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 남아 있는 숙제

익숙함에 속지 말 것

by 레몬숲

그날 차 안에서 비극이 일어난 날. 나는 그에게서 익숙한 사람을 봤다. 아빠다.

나는 결국 아빠보다 더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의 집은 유교, 불교, 물 떠놓고 비나이다가 짬뽕된 전형적인 한국의 가부장적 집안이다. 아마 나는 신앙이 없었다면 페미니즘 최선봉에서 여성 운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딱한 사람이다. 장남인 아빠는 15살에 가장이 됐다. 할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친할머니를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양반집 외동딸로 시집오기 전까지 자신의 아버지에 등에 업혀 다녔고, 집안에 머슴도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처녀였을 때 동네에 시집 안 간 처녀는 일본으로 데려간다는 소식(맞다. 위안부 강제소집)을 듣고 할머니의 아버지가 급하게 시집을 보낸 곳이 바로 나의 친할아버지다.


친할아버지는 장남인 아빠만 사랑채에 불러서 고기를 먹이고 줄줄이 딸린 딸들은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 막내아들인 삼촌이 태어났을 땐 이미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었다고. 집에 있던 돈들은 할아버지가 흥청망청 써버리고 알코올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는 전형적인 마마보이였으며 할머니는 10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5명만 살았는데 그 5명 중에 장남이 바로 나의 아빠다.


아빠는 수학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갑자기 가장이 되어 학교를 때려치우고 일을 해야 했고,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자식이 아니라 남편처럼 생각했다. 아빠를 집착하고 힘들게 했다. 고모들은 그런 할머니를 질려했고, 나의 엄마의 친구였던 둘째 고모가 아빠를 소개해줘서 둘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가 딸인 나다.


엄마가 나를 뱃속에 가졌을 때부터 아빠랑 할머니는 내가 딸이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엄마에게 수고했다는 말없이 아들이길 바랐다면서.


모시고 살았던 친할머니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싫어했고 맞벌이였던 부모님은 나를 이 집 저 집 맡겼다가 외할아버지가 나를 돌봐준다고 하셔서 외갓집에 맡겨졌다.



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리 울어봤자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엄마가 나를 외갓집에 맡겨두던 어느 날부터는 엄마가 없어도 내가 울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지만 30대가 된 지금에도 그때가 떠오른다. 놀다가 엄마가 있는지 뒤를 돌아보면 엄마는 항상 없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다 커서 엄마가 마음 아파하시면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엄마한테 안 와도 된다고 말했다고.


외할아버지는 일하러 가시고 외할머니는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외할머니는 자주 나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경찰서나 슈퍼에 가서 엄마 번호를 알려주고 여기에 전화해 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좀 똑똑했던 것 같다. ㅋㅋ


내가 4살이 되던 해에 집을 사면서 친할머니랑 부모님이랑 나랑 살게 되었고 친할머니는 나를 정말 정말 미워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주로 벽을 보고 선생님 놀이를 하거나 노트에 친구를 그려서 글을 쓰면서 혼자 놀았다.



어렸을 때 내 이름이나 딸이라고 불려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는 주로 나를 "개년", "개 같은 년", "씹년"이라고 불렀고, 아빠는 주로 나를 "이년"이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인어공주에 나오는 문어 마녀 같이 뚱뚱했고 못됐다. 할머니가 나를 "개년"이라고 부르면 나는 할머니에게 "내가 개년이면 나를 낳은 아빠는 개놈이고 할머니도 그럼 개겠네!" 라면서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할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 나는 왜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까.


할머니는 엄마랑 나를 아빠를 뺏어간 년들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피해서 열심히 일하느라 늘 밖에 있었고, 나는 할머니에게 학대당했다. 할머니가 내가 할머니를 괴롭힌다고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면 아빠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빠가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는 모습들이 또렷하다.


할머니는 정말 마녀였다. 할머니는 내가 자고 있으면 차가운 물을 부어서 잠을 깨웠고, 샤워하려고 하면 화장실로 들어오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옷들을 찢어놓고 미닫이 문이라 잠기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와 수시로 내 물건을 가져가고 망가트렸다. 내 방에서 사라진 것을 할머니 장롱에서 찾으면 늘 거기에 있었다. 할머니는 정신병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에게 욕하다가 자기 분에 안 풀리면 옆 집, 앞 집에 가서 내가 할머니를 때린다고 거짓말했고, 그때마다 옆 짚, 앞 집 이모들은 나에게 와서 "할머니가 원래 좀 그러니 네가 이해하라"라고 했다.


나와 6살 차이 나는 남동생 사이에 딸이 있었는데 '딸'이라서 엄마가 지웠다고 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 아이를 보낸 것을 후회한다. 내가 7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문은 열렸다.


동생이 너무 귀여워서 만지려고 하면 할머니는 내 손을 때리면서 더러운 계집애 손으로 만지지 말라면서 동생을 못 만지게 했다. 밥도 챙겨주지 않아서 동생이 밥을 먹을 때 옆에서 눈치 보며 받아먹었던 서러운 기억이 난다.



아빠는 엄마를 좋아했다. 그런데 가족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진 못했다. 한날 내가 너무 서러워서 엄마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했더니 그걸 들은 아빠는 "너는 부모를 이혼시킬 년"이라면서 재떨이를 나에게 던졌다. 엄마가 나에게 던지는 재떨이를 막자 아빠는 청소기를 들어서 나에게 던졌다. 그때도 엄마는 청소기를 막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저렇게 괴로운 시집살이를 하는 거고, 힘들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혼하게 되면서 엄마랑 옛날 얘기를 하다가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게 왜 너 때문"이냐면서 어이없어하셨다. 할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아빠랑 헤어졌을 거라고. 나는 아빠랑 한 공간에 있는 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했다. 언제 윽박을 지를지 모르니까.


엄마가 너무 힘들어 이혼하자고 하니 아빠는 주방에서 식칼을 꺼내서 다 같이 죽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빠가 해준 게 뭔데 다 같이 죽냐고. 죽으려면 혼자서 곱게 죽으라면서 아빠의 칼부림을 막았다. 어떤 날은 엄마가 옷을 입고 있으라고 해서 동생이랑 나는 옷을 입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하자고 했고 아빠는 엄마가 이혼하자고 하면 칼을 꺼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엄마와 동생을 뒤에 두고 막아섰다.



동생은 사랑을 정말 많이 받고 자랐다. 아빠랑 할머니가 좋아서 난리였으니까. 그런데 동생은 인간의 가식을 느꼈다고 한다. 누나는 저렇게 괴롭히면서 자기를 사랑하는 게 사랑처럼 느끼지 않고 가식으로 느껴졌다고. 나는 동생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너무 부러웠는데, 이 얘기를 듣고는 너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은 엄마였고, 엄마는 손재주가 좋고 성격이 좋아서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는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밖에서 풀고 왔고 나는 혼자서 외로웠다. 10대가 돼서 할머니의 괴롭힘이 더 심해지자 나는 바깥에 나돌았고 엄마는 내가 왜 그런 줄 모르니까 내가 방황하는 거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집에 마녀가 살고 있어서 집에 들어오는 게 무서웠던 거였어 엄마. 나는 엄마를 지키고 싶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눈물이 하나도 안 나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그동안 할머니가 쌓아둔 거짓말로 엄마랑 내가 친척들과 고모 삼촌에게 아주 몹쓸 짓을 당했는데도 아빠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년에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서 나를 마주치면 "어후 우리 이쁜 새끼"하면서 내 얼굴을 만졌다. 나는 할머니의 행동이 너무 기괴했다. 할머니는 천국에 가셨을까. 고모들도 교회에 다니는데 그게 진짜 신앙일까. 엄마는 예수를 믿으면 너네 할머니랑 고모가 있을까 봐 교회 다니기 싫다고 하신다. 나나 잘해야지..



아빠는 이혼을 정말 싫어했다. 나는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고, 가정에 대한 세미나를 듣고 사람을 가려 만났다. 나는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아빠보다 더한 사람이랑 결혼했다.


나는 그날 차 안에서 그 사람이 아빠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쌍했다. 그리고 자라오면서 아빠의 난폭함은 잦아들었고, 집안에 아무도 아빠랑 대화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그런 아빠가 불쌍했다. 신앙심으로 아빠를 용서하기도 했다.


내가 아빠에게 엉엉 울며 복음을 전하던 날, 나는 내가 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어떤 삶이 있었고, 마음이 어땠는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니가 딸인데 왜 그렇게 생각했겠냐면서" 아빠는 처음으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는 내가 집에 오면 살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아빠랑 밥도 먹고, 다른 식구들이 아빠에게 뭐라고 하면 왜 아빠에게 뭐라고 하느냐고 아빠 편을 들어줬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내가 집에서 나오던 날 나에게 말했다. "네가 뭔가 잘못을 해서 걔가 그랬겠지. 내가 보기엔 너에게 문제가 많다."라고. "아까도 나한테도 그러더니 이혼을 왜 해?"라고 했다. 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모든 기대와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잘못을 했다더라도 딸에게 이런 상황이 생기면 그 새끼한테 분노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아빠는 처음부터 그 새끼가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신앙을 갖고 집에서 쫓겨났다. "부모 버릴 년"이라면서 교회 다닐 거면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왔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내가 20대가 돼서 집을 나왔던 이유가 아빠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최악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기력해졌다.


엄마는 아빠가 내 상황을 잘 몰라서 그렇게 얘기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래도 그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엄마는 아빠도 많이 속상해서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더는 노력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본가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너무 좋지만 엄마는 12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오잖아.


남동생은 아빠랑 비슷하다. 동생은 자신이 아빠랑 비슷하다는 것을 너무 괴로워하면서도 행동은 아빠랑 똑같이 한다. 그래도 동생은 자아성찰이 되니까. 그런데 떨어져 산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그 사람을 피해 본가에 있는 동안 동생은 나에게 까탈스럽게 굴었다. 나는 본가에서 주로 강철부대나 여행프로그램을 돌려봤는데 소리를 4로 해놓고 간신히 입모양만 나오게 들어야 했다. 나는 엄마에게 동생을 왜 저렇게 예민하게 키웠냐고 뭐라 했다. 오냐오냐 키웠으니까.


그런데 이미 가족들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암묵적인 룰같은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고 그 사람과 함께 살았던 내 집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로 중증우울증으로 죽는 날만 기다리며 있었다.



한동안 아빠는 나에게 계속 전화했다. 나랑 전화하면 살 것 같다고.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빠의 전화를 잘 받지를 못하겠다. 어떤 말을 할지 이제 더는 말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아빠는 나를 보면 속상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의 사랑이 마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아빠의 마음을 거부하는 나의 마음이 너무 힘들다. 그런데 아빠 나는 너무 실망했어. 나는 늘 아빠 편을 들어줬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나를 더 기다려줘.



그래도 어쨌든 저는 지금 살아 있고, 제가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의 도움들이 있었겠죠.

가족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이곳에 안쓴 이야기가 더 많고 아마 지울지도 모를 페이지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사셨든지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의 모든 아픈 어린 시절이라도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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