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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Jun 22. 2024

구인광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여보. 여긴 지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미 이 사람은 여보를 돌+아이로 보고 있어



어떤 일 하고 싶어?     


글쎄. 딱히 정한 건 없지만 한 번쯤 커피 만드는 걸 배워보고 싶었는데 카페는 대부분 나이 제한이 있더라.

91년생? 거의 그 나이까지. 다른 곳도 전부 비슷해.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냐.     


그니깐. 요즘 스무 살 때로 돌아간 거 같아. 난 뭘 해 먹고 살아야 되나 하는 고민을 이 나이에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다시 백화점은?     


이젠 집에서도 너무 멀고 아무래도 퇴근 시간이. 주말에 쉴 수도 없고 모든 게 지금 나랑은 하나도 안 맞아.

그리고 뭣보다 10년 가까이 쉬어서 아는 사람이 없어. 줄이 없다고 해야 하나.

넌 좋겠다. 아이 낳고 좀 있다가 다시 학원 가면 되니깐. 그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나 봐.     


영어 강사 친구와 대화의 끝은 언제부턴가 나의 학력 콤플렉스로 끝이 났다.




사람들에겐 공부하고 싶은 게 없어서 대학에 안 갔다고 했지만 나와 조금만 친해도 그때의 우리 집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 아버지의 부재로 하루아침에 사십 대 과부가 된 엄마는 얼굴을 마주할 틈도 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밤늦게야 집으로 왔다. 말 그대로 억척스럽게 우릴 먹여 살렸다. 자연스레 세 살 터울 언니와 난 서로를 의지하며 커갔고 어느덧 대학생이 된 언니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이른 새벽 학교에 가는 언니 모습은 내가 그동안 동경해 온 대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도 한참 멀었다. 매일 코 언저리까지 내려온 언니의 다크서클이 캠퍼스의 낭만 따윈 없다는 걸 내게 알려 주었다. 일찌감치 난 언니처럼은 못 할 거란 확신이 들었고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요건 비밀인데 엄마가 주신 대학 원서비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 입는데 써버렸고 한참 유행하던 로데오 패션과 그토록 염원하던 캠퍼스의 낭만을 제멋대로 하루아침에 맞바꾸었다. 그리고 무작정 거리로 나가 열아홉에 일을 구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난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일찍이 사회에 나와 억척스럽게 일만 한 고난의 아이콘처럼 그려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엄마는 항상 누구보다 넉넉한 용돈을 꾸준히 제공해 주셨고 갖고 싶은 걸 못 가져 본 적도 거의 없다. 단 하나 열아홉에 그토록 갖고 싶었던 에어맥스 95가 눈앞에 아른거릴 뿐 생각보다 내 삶에 시련과 고난은 그리 많지 않았다.




행운을 끌어다 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요즘 내 인생은 시련을 끌어다 쓰는 기분이다.

이럴 바엔 아예 있는 시련 없는 시련 전부 끌어다가 써버리고 노년을 편하게 보낼 순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련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놈도 한몫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여태껏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학력 콤플렉스는 아이가 태어나는 동시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내 나이 서른여덟에 빠르게 내 머릿속을 장악해 버렸다. 고약한 놈.

시간이 괜찮은 알바는 대부분 파트타임의 학원 강사직이 많았고 전공이 아니더라도 대졸을 원했다. 사무보조를 구인한다는 글을 클릭해 보아도 대부분의 학력은 초 대졸이다.

열아홉의 내 결정이 지금 와서 나의 발목을 잡는구나. 지원조차 못 해 보는 내 신세여.

근데 그때의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해서 대학에 갔어도 뭐가 그리 달라졌겠냐만.

신세타령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랄까? 그리고 신세타령을 할 만큼 내 인생이 후지지 않으니 재빠르게 접어두고 천국에 입장하여 알바를 찾아본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어슬렁




찾았다. 나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오늘의 알바!

야간 세차 알바?? 시간 제약이 많은 나로서는 어쩜 아이가 잘 시간에 일하는 것이 또 다른 방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23:00-02:00

요일-월 화 수 목 금

시급-13,000

초보 환영합니다. 문자로 지원해 주세요.      


날 홀리는 완벽한 멘트.

최저 시급을 훨씬 넘어선 시급에 초보 환영이라니 연락을 안 해 볼 수가 없다.

일단 010... 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구인광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전 서른여덟 여성입니다. 세차 일은 해 본 적 없지만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어디 사세요? 저흰 oo역 부근 아파트 단지 위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자차 있으세요??     


전 oo 살아요. 제가 운전을 못해서요. 혹시 자차가 필요한가요? 구인광고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지원했습니다.     


제가 장비는 다 싣고 가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늦은 시간이라 출퇴근은 어떻게 하실지?     


택시 타고 출퇴근하겠습니다. (버스 공포증으로 그동안 택시만 애용)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슨 말씀?? 이게 무슨 의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슨 말씀인지 파악을 못하겠는데요?? 이럴 때 필요한 건 남편 찬스!!      


여보. 이게 무슨 말일까?? (문자를 보여주며)     


여보. 여긴 지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미 이 사람은 여보를 돌+아이로 보고 있어!
 

돌아이라 정말 돌아버리겠네!!

그 이유인 즉슨 이랬다. 한 시간 시급 13,000원 – 세 시간 일함 - 왕복 차비 12,000원

그 말을 들으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세 시간짜리 알바하러 가면서 한 시간 시급을 차비로 쓴다고 말한 내가 오늘도 바보 등신이구나. 아놔!!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들고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낸다.      


죄송합니다! 너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미처 출퇴근 생각을 못했습니다. 친절히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평안까지 신경 쓰고 난 뒤 한동안 또 현타가 왔다.

사회 단절과 다름없는 8년의 시간 동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 고등학교 생활의 유일한 흔적과도 같은 귀하디 귀한 친구!!     


여보세요? 어이쿠 웬일로 먼저 전화를??

(이 친구는 이십 년 동안 내게 먼저 전화한 적이 거의 없다. 알고 보니 전화 공포증? 전화보단 카톡이 편한 성향의 친구지만 나는 이 친구와 전화 통화가 매번 즐겁다!)     


네가 전화했던데? (역시나..) 나 일한다고 못 받았어!     


뭐?? 일한다고? 언제부터? 어떤 일?     


한 이주 됐나? 그냥 알바!     


나도 알바 구하고 있는데 안 구해지던데?? 거기 사람 안 필요해?? (정말 그냥 해본 말)     


진짜?? 마침 여기 사람 구해. 진짜 한 번 해볼래?     


띠로리 그냥 해 본 말인데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내게 알바 제의가 왔다.      


그냥 눈 딱 감고 하루만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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