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유 Jun 01. 2024

알바는 딱 알바답게

프롤로그




무언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괜히 미안한 사람만 많아지는 나이.
어느덧 내 나이가 그랬다.



작년 봄.

어느덧 서른여덟이 되어버린 나는 알바 구하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져 처음 만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정처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던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른아홉 된 오늘의 난 이제 겨우 알바 적응기를 거치고 예전에 만난 파도처럼 지금의 회사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는 대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헤엄쳐 나아가고 있다.

지금부터 경력단절 아줌마의 성공 스토리 말고 도전 스토리를 시작해 보려 한다.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알바 라고 하면 뭔지 모르게 요즘 흔히 말하는 MZ 세대에 어울리는 단어 같다. 나랑은 전혀 상관 없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생소한 단어.

티브이 광고에는 평소 좋아하던 귀엽고 깜찍한 연예인이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하고 명랑하게 여러 가지 알바를 하고 알바는 딱 알바답게 하면 된다고 쫄보 아줌마를 안심시킨다.

라떼는 말야.

알바도 사장처럼이 당연시되는 워라밸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라떼를 기억하는 꼰대 아줌마는 저 사이트에 접속만 해도 삶에 생기가 돌 것만 같았다.

자 그럼 내 삶에 생기 한 스푼 더 해 볼까.

끌리듯 알바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 가입을 해 본다.

뚜벅이인 나는 집에서 가까운 동네로 설정하고 집중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노안인가.

언제부턴지 핸드폰을 들여다볼 때면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 이목구비가 사정없이 한 군데로 모여든단 느낌이 들 땐 얼른 화장대 앞으로 달려가 거울을 본다.


아닌데. 아직 그렇게 늙진 않았는데...  


세수도 안 한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면봉을 집어 들고 아직 익지 않은 뾰루지를 괜히 세게 한번 짜보고는 피만 보고 돌아선다.

소파로 돌아와 다시 미간을 찌푸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아직 아이가 어린 내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알바를 찾다 보니 신기한 마음이 든다.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고용주께 미리 죄송한 마음이랄까. 무언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괜히 미안한 사람만 많아지는 나이. 어느덧 내 나이가 그랬다.




여긴 퇴근 시간이 너무 늦네.. (그럼 패-스)

여긴 토요일도 출근이네.. (그럼 패-스) - 남편이 주말에 출근

어?? 이거 괜찮은데!

카페에서 한 번쯤 일해보고 싶었는데!

가만 보자. 91년생까지만 지원 가능하다고...??

91년생이 몇 살이지...? (생각지 못한 나이 제한에 어쩔 수 없이 패-스)

생각보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알바가 많지 않구나.


이렇게 많은 직종 가운데 내 이력과 선택의 폭에 맞는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이력과 환경보다도 오랜 경력단절로 그간 내 마음속에 한자리 잡고 단단히 박혀있는 두려움이 쉽사리 내게 용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8년의 긴 공백 전에 나는 나름 전문직이라 자부하는 일을 십 년 넘게 했다.

한 가지 일만 해왔기 때문에 여러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와 해오던 일 말고 다른 일을 한다는 건 마치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열아홉의 그 날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때의 내 패기는 정말이지 하늘을 찔렀다. 시내 곳곳을 누비며 아무 이력 없는 이력서를 여기저기 뿌려대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모르던 열아홉 철부지 내가 너무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철들지 말 걸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오랜 친구와 우리 마음은 아직 열여덟인데 하는 말을 20년째 입에 달고 사는 걸 보면 아직 철이 안 든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패기 따윈 정말 개나 줘버렸는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겁 많고 걱정 많은 쭈구리 서른여덟 아줌마가 되었다.

하고 싶은데 하기 싫고 무서운데 자꾸 찾아보게 되는 이중적 매력을 지닌 알바는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이래서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구겨진 미간을 풀고 다시 한번 알바 찾으러 천국에입장 해 본다.

모든 생에 모든 알바가 있다 하니 분명 내 생에 내 알바도 찾을 수 있겠지.


자 기대하시라!! 서른여덟 아줌마의 새로운 도전을. 두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