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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Aug 11. 2024

우리, 아니면 남이 되는 해외생활

무엇이라도 엮어야 살아남는다



수민! 너 하노이에 왔다며?




오래전 회사를 그만둔, 

입사동기 미정에게서 어느 날 아침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떻게 안 거야?


일단 만나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다시 만난 미정은, 여전히 ENFP 자체였다. 

그녀 특유의 쾌활함과 유쾌한 웃음소리는

한껏 웅크렸던 수민의 긴장감을 탁, 하고 

풀어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정은 최근에 아버지가 해외사업을 확장하시면서  

함께 일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미정의 등장은, 무인도에 고립됐던 수민에게 

갑자기 등장한 한 척의 구명보트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에
나랑 어디 좀 나가보는 거 어때?





미정에 이끌려 나간 모임은

미정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그 지인들의 지인들로 구성된 그런, 

그대로 '네트워킹' 모임이었다.


혼자였으면 계속 고립됐을 수민은

미정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과 함께 

열심히 참석해서 이곳을 

외로운 해외생활의 안식처(라 쓰고 도피처로 읽는다)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을 키웠다.




이 분은 내 선배고, 얘도 내 후배야



1시간이 채 흐르지 않아

수민은 무언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임의 분이, 

마치 향우회나 동문회장이나 된 듯

술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 집단 내에서도

'내 사람 구분 짓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떠한 만남의 자리에서든

우리는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하거나

공통점을 통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하지만 그날 수민이 느낀 

그 모임의 결은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우리, 아니면 남




이런 느낌이랄까.


지연이든, 학연이든, 혈연이든, 뭐라도

엮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엮어서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그것은 하나의 대화의 매개체가 아닌

상부상조 네트워킹의 단단한 족쇄처럼 여겨졌다.


중고등학교 사회책에서나 보던

향우회나 종친회 같은 거대 집단주의 느낌을

한국도 아니고 해외에서 느끼다니!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주입되고 각인된 사슬을 통해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사슬고리 안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그 사슬이 더 커질수록

공동체의 힘은 더 커지고 

그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직간접적인 니즈를 채워주고 있었다. 



정보 부족에서 오는 타지에서의 불안함과 외로움은

90년대 한창 유행이던 '연고주의' 집단의 탄생을 만든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고급 네트워킹의 장(場)'에서,

핵개인으로서의 수민은 어딘지 알 수 없는 두통을 느꼈다.








《우리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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