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상실감은 연애하고 헤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혼은 자아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모든 공든 탑이 다 무너지고 더는 더 잘 살 수 없을 것과 같은 고통이다.
아래 글은 이혼 과정 중에 썼던 글의 일부를 가져왔다. 지금은 이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 감사하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상실감이다. 어디에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렇게 대화가 잘되고,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냥 결혼이란 걸 하고 싶었던 걸까.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 왜 나는 분별하지 못했을까. 자기 경계가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재고 따졌어야 했나. 사람 마음으로 장난치는 것 같아서 밀땅 같은 건 싫어했다. 자기 경계가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하나님은 왜 이 결혼을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그동안은 그렇게 막아주셨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결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웨딩 촬영하는 날 갑자기 코로나에 걸렸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였을까. 청첩장을 다 보내고 나서도 파혼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오래 구두를 신고 있다 보니 발이 너무 아파 기우뚱기우뚱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피곤하지, 수고 많지 라며 다독이는 게 아니라, 똑바로 서. 나처럼 다리에 힘줘. 라며 나를 가르쳤다. 그래 이때에도 이상했는데 나는 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불편하다고 표현하지 못했을까.
나는 계속 혼인신고한 그날에 머물러 있다. 혼인신고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를 내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지나온 시간인데 계속해서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상상속에 살고 있다. 뇌가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하루종일 생각한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그는 나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겠지.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슬픔과 패배감으로 나 자신이 싫어진다. 좋았던 때가 계속해서 생각나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절실하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시간이 가는 걸까. 내가 마주할 일들이 너무나 괴롭다. 내가 받았던 확신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눈이 가려졌던 것일까. 나는 이제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걸까. 하나님이 너무도 멀리 있다. 하나님은 아무런 목소리가 없다.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내가 만든 가정은 행복하길 바랐는데. 그래서 나 노력 많이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 전쟁이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그의 카카오톡에서 나의 사진이 내려갔다. 그의 페이스북에 나의 사진이 다 사라졌다. 나의 게시글에 그의 흔적이 사라졌다. 그는 나와 SNS를 끊었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사라진다. 외롭다.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야겠지. 그렇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변화해야겠지.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프다. 이대로 죽으라는 법은 없겠지. 그렇지만 하나님은 대체 어디 계신가요.
그러나 다시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거야. 나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 생각하며 살고 싶어. 나는 존엄하게 살고 싶어.
그는 하루에 몇 통이고 전화를 한다. 내 전화기는 그의 연락으로 불이 난다.
"오빠 나는 오빠랑 더는 할 말 없어. 전화 그만해. 나는 엄마네 집에서 지내고 있어. 비밀번호 00000. 집에서 오빠 물건 챙겨가."
"알겠어. 그럼 법원은 어디로 가는 거야? 다음 달에 연차 쓸 수 있으면 쓸게."
"아마 oo법원?"
"그리고 짐은 오늘 다 안될 수도 있으니까 한번 더 갈 수도 있어. 법은 oo법원으로 알고 있을게"
"그래. 한번 더 언제?"
"다음 주 내로 빨리 뺄게. 근데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진짜 이혼하고 싶어?"
그는 참으로 비겁했다. 신혼여행 3일 차에 이혼하자고 나를 괴롭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혼하자던 사람이 왜 자꾸 이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볼까? 이제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를 자극하지 말자. 지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찌 됐든 이혼을 해야 한다.
그는 본인의 물건을 한 번에 가져가지 않고 몇 개씩만 가져가서 다시 집에 올 구실을 만들었다. 가장 처음에는 자신의 물건 중 좋아하거나 값이 있는 물건들만 가져갔다. 그다음엔 내 물건을 가져가 나를 화나게 했다.
"어제 짐 못 챙긴 거 오늘 한번 더 가서 챙길게. 그리고 다다음달 초에 연차낼 테니까 그때 법원에서 봐"
"그래 상담받는다 들었어. 상담 잘 받아"
그는 한방 상담소에 다닌다고 했다. 그의 상담가는 나에게 전화 와서 그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면서 이혼을 말렸다.
"너희 집에 내 핸드폰 하고, 자동차 관련 서류를 안 가져와서 그러는데 가지러 가도 돼?"
"오빠 나 이사할 계획이라 오빠 물건 다 가져갔으면 좋겠어.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돼서 그때 가져가줬으면 좋겠어! 헹거 아래에 오빠 바지 몇 개 접어놓았는 데 있으면 챙겨가고 핸드폰이랑 자동차 관련서류는 들어오는 입구 오른쪽에 있어. 책장에 오빠 서류도 다 가져가! 실수로 안 가져가더라도 이사할 때 오빠 집으로 내가 택배로 보낼게"
"그래. 잠깐 통화 가능해?"
"아니 괜찮아. 할 말 있으면 카톡으로 하자"
"이혼하는 거 이번 달에 하고 싶어?"
"응 빨리 하면 서로 편하고 좋지. 이번달에 돼?"
"센터장님한테 물어봐야지. 근데 네가 원하면 되도록 이번달 말에 해보자"
"그래 센터장님한테 말해보고 알려줘"
"가능하면 며칠이 좋겠어?"
"0일이나 00일, 다른 날은 어려워"
"알았어. 이번주나 다음주내로 알려줄게"
"응 그래. 준비서류 필요한데 각자 1. 가족관계증명서 2. 혼인관계 증명서 둘 다 상세로 주민번호 전부 보이게 3. 주민등록등본 4. 신분증, 도장 필요해. 각자 준비해야 되는 거라 오빠 이름으로 된 거 준비해서 가져오면 돼"
"o"
그는 내가 너무 우울증이 심해서 교회를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고, 회사에는 자기 혼자 돈을 벌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엄마, 그의 담임목사 등 주변인들을 이용해 나와 연락하려고 했다. 나는 그와 이혼을 해야 했기에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
"참 그리고 우리 목사님이 한번 만나보자는데 가능해?
"아니야 괜찮을 거 같아"
"o"
"내일 바지 챙기러 몇 시에 가면 돼? 그리고 말일 날 오전 10시에 법원에서 보자"
"오전에 챙겨가면 좋을 것 같아"
"나랑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지?"
"무슨 대화?"
"지금 우리 관계에 대한 대화. 이혼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서 대화했으면 좋겠는데 부담스러워? 비밀번호 00000 맞아? 아 아니다. oo야 그냥 담주 내로 택배로 부쳐줄래?"
부쳐줄래? 라고? 도대체 왜 이제야 말투를 부드럽게 하는 것인지, 이렇게 부드럽게 말할 줄 알았으면서 왜 그동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도대체 왜 이제 와서야 내 맘을 들어보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와서야.
"나도 바빠"
"혹시 지금은 어려워?"
"응"
"알았어"
왜 할 수 있었으면서 안 했을까.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거잖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결혼식 때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했던 서약은 대체 뭐였냐고 울부짖었을 때 넌 나에게 말했잖아.
"네가 해준 게 뭔데. 나는 너한테 받은 거 없어. 네가 뭘 그렇게 잘했는데, 네가 뭘 그렇게 예쁨 받을 만큼 잘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