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작시(自作詩) 완성
블로그에 처음 글을 썼을 때 어려웠던 점을 꼽자면 크게 두 가지였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오랜 시간 주변을 둘러보며 겨우 글감을 찾고 나면, 어떤 방향으로 글을 확장할지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도 지금은 소재 탐색 시간이 많이 줄었다. 2년 넘게 매주 이 과정을 반복해 온 덕분이다.
잊고 있던 이 어려움을 최근에 다시 느꼈다. 시(詩)를 쓰려고 자리에 앉고부터였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처럼, 여기저기 둘러봐도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소재가 없었다. 시 수업을 들은 지 두 달 남짓 되어가자, 남편은 언제쯤 시를 쓰냐고 묻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아직 시 쓰기엔 역부족이라고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영락없는 여름이구나 싶을 정도로 해가 강하게 내리쬐던 오후에 아이와 함께 동네 산책을 나섰다. 그 순간 놀이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뒤에 비친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 왜 그림자로 시를 쓰고 싶어 졌을까. 그렇게 운명처럼 첫 자작시의 소재를 정했다. 이제 중요한 건 그림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을 쫓는 일이었다. 나는 그림자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어떤 시인은 시가 홀연히 자신에게로 와 출력되는 느낌이라고 하던데, 그건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 재주가 없는 나는 노트를 꺼내 그림자로 연상되는 문장을 모두 적어보았다.
'놀이터를 지나다가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까맣다'
'해가 길어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
'그림자는 나를 따라다닌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무의식의 세계를 그림자와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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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궁리 끝에 시를 끄적였다. 반쯤 쓰고 난 후 옆에 있던 남편에게 읽어주었다. 표정이 안 좋다.
'교복 입은 소년들이 / 자리 잡은 / 놀이터 // 낄낄거리는 소리 너머/ 하얀 연기가 드러난다'
"그러니까 지금 애들이 담배 피운다는 소리지?" 남편의 물음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음, 정말 별로야."라는 냉정한 평가가 돌아온다. 나도 알고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시를 쓸까 싶어서 시작했지만, 심오한 내용을 짧은 시로 응축하는 일은 나의 내공으로 아직 불가능하다는 것을. 욕심을 버리고 쓰라는 남편의 말에 슬며시 일어나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과 아이가 먼저 잠든 고요한 밤, 그림자에 얽힌 이런저런 기억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문득 아이 어렸을 때 했던 그림자놀이가 생각났다.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놀던 시간을 회상하며 노트에 문장을 적어내려 갔다.
'늦은 밤/ 손전등 하나/ 손가락 열 개로 만든 세계를 기억하나요 '
푸근했던 옛 추억을 바탕으로 시를 쓰니 날카로웠던 마음이 아까와 달리 동글해졌다.
지난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를 시작할 때 보편적인 말을 쓰지 마. 시는 제일 빛나는 순간을 첫 구절로 쓰는 거야."
제일 빛나는 순간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한 번 읽었을 땐 괜찮아 보이던 시가 두 번째 읽었을 땐 유치해 보이고, 세 번째 읽었을 땐 부끄러웠다. 노트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시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새벽 두 시,
첫 자작시를 완성했다.
그림자놀이
손전등 하나
손가락 열 개로
작은 세계를 만들던 밤
그림자 품은
검둥 강아지 얼굴 위로
작은 새 날개 위로
길쭉한 꽃게 다리 위로
우리 아기 새하얀 웃음이 내려앉았지요
스르르 잠든 아기 머리맡에서 속삭였어요
언젠가 인생의 긴긴밤을 만나거든
제일 반짝이는 별을 따라 걸어가라고
별빛 아래 그림자를 친구 삼아
너의 세계를 그려가라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