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상담가에게서 협박 전화가 왔다.

개인정보 유출

by 레몬숲

그토록 마음을 다했던 결혼이었는데, 내가 이혼을 하는구나.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지만, 의심하고 또 의심했어야 했는데 나는 참 순진했구나.


이혼을 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연애는 여자와 남자 둘이서 만나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결혼은 양가 어른과 친척들과 양가 어른의 지인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그리웠던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인데 소중한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결혼식을 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상견례 자리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의 계부의 눈빛이 이상했는데, 결혼할 때는 그 집안의 부모와 형제들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왜 나는 이 결혼을 멈추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에 대한 연민이 너무 컸던 걸까. 왜 나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결혼 과정 중에 그의 계부는 '청첩장에는 반드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결혼을 핑계 삼아 사람들에게 축의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결혼 과정에서 그의 계부는 자신의 돈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당일에도 그의 계부의 식구들이나 지인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신혼여행 후에 그의 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에도 그의 엄마와 친누나만 집에 있었다. 신혼여행 후에 시댁으로 인사를 하러 갔는데 엄마랑 친누나만 덜렁 있으니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나는 이 사람이 참으로 외롭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랬던 나의 결혼의 끝은 결국 실패이구나. 이혼은 양쪽의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뭘 잘못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혼을 할 만큼 잘못한 것 같지가 않은데. 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었을까. 왜 나는 사람을 변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보는 걸까 하는 자책으로 가득했다.


이혼의 과정 중에 있는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은 아침에 가서 저녁에 끝나는 디자인 자격증 과정이었다. 원래도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디자인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니까 더 잘 해내고 싶었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xxx의 아내 되시는 ooo 씨 맞으신가요?"


"네? 저는 맞는데 어디시죠?"


"저는 xxx 씨가 다니고 있는 aaa한의원장 aaa입니다. 저의 한의원은 정신과 상담도 같이 하고 있거든요. xxx 씨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많이 후회를 하고 계시는데요. ooo 씨는 이혼하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셨다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나는 몹시 불쾌했고 당황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도 속지 마시라고 하고 싶었다.


"제가 지금 수업을 듣고 있어서요. 길게 통화는 어려울 것 같고요. 이따 저녁에 통화 괜찮으신가요? 끝나면 문자 드리겠습니다."


나는 어느 때보다 강의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 나는 뇌가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학원에서 집으로 가려면 지하철을 환승해야 했다. 나는 매일 학원이 끝나면 환승을 하지 않고 걸어서 환승하는 지하철역까지 갔다. 걸으면 기분이 많이 좋아지니까. 학원에서 환승역까지 걸어서 40-50분 되는 거리였다.


학원이 끝나고 한의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ooo입니다"


"ooo 씨,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네 제가 어떤 상황인지를 몰라서요. 상황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저에게 전화를 거실 일이 없으실 텐데 왜 전화를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xxx 씨가 저희 한의원에 와서 상담을 받고 계세요. 분노조절이 잘 안 되시는 부분은 충동억제 할 수 있는 한의약이랑 같이 드시면서 상담을 하고 있거든요. 본인이 너무 후회를 하고 계세요.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아내 되시는 ooo 씨께서 이혼하기로 마음이 굳어지셨고, 이혼을 원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xxx 씨는 좋아지실 가능성이 많아 보이시는데 ooo 씨 아직 이혼 접수 안 하셨으니 이혼 진행을 중단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그리고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혼하기로 마음이 굳어졌다고 그 사람이 말했나요?"


"네, 본인께서 노력하고 싶어 하시는데 ooo 씨께서 마음을 이미 닫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xxx 씨의 전화도 안 받으신다고요."


그럴 줄은 알았으나 정말 그랬다. 그래서 마음을 정말 차분하게 먹고 하나하나 따져갔다.


"선생님, 이혼은 제가 먼저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신혼여행 때부터 하자고 한 거는 들으셨나요? 그리고 저는 지금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에게 계속 연락을 해와서 너무 괴롭습니다. 제가 왜 전화를 안 받는지를 묻지 않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만 말하니까요. 그사람이 맞춰가는 것은 제가 본인에게 맞춰가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아니요. xxx 씨 본인의 상처도 있고, 현재 너무 힘들게 살고 계셔서 본인도 모르게 화가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심은 아니시래요. 그래서 ooo 씨만 마음을 좀 여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결혼의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남편 분께서 노력을 하시는 게 보여서요. 한 번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신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


"선생님, 나르시시스트라는 거 아시죠? 저는 그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제가 상담받자고 화도 내고 빌기도 하고 사정사정했는데 막상 이혼을 할 것 같으니까 상담을 받는다는 게 저는 이해할 수가 없고요. 저는 이제 그 사람이 무서워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상담을 한 번도 안 받으신 분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 자체가 노력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고, 또 가능성의 시작으로 볼 수 있거든요. 본인이 이 관계에 개선의지가 너무 크시기도 하고요. "


"선생님, 그 사람의 말을 다 믿지 마세요. 선생님 저는 지금 알약을 하루에 8개씩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물 부작용이 있어요. 그 사람은 제가 가진 약물부작용을 무서워 했어요. 그래서 한의원에 간걸 겁니다.


상담 처음아닙니다. 저랑 초기에 부부상담 받았었고요. 그때에도 상담사 앞에서는 울었어요. 후회가 된다고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똑같이 저를 학대했어요. 그 사람이 싫다고 해서 다음 진행이 안된 겁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렇게 저에게 전화하셔서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도 사실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시겠다고 전화하신 건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요 선생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결혼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 사람은 저를 칼로 찔러야 겠다고 협박했어요. 심지어 밥 먹다가 갑자기 눈빛이 변해서 저를 칼로 찌르는 상상이 된다고도 말했고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랑 사실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저에게 동거한 것도, 혼인신고 했었다는 말도 안 하고 저를 속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계속 살 수가 있나요?"


"......"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시는 거세요?"


"아.... 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그렇겠죠 선생님, 혹시 크리스천이세요?"


"네 맞습니다."


"선생님 그 사람이 저를 가스라이팅 할 때, 어떤 구절로 저를 가스라이팅하셨는지 아시나요?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 했어요. 저는 개혁주의자라서 이혼할 수가 없대요.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려고 그에게 질질 끌려다녔고요. 그런데요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그러신 분인가요?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자기 목숨도 버리시는 분인데요? 선생님 저는 그 사람이 선생님을 통해서 잘 나아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더는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주지 않고요. 그런데, 그게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과 같이 한집에 남편으로 가족으로 사는 건 다른 문제 아닐까요? 그사람이 아빠가 될 수도 있는데요?"


"아.. 그렇죠."


"선생님, 저는 그 사람이 선생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 이 전화가 조금 일방적이시라고 느껴집니다. 이제 앞으로는 전화 안 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가 상담의 방향성을 두 분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xxx 씨의 치료에 방향을 두고 진료하면 될까요?"


"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시간을 많이 잡아 먹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네요. 잘 들어가세요. "


전화를 끊고 참으로 허무했다. 폭력을 당한 건 난데 왜 내가 이렇게 시간을 써가며 설명을 해야하는 건가. 인신공격, 명예훼손이 이런 걸까. 슬픔도 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무감정. 허무함. 나의 감정을 억눌러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다.


"네가 해준 게 뭔데 나는 너한테 받은 거 없어. 네가 뭘 그렇게 잘했는데 네가 뭘 그렇게 예쁨 받을 만큼 잘했는데. 네가 원해서 이혼하는 건데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냐고!"


친하게 지내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 생활 잘하고 있느냐고. 별일 없는 거냐고. 그래서 내 상황을 조금 설명했다.


언니는 계속 말했다. "oo야 너를 지키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지. 네 생명이 제일 중요해. 그것만 생각해"





제가 시리즈로 연재하는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신 분들일까 생각해 봤어요.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할 생각이 있으시거나 결혼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겠죠.


이혼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생명이 위협이 된다면 멈추는 것이 맞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정말 살 방법을 같이 찾아봐요. 힘이 안 나시겠지만 힘내세요. 그리고 살아있으면 또 길이 생기더라고요.


결혼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 중에 이 글을 보신다면 결혼을 생각하시는 상대방을 주변에 많이 보여주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가 문제를 해결해 방식도 꼭 따져보시고요. 상대방을 생각할 때 마음속에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결혼한 믿을만한 선배에게 꼭 물어보세요. 결혼 안 한 사람들한테 백날 물어보면 뭐 하나요. 저는 매우 짧게 경험했지만 '결혼'이라는 세계는 싱글 때와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괜히 상대방을 오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단점을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잖아요. 그럴수록 더 주변에 물어보세요. 묻고 묻고 또 묻고 점검하고 확인하고 매의 눈으로 지켜보세요.


저도 나름대로 잘 살펴봤다고 생각했는데요. 약한 부분이 건드려지니까 무너졌던 거 같아요. 그러니 본인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본인의 애착유형에 대해서도 공부하세요.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하나의 단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보편적인 단점인지 무조건 확인해 보세요.


저는 콩깍지보다는 모성애가 너무 강했어요.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남자도 조심하세요. 여러분은 그 남자의 엄마가 아니거든요.


고난에 유익이 있기는 하거든요? 그렇지만 굳이 고난을 경험하지 마세요.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죠. 여러분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사랑 때문에 많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keyword
이전 06화너도 알잖아. 간음 외에는 이혼할 수 없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