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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Jun 08. 2024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여덟입니다


근데 정말 연락이 오면 어쩌지



내 하루 루틴은 매일 쳇바퀴 돌 듯 반복이다.

아이가 일어나는 여섯 시 기상. 아이와 한바탕 놀아주고 아침밥을 먹이고 등원 준비를 한다. 아무리 일찍 준비해도 매일 뭐 그리 촉박한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광란의 질주가 시작되고 겨우 시간 맞춰 유치원 차량 앞에 도착한다. 운동 부족 엄마는 고작 몇 미터에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면서도 최대한 밝은 미소로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차량이 출발하고 뒤돌아서면 바쁜 아침 일과를 토해내기라도 하듯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침밥을 먹고 남편 출근을 돕는다.
그리고 바리바리 짐을 챙겨 아파트 독서실로 향한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 안엔 오늘 읽을 책과 필통 창작 노트와 필사 노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잠바 주머니엔 가장 중요한 고이 접힌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었다.




조용히 독서실 안으로 입성. 대문짝만 하게 지정 좌석 금지라고 적혀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정한 내 자리로 향한다. 외투를 의자에 걸치고 본격적으로 책상 세팅에 돌입한다. 에코백을 탈탈 털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진열하고 그제야 오늘의 책을 편다.

난 지금 박준에게 빠져있다. 작가의 서적을 전부 구입하고 몇 번을 재독하고 열심히 필사했다. 덕분에 필사 노트는 내가 좋아하는 글들로 가득 채워진 나만의 책이 되었다.

작가의 온갖 인터뷰를 찾아보고 노트에 따로 정리한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 감성을 동경하며 어떻게든 본받으려 애쓴다. 누굴 이렇게 닮고 싶어 했던 적이 있던가.

난 아빠를 정말 많이 닮았는데 다 큰 딸내미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을 이렇게나 닮고 싶어 한다는 걸 아빠가 알게 된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서운함을 내비칠 것만 같았다. 근데 한편으론 이해하실 것도 같다. 아빠도 오래도록 김소월에게  빠져 계셨으니깐. 요즘은 소설보다 시 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거의 일 년 동안 소설 집필에 몰두했지만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이 자리에서 몇 번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썼던가. 다시는 못 만날 아까운 내 머리카락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한참 내 머리카락이 뽑히던 무렵 두 손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쥐어뜯다 고개를 들면 그 사람이 걸어 들어온다. 그렇게 추한 내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가준 고마운 사람이 오늘도 구석 맨 끝자리에 있다. 항상 나보다 일찍 오고 늦게 가는 얼굴이 하얀 아가씨는 나와 같은 시간대에 독서실을 이용하는 유일한 입주민이다.


저 아가씨는 어떤 공부를 할까?   


내심 속으로 궁금했지만 알 도리가 없다.

아가씨의 자리는 구석 맨 끝에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책상에 놓인 서적을 볼리는 만무했다.      


원하는 걸 얻으려고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겠지. 내가 작가가 되려는 것처럼.     


이유는 몰라도 문득 저 아가씨가 부러워졌다.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갖게 될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도 이젠 주부 말고 직장을 갖고 싶다.          




꿈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꿈만 꾸고 있는 것 같다.

캄캄한 밤 같은 나날이다. 잠만 자는 밤.

아무리 몸을 바쁘게 움직여도 잠을 자는 것 같다.

얼른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두려움에 두 눈 꼭 감고 자는 척하는 건지도 모른다. 겁쟁이 쫄보 아줌마가 되려는 순간엔 잠시 밖으로 나가 500원짜리 레쓰비 캔 커피로 어지러운 맘을 달래 본다.

어릴 적부터 목구멍 크기가 남달랐던 나는 두 모금이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캔 커피 하나로는 도무지 내 맘을 달랠 수 없다. 집에서부터 고이 천 원을 챙겨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손에 커피를 들고 잠시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당근에 들어가 본다.

며칠 알바를 열심히 찾다가 요 며칠은 또 찾아보지 않았다.

생각만큼 알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친구가 당근에서 알바를 구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당근에선 물건만 팔아봤지. 용량이 딸려서 되는 게 없는 내 폰에 당근 앱이 깔려 있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혹시 하늘도 날 도와주는 건가. (심신 안정을 위한 혼자만의 합리화)

천천히 알바를 살펴본다. 당근 알바는 알바 천국보다는 좀 날것의 느낌이랄까? 당장 급해서 당일 알바 구하는 곳이 많았다. 그중 눈에 띄는 알바를 드디어 찾았다! 당장 내일이었다.




[솜사탕 행사 보조 2인 구인]

시간-6:00-12:00

일급-80,000     


출근 시간이 이르지만 잠 없는 아이를 키우는 나로선 아침잠 점심잠 저녁잠 따윈 잊고 산지 오래라 늦지 않고 출근할 자신이 있다.

무엇보다 구미가 당기는 건 최저 시급을 훨씬 넘어선 13,330원의 시급!!

몇 번 고민하다 조심스레 지원해 본다. 어이쿠 지원서에 뭐라고 적어야 하나.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여덟입니다. 오랜 세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솜사탕 잘 팔 자신이 있습니다.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몇 번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겨우 적은 지원서를 다시 읽고서 고개를 대차게 저었다. 옛날 감성 사정없이 풍겨대는 구닥다리 지원서를 누가 볼까 겁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여덟입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장황한 소개를 심플하게 고쳐 쓴 뒤 그동안의 경력은 따로 적지 않고 [지원하기] 버튼을 조심스레 눌렀다.   

두근두근 지금 시각 오전 11:45

된다면 늦어도 오늘 오후까진 연락이 오겠지.     


근데 정말 연락이 오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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