쓸 수 있다. 이 식을 V에 대하여 다르게 쓰면, V = (L/σA)I = (ρL/A)I = IR. 옴의 법칙을 다시 쓰면, 저항 R = ρ(L/A)이 된다. 저항(resistance, Ω)은 도선의 모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서 ρ = R(A/L)가 되어, 전기 저항도 혹은 비저항의 단위는 Ω•cm가 된다. 전기 전도도는 전기 저항도의 역수이므로 그 단위는 1/Ω•cm이다. 전기 저항도나 전기 전도도는 물질의 고유 값이다.


 그 뒤에 전자(electron)의 존재가 밝혀지고, 전류가 흐르는 방향이 음(-)의 전기를 띠는 전자의 이동 방향과 정반대이고, 전자가 하나 없는 상태를 정공(hole)이라고 하여 양(+)의 전기를 전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19세기의 선각자들이 세워 놓은 여러 가지 전기 법칙이 맞는다. 기계공학 더 구체적으로 화학공학에서 유체역학은 복잡한 수학식으로 유체의 흐름을 표현하는데, 필자가 학창 시절에 어느 화학공학 교수의 강연에서 들었는데, 유명한 유체역학 교과서를 공부한 다른 노교수가 말씀하시기를 이 책을 떼고 느낀 소감이 과연 물이 흐르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이 대목에서 최희준(1936~2018)의 유명한 가요 ‘하숙생’의 가사가 생각나네.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전기가 흐른다고 생각하는 전기공학을 바탕으로 반도체 소자의 개념도 발전하였다. 전자회로를 잘 구성하면 논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공관을 구성하는 개념과 용어가 탄생하였고 진공관을 경제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반도체 소자가 만들어졌다. 전류를 증폭하고 정류하는 바이폴라 접합 트랜지스터(Bipolar Junction Transistor) 소자가 처음에는 창안되었다. 지금도 아날로그 소자로 바이폴라 소자가 일부 제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 소자의 대세는 MOSFET(Metal 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이다. 우리말로 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이며 짧게 MOS 소자라고들 부른다. MOSFET 소자는 1959년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우리나라 출신 강대원(姜大元, Dawon Kahng, 1931~1992)과 이집트 출신 아탈라(Mohamed M. Atalla, 1924~2009)에 의해 발명되었다. 현대 전자회로의 기본 빌딩 블록이다. 후대의 연구에 의하면, 여기서 금속은 폴리실리콘이면 되고, 실리콘의 산화물이 좋은 유전적인 성질을 보이나, 뒤에는 유전율이 더 높은 금속의 산화물이 채용되기도 하였다.

      

 MOSFET의 주요 구조는 금속층, 산화물층을 반도체 위에 차례로 형성시키고 밑에 수직 방향으로 소스(Source) 지역과 드레인(Drain) 지역을 형성시킨다. 여기서 n형 MOS와 p형 MOS로 나뉜다. 여기서 MOS 구조가 있는 지역을 수문(水門)이라는 뜻의 게이트(Gate)라고 부른다. 게이트와 반도체의 본체(Body) 간의 전압을 변화시키면 MOS 구조 밑의 반도체 지역의 극성이 바뀌어 소스와 드레인 간에 물길이 생기게 된다. 이 물길을 채널(channel)이라고 부른다. p형 반도체 위에 MOS 구조를 만들고 그 밑의 반도체 구간의 양쪽 소스와 드레인 지역에 n형 반도체를 만들면 n channel MOS가 된다. n형 반도체 위에 MOS 구조를 만들고 그 밑의 반도체 구간의 양쪽 소스와 드레인 지역에 p형 반도체를 만들면 p channel MOS가 된다. 논리 회로를 구성하는데 n channel MOS와 p channel MOS가 모두 필요하다. 하나의 반도체 판 위에 두 가지 종류의 MOS 구조가 다 필요한데, 집적 회로(integrated circuit)에서 두 가지 종류의 MOS 구조가 한 실리콘 반도체 위에 다 있으면 이를 CMOS라고 한다. 집적 회로 제작 시에 보론(B) 원소를 도핑하여 제작한 p형 반도체 웨이퍼 판때기(substrate) 위에 MOS 구조를 만들고 그 밑의 반도체 구간의 양쪽에 소스와 드레인 지역을 이온 주입기(ion implanter)로 비소(As)를 주입하여 n형 반도체로 만들면 n channel MOS가 된다. 그리고 P(인) 원소를 많이 주입하여 확산시키면 넓은 n형 지역이 형성되는데 이 지역을 N Well이라고 말한다. p형의 반도체 지역에 n형의 우물이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이 N Well 지역에 MOS 구조를 만든 뒤에 그 밑에 수직으로 p형의 소스와 드레인 지역을 형성하면 p channel MOS가 형성되는데 그러면 한 판때기 위에 n channel MOS와 p channel MOS가 다 있는 CMOS가 된다. CMOS라는 말에서 C는 complementary에서 나온 말이며 상보성(相補性)이라고 번역한다. 이 말은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빛의 상보성에 대해서는 필자의 생활과학 에세이 제1권 ‘드림 스펙트럼’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금의 전기학 이론이 물과 유추하여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하였다. 반도체 소자를 설명하는데도 물을 연상시키는 용어와 개념이 등장하였다. 우리의 일상 이야기에도 물과 관련된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물과 연관된 지명이 꽤 많다. 필자의 생활과학 에세이 제4권 ‘돌•물•길’에서 수원 지역의 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에 흐르는 두 줄기 물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동쪽에는 복정(福井), 문정(文井)이 있고, 서쪽에는 금정(衿井)이 있고, 한강 이북에는 합정(蛤井), 화정(花井) 등이 보이고, 저 멀리 철원 지역에는 월정리역(月井里驛)이 있다. 영어로 우물에 해당하는 well에 좋다는 뜻과 ‘편(便)하다’, ‘평안(平安)하다’는 의미가 있다. 1873년 당시의 성공한 변호사였던 스패포드(H. G. Spafford, 1828~1888)가 작사한 한영찬송가 470장 노래의 후렴에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라는 가사가 생각난다. 사막 지대나 농경사회에서 사는 곳 옆에 우물이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리라.

     

 혹자는 반도체 소자에서 우물(Well) 대신에 Tub이라는 말을 쓴다. 예를 들어 N Tub CMOS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여기서 tub는 물통 혹은 욕조라는 뜻으로 역시 물과 연관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샤워함으로 목욕을 대신하지만, 개중에는 욕조에 뜨듯한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가 누워 있어야 몸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논 옆에 우물이 있으면 제때 모를 내고 가만히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이런 논을 고래논이라고 불렀다. 한편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논을 천수답이라고 불렀다. 모를 내놓고 나서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논바닥이 마르고 모가 자라지 않고 결국에는 죽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그 해의 농사를 망치게 되니 논 주인은 필사적으로 논에 물을 댄다. 요즘에는 수리 조합이 형성되어 높은 지대에 저수지를 조성하고 논에 이르는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 수로를 영어로 채널(channel)이라고 부르고, 곳곳에 수문 곧 게이트를 설치하여 물의 양을 통제한다. 채널이라고 하면 TV channel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옛날 채널 2는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 채널 7과 채널 9는 KBS, 채널 6은 SBS, 채널 12는 MBC 방송이었다. 정부에서 할당한 TV 주파수의 순서대로 붙인 명칭이다. TV 방송이 디지털로 바뀌고, 할당 주파수 영역이 바뀌었음에도 지금도 옛날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방송 내용(contents)이 물 흐르듯 수로(채널)를 통해 흐르고 있다. 방송사 등을 미디어(media)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중간에 있다는 뜻의 medium의 복수로써 우리말로 매체라고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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