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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Jun 15. 2024

전 그저 알바를 원했을 뿐인데


오늘은 글을 쓰고
내일 다시 알바를 찾아봐야지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런 마음이 뭔지 알아?

막상 가면 너무 좋지만 가기 전엔 너무 싫은 마음. 유치원이 딱 그래.     


잠시 생각하다 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어른도 똑같아.

엄마도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아침마다 너무 출근하기 싫었거든. 근데 막상 또 가면 너무 좋은 거야.

그 순간만 잘 이겨내면 하루가 행복하잖아.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일곱 살 아이에게 인생 선배랍시고 늘어놓은 시답지 않은 조언이 모순이라 느껴지고 이내 자괴감이 들었다. 그 순간을 잘 이겨내기가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운가.

먹고살아야 하기에 억지로 출근한 날이 얼마나 많았고 막상 출근해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허다했는데. 그냥 아이에게 지금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나?     


그건 어른도 똑같아.

엄마도 알바를 하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하기도 전인데 너무 싫어.

솔직히 말하면 싫다기보다 너무 무서워.      


알바 지원서를 심플하게 바꿨다고 포장했지만 사실 그건 심플한 게 아니라 성의가 없는 거였다. 지금까지의 [경력][나의 장점] [추가 정보]를 빼놓지 않고 기재하고 [자기소개]도 열의를 담아 정성껏 적어내서 만약 채용이라도 된다면 정말 어쩌지 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바보 등신 같은 마음이 자꾸 내 발목을 잡았다.

역시나 내 바람대로?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솜사탕 알바는 연락이 없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렇게 쭈구리처럼 겁만 내다가 내 인생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난 촉이 좋은 편이라 내 예감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었기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열정을 잃은 마음에 불을 지피려 가계부를 꺼내 우리의 재정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미 남편은 최선을 다해 많은 돈을 벌고 있기에 더 많은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건 무리였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나지만 더 이상 남편에게 의지만 한 채 살고 싶지 않아 졌다.      




며칠 전 딸아이가 잠자리 독서를 끝내고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날 지켜주고

아빠는 엄마와 날 지켜주잖아.

근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부끄러운 말일지 몰라도 난 그때까지 남편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찍 아빠를 여읜 내게 그래서 아버지가 하늘에서 날 보내주셨잖아 라는 말을 자주 하던 남편의 그늘 안에서만 살고 싶었지 내리쬐는 햇살 안에 당당히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세상은 내게 따뜻하기보다 뜨거울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살았다.

아이의 물음에 뭐라 답할지 몰라 우물쭈물 댈 동안 아이는 혼자 답을 정하고 내게 알려줬다.     


그럼 우리 힘을 모아서 같이 아빠를 지켜주는 건 어때?     


솔로몬의 지혜란 게 이런 것일까? 아이 눈에도 보이는 그것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보다 지킴을 받고 싶은 마음만 가진 채 그렇게 결혼 생활을 해왔다.

남편은 자주 남들에게 딸 둘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지만 난 그냥 우스갯소리 정도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코로나를 겪으며 남편의 사업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폐업하지 않고 10년 동안 잘 이끌어 가고 있는 게 어딘가. 이제라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딘가에 쓰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정신 차리자! 이러다가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 버릴 테니.




다시금 당근 앱을 켰다.

자동으로 구겨지는 내 미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알바를 찾는다.

그 순간 내가 잘할 수 없을 거 같지만 그럼에도 한 알바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공단 구내식당 보조>

시급- 10,000

요일- 월~금 근무

시간- 10:30~13:30     


식당 근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우선 시간이 좋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있을 시간이고 만약 아이가 아프거나 돌발 상황이 생겨도 시간이 짧으니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괜찮을 거 같았다.

올해로 결혼 10년 차지만 여전히 어려운 건 주방일이다. 청소는 얼마든지 광적으로 할 수 있지만 주방만 들어서면 현저히 느려 터지는 내 속도에 내 속도 같이 터진 게 한두 번 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건 그놈의 칼질이다. 작년 겨울 시댁에 김장을 하러 갔을 때 내 칼질을 보고 칠순이 넘으신 고모님께서


아이고 안 되겠다. 내가 할게. 이리 줘. 질부는 저리 가서 좀 쉬고 있어!


하신 게 갑자기 생각났다. 의도치 않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것도 가장 어린 나만 쉬고 있던 아이러니한 상황. 쉬어도 쉬는 게 아닌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던 그날.

주방 보조라면 재료 썰기나 설거지 같은 걸 할 텐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길게 고민 말고 일단 지원해 보자! 뭐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으니깐.

이번엔 지원서를 조금 보충해 본다. 솔직히 열의를 다해 수정하진 않았다. 아직 쭈글이 아줌마의 열정이 전부 타오르지 않았다고나 할까.     


경력- 백화점 근무 (10년 이상)
나의 장점- 성실함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여덟 여성입니다.

근무하게 된다면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몇 번을 쓰고 지우다 다시 용기 내서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탁자에 올려 두기 무섭게 알림음이 울렸다. 속으로 뭐지? 하고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잉?? 거절 메시지?? 방금 지원했는데??


헛웃음이 절로 나서 한참을 실실 웃었다. 헛웃음이든 찐웃음이든 이렇게라도 웃는 게 어디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말도 안 되게 긍정적일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길진 않았지만 고민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걸.

내가 간절하지 않으니 어찌 됐건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이 채용되겠지.

아님 내 지원서부터 주방일은 젬병인 게 티가 났을 수도 있고.

역시 난 안 되나 봐. 여기서도 날 거절 하디니. 뭐 그런 우중충한 자책은 시원하게 뒤로 미뤄두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은 글을 쓰고 내일 다시 알바를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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