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결혼, 너무 긴 이혼

고통의 연장, 조정기간

by 레몬숲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속았다는 억울함.


남들은 동거하면서 몇 년씩 산다는데 나는 법적으로 묶였다는 이유로 신혼여행 첫날부터 시작된 폭력으로 난무했던 4개월의 결혼 생활로 돌싱(적나라하게 이혼녀)이 되었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내가 더러워진 것 같았다. 억울함은 상실로, 상실은 삶에 대한 허무함으로 느껴졌다. 어떤 일에도 이렇게 까지 애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님이 된다는 게 허무했다. 열심히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바쁘다고 이혼 준비를 안 해올까 봐 이혼할 때 필요한 서류와 이혼 방법을 보냈다. 한 달을 맘 졸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이혼하기가 싫은 가보다. 나는 이제 겨우 숨만 쉬는데. 다음 주가 이혼접수일인데 그가 꼭 나와야 하니 자극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의 이름이 전화기에 뜨면 멀뚱멀뚱히 전화기를 쳐다봤다.


나는 협의 이혼하자고 했다. 협의하지 않으면 소송을 해야 한다고. 소송을 하면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말해줬다.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그가 나를 폭력 했다는 증거도 남기질 않았기 때문에 소송은 의미 없었다. 소송을 하면 몇 개월씩 걸려야 하고 얼굴을 또 여러 번 봐야 하니까.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일 법원 몇 시에 봐?"


"10시

준비서류

1. 주민등록등본

2. 신분증/도장

3. 가족관계증명서(상세)

4. 혼인관계증명서(상세)"


"알았어"




이혼에 필요한 서류들을 다운로드하였다. 등본을 출력하니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일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까. 이혼을 준비하는 기간이 서럽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의 카톡명은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이 되세요."였다.

연말에 이혼하러 갈 사람이 이런 말을 써놓으니 정신이 이상해 보인다. 그의 실체를 세상에 까발려 버리고 싶었다. 가족이 있어도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럽다. 내 처지가 집을 잃은 달팽이가 된 것 같다. 살결이 너무 따갑고, 어두운 곳으로 숨고 싶다.


자녀가 없는 경우, 법원에 이혼접수를 한 후 한 달 후에 다시 만난다. 이혼 접수를 하려면 준비서류와 협의이 혼의사확인신청서가 필요하다. 이혼 접수 후 이혼이 확정되면 이혼신고서에 서명 날인을 해야 하는데 이혼 접수를 하는 날 이혼신고서에 미리 상대방의 서명을 받아두면 이혼확인서를 받고 당일 날 바로 구청에 신고하면 된다. 판사에게 이혼 확인을 받은 후에 꼭 이혼신고서를 구청에 접수해야 이혼의 효력이 있다. 판사에게 이혼확인서를 받아도 이혼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으면 이혼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혼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 혼인신고를 어렵게 하게 했어야지. 청첩장도 확인하지 않고 종이 한 장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게 괜히 원망스러웠다.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이수해야 할 교육과정 같은 게 생겼으면 좋겠다. 가정은 국가의 근간이 되는 것인데 그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이혼 접수 하는 날, 엄청 예쁘게 꾸미고 엄마와 택시를 타고 법원에 갔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 혹시 모르니까 엄마는 내심 불안했던 것 같다. 내 상태가 안 좋기도 했고. 엄마랑 같이 이혼 접수를 하러 간다니. 이게 무슨 불효인가.


"엄마 나 이혼하네"


"그래 빨리 정리해야지"


"근데 나 이혼해도 괜찮은가? 나 이제 혼인관계증명서 떼면 주홍글씨 같을 거 같아"


"그럼 이혼해야지. 네가 서류에 이혼이라고 있는 거 말고 변하는 게 뭐가 있는데? 이제 다시 새 출발 하면 돼"


법원에 30분 전 도착했다. 멀리서 그가 건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지나갔다. 일부러 저 옷을 입고 왔겠지. 나랑 만날 때는 한 번도 입지 않아서 나에게 줬던 옷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매우 불편할 것 같아 건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법원 접수창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시간이 돼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수화음이 길어졌다.


"어딨어?"

"접수하는 데 있으니까 들어와."

그는 엄청나게 차갑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공항에서 수화물 검사 할 때 있던 전자기기 탐지기처럼 생긴 문을 지나니 이혼접수창구가 나온다. 엄마는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이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잘하고 오라 하셨다.


이혼 접수창구 앞에 그가 서있다. 얼굴을 보니 온몸이 경직되고 불편하다. 눈이 마주쳤는데 가만히 있었다. 나는 회색분자가 되어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이혼 접수 서류를 작성했다. 나는 미리 이혼서류를 작성해서 준비해 갔다. 그가 협의이혼의사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정보를 쓰고 도장을 찍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이혼신고서를 꺼냈다.

"여기에도 적어야 돼"

"우린 애가 없잖아?"

이혼 신고서에 쓰여 있는 친권자를 보고 말한 것 같다.


그의 등본이 살짝 보였다. 줄줄이 있는 가족관계가 보였다. 나는 내 이름 하나만 있는 걸 보니 괜히 씁쓸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이혼서류를 접수하는 창구에는 다른 접수창구들도 많았는데 모두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두 분 신분증과 접수 서류 주세요."


창구 접수 직원은 이것저것 서류를 꼼꼼히 확인했다. 뒤에 있는 접수창구에 있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혼 조정기간 동안 상담받으실 수 있는데 신청하실 건가요?"

"아니요."

(상담은 이제 지겹고 지겨워요.)


신분증을 보여주고 창구 직원은 확인 도장을 찍었다. 협의이혼조정기간이 끝나고 어디로 오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네 이제 되셨고요. 한 달 후 0월 0일에 법원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사이에 이혼 변동 사항 있으시면 참석하지 않으시면 되고요. 이혼 의사 있으시면 두 분이 꼭 같이 나오셔야 됩니다. 한분이라도 안 오시면 이혼이 되지 않으니 의사 있으시면 꼭 두 분이 같이 나오세요."


잘 지냈을 리는 없겠지만 잘 지냈냐, 미안하다는 인사 한마디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엄마가 있는 걸 보니 불안함이 누그러졌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자 엄마가 걱정이 돼서 멀찍이 창구 문 앞에 들어와 보고 있었나 보다. 그는 엄마를 보고 흠칫 놀랐다고 한다. 살짝 돌아보니 그가 세상 슬픈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서있다.


건물을 나와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엄마가 말했다.


"아니 걔는 아무리 이혼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어른을 보고 인사를 안 하냐?"


"인사를 안 했어?"


"어 눈 마주쳤는데 어! 이러더니 반대편으로 가버리더라. 싹수없게!"


"그러게 싹수가 없네. 자기의 실체가 드러나서 얼마나 숨고 싶겠어. 불쌍해."


전화가 울린다.

"엄마 오빠가 전화 왔는데?"

"받아봐"

"뭐라 하지?"

"일단 받아봐"


전화를 받았다.

"왜?"

"어 대화 좀 해볼 수 있어?"

"아니 대화 안 하고 싶은데"라고 대답하니 내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본인이 정말로 미안하고 잡고 싶다면 이렇게 차갑고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게 맞나? 버림받는 것이 싫어서 그렇겠지.라고 이해하려는 생각이 찰나에 들어 나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이용을 당했는데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고 있는데.


엄마랑 집에 와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결혼반지를 팔러 종로에 갔다. 결혼반지를 샀던 거기로 갔다. 사장님은 이혼 사유를 듣더니 "소름이 돋는다"면서 "꼭 행복해지라"라고 말했다. 나는 "다음엔 다른 사람이랑 올게요" 하고 웃었다. 결혼반지를 팔고 엄마랑 한우를 먹었다. "내가 엄마보다 인생 선배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집에 도착해 한숨 자고 일어났다.




엄마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돈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우리 딸 도장 찍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왜 내 얘기를 그 사람한테 해!"


엄마는 아랑곳없이 통화를 이어갔고 나는 방문을 닫고 울었다. 우는 소리가 들리니 엄마가 화를 내면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고 친구가 자기 딸 이야기를 하면서 울길래 내 얘기를 한 건데 왜 우냐고 했다. 나는 왜 내 얘기를 여기저기 하냐고 울면서 말했고 너는 엄마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냐면서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왜 엄마는 친구가 딸 때문에 우는 거는 신경 쓰고 내 마음은 보호해주지는 않는 걸까.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네 가족톡방에서 나가줘"라고.

그가 나가자 큰 이모는 말했다. "xxx 초대하지 마라"


정말 이혼을 하는구나 내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에요.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에도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타인이 나의 인생을 선택하도록 두지 마세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수단이 아니라 나 자체의 존재로서 사는 삶을 택하세요. 인간은 물건이 아닙니다.


"아니요."라고 말하세요.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지켜갈 수 있으니까요.

부디 자기 자신을 지키세요. 그리고 타인도 소중한 존재인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나를 지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이죠.

당신이 느끼는 것이 맞을 겁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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