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안 와 일본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캐리어를 이고 법원을 향했다. 지겨운 이 관계를 빨리 끊어내버리고 싶다.
이혼의 과정은 정말 잔인하고 공개적이다. 결혼할 때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것처럼 이름을 부르면 사람들 앞에 선다. 결혼할 때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증인이 되고 이혼할 때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증인이 된다.
먼저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둘이 왔는지 확인을 한다. 두 번째 호명땐 둘이 나가서 번호표를 받아온다. 기다리다 번호 순서가 되면 또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세 번째 호명땐 한쪽으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뒤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판사를 만나고 나면 협의이혼의사확인서등본을 받고 구청에서 신고하면 이혼이 된다.
법원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20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주로 506070의 세대로 보였다. 80대 노년이 되어서도 이혼이라는 것을 하는구나. 저들에게 이혼은 죽기 전에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 세월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씁쓸했다. 어떤 중년의 부부는 기다리면서도 말다툼을 했다. 여자는 너무 지겹노라고 말하고 남자는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네가 원해서 하는 거라고. 말다툼을 하는 부부들은 대게 여자는 지겨워했고 남자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젊은 부부는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딱 달라붙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훑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이혼을 하나 조용히 서로를 탐색했다.
그 사람은 남자화장실로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협의이혼실을 찾고 있었다. 그와 내가 마주쳤다.
"아.."
그는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를 멀뚱히 쳐다봤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보리색 패딩을 입고 왔다. 그의 아버지와 그 사람은 젊을 때부터 하얀 머리카락이 나왔다. 새치가 잘 나는 머리를 하나도 염색하지 않아서 머리가 하앴다. 그의 머리는 항상 그의 엄마가 염색해 줬고 결혼하고 나서는 나의 몫이었다. 이제 그의 머리를 염색해 줄 사람이 없나 보다.
협의이혼실은 숨 막혔다. 짙게 깔린 침묵과 간간히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답답했다. 협의이혼실 의자는 이미 다 꽉 차있고 통로마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순서를 놓치면 이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봐서 이름을 부를 때까지 버텨야 했다. 법은 이혼을 정말 원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이미 법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여전히 부부로서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준다니 참으로 의미가 없었다.
처음 내 이름이 불렸을 때는 정말이지 어딘가에 너무 숨고 싶었다. 수치스러웠고 나는 여기에 왜 있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인생이란 뭘까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출국 시간까지 몇 시간 남지를 않았다.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환불받으려는데 고객센터는 연결되질 않고 시간은 계속 갔다. 비행기 티켓 발권은 쉬운데 취소는 이렇게 어렵다.
고객센터가 연결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일본행 비행기표를 환불받느라고 이혼을 기다리면서 느꼈던 숨 막힘이 줄었던 것 같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 순서를 놓칠까 법원 안에 있다가 전화하느라고 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반복하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판사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네." "네." 두 번 하니 협의이혼의사확인서등본을 준다. 이럴 것이었다면 왜 혼인신고를 했나. 허무했다.
그래도 어쨌든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잘 살라고, 잘 지내라고 하고 싶어서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뒤를 돌면서 말했다.
"미안해. 잘 살아"
엄청나게 씁쓸하고 억울하게 웃으면서 말하더니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가버린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 그 사람은 옆에 있는 계단으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미안하면 제대로 사과를 하던가...
법원 1층에는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나이고 엄마는 계단 앞에 있는 의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 사람은 1층에 있는 엄마를 보고는 뒤돌아서 나갔다고 했다. 엄마는 그 사람이 뒤돌아서 반대쪽으로 가는 뒷모습을 봤다고 했다. 결국에 그렇게 도망 다닐 짓은 왜 했니.
그가 대학원 단톡방에서 나가자 동기 분의 연락이 왔다. 잘 살고 있는 거냐고. 그래서 나중에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다음 날로 변경했다. 나는 바로 구청으로 가서 이혼신고서를 접수했다.
"이혼신고서 접수하러 왔는데요."
"신분증 보여주세요. 남편분 신분증도 가져오셔야 합니다."
남편분이라니. 이제는 남편이 아니라고 법원에서도 허락을 해줬는데 무슨 남편?
"아닌데요. 이혼신고서 접수할 때는 한쪽만 오면 됩니다. 이혼했다는 확인서를 준 건데 어떻게 남의 신분증을 가져오나요?"
"가족관계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양쪽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아닌데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한쪽 당사자만 와서 신고하면 되는데요."
멍청한 구청 직원은 서류를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거린다. 아 순간 너무 짜증이 밀려왔다. 안 그래도 오늘 이혼해서 기분 안 좋은데. 한 번만 더 물어보면 구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세금 받는 공무원이면 일을 똑바로 처리하라고. 이혼이 장난이냐고. 난리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때 옆에 있던 직원이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이혼신고서를 접수할 때는 한쪽 당사자만 와서 신청하면 되는데요. 이분이 양쪽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맞나요? 확인해 주세요."
구청 직원 왼손의 네 번째 반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런 멍청한 공무원도 결혼해서 잘 사는데 나는 왜!!! 왜!!! 왜!!
구청 직원은 내 얼굴 한번 보고 서류 한번 보고 내 얼굴 한번 보고 서류 한번 보고 일을 처리해 줬고, 나는 6시 5분에 구청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혼을 하는 걸까? 그 사람과의 이별이 후회되지 않는 걸 보면 난 참 힘들었구나 싶다. 나는 왜 그에게 욕 한마디도 시원하게 못했을까. 이렇게 끝나버리니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허무했다.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_나의 아저씨
그렇지만 살고자 하는 큰 의지가 꺾여 있었다. 인생이란 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구나.
저는 작년 11월부터 갑자기 좋아져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12월에 브런치를 시작했어요.
아직 제가 이혼한 것보다 결혼한 것으로 사람들은 더 많이 알고 있죠. 그런데 이미 소문났겠죠 뭐.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요.
"요즘 결혼 생활이 행복하신가 봐요. 얼굴이 너무 좋아지셨어요."라고요.
그러면 저는 "폭력 때문에 헤어졌어요"라고 말해요.
왜 제가 요즘 예뻐졌다는 말을 들을까 생각해 봤어요. 아직 저는 고군분투 중이거든요.
그런데 저는요. 이혼을 겪고 나서 진짜 나를 찾은 것 같아요.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 썼던 많은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싫은 것에 대해서 못한다고, 싫다고 말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어요. 나를 찾아가는 기쁨이라는 게 뭔 줄 아시나요?
저는 결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 줄 알아요. 그래서 이혼이 더 괴로웠고요. 이혼은 그냥 괴로운 거예요. 굳이 이혼을 경험하지 마세요. 순간 헤어지는 게 답인 것 같겠지만 정말 이혼은 너무 큰 아픔이거든요.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만 기억해 주세요.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죠. 남자는 비슷비슷한 거 같고요. 맞춰갈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어요. 서툴러도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보석들을 잘 찾으시면 좋겠어요.
글을 쓰려면 그때의 상황에 빠져 들어야 하잖아요. 내가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을 떠올리려니 많이 괴로워요. 그렇지만 정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감정에 대해 직면하고 글이 저를 읽어주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답니다. 저는 저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묻는 사람에겐 솔직하게 말해요. 폭력 때문에 헤어졌다고요. 그리고는 할 말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그냥 브런치를 보내줘요. 그걸 또 하나하나 다 말하기에는 저도 지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