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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Apr 23. 2024

〈유전자 지배 사회〉

(가제본)



156. 돌연변이는 유전자의 의도에 반해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또한 다양성의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치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전학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인간과 관련된 여러 주제(사랑, 사회, 정치, 의학)를 조명한다. 특히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 수준의 선택압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었는지를 제시한다. 주요 키워드로는 포괄 적합도,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집단선택, 행동면역계, 길항적 다면발현 등이 있다.

 진화의 열쇠인 유전은 DNA를 복제하고 다음 세대에 상속하는 과정이다. 생존을 위해선 DNA를 교정하고 복구하는 대신 오류를 끌어안고서 유전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했다. 왜냐하면 진화의 필요조건은 유전자 풀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적대적인 자연이 기대수명을 늘릴 필요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유전학적 결정론의 놀라운 사례 중 하나로 이류교배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단백질 수준에서 페로몬이 작용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 예시 중 하나인 MHC는 항원들과 결합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며, 잘 알려진 T세포와 함께 기능한다. 즉, 자신과 다른 MHC 변이를 가져 면역학적으로 겹치지 않는 사람들끼리 냄새로 끌렸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와 진보 성향에게 특징적으로 작용하는 유전학적 요인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보수 성향에선 사회 위계질서를 내면화하게 하는 세로토닌과 혐오 반응과 연관된 편도체의 기능이 두드려졌는데, 그것들이 생존하고 번식하는데 통상적으로 유효했던 진화적 전략을 매개했던 것이다. 반면 진보 측에선 세로토닌과는 달리 진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양의 선택압을 받지는 않았던 도파민을 통한 탐색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4장의 이름은 ‘자연스러운 보수, 부자연스러운 진보’였다.

 또한 저자는 건전한 사회적 균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경제학의 취급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제시된다. 먼저 시장의 소비자들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다만 생물학적으로 경쟁한다. 그들은 군중으로서 값비싼 신호에 매혹되며 따라서 사회가 동의한 권장되는 개체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거대 기업들은 지대라는 형태로 이익을 착취하면서,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기보단 경제학적 생존만을 추구한다. 유전자를 통한 기질의 발현도 일종의 지대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전자는 정의상 거래할 수 있는 소유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어 안 된다고 한다. 나아가서 이렇듯 시장에 참여하는 존재들의 잘못된 가치평가로 인해, 경제는 깔끔한 수학에 맡겨질 수 없고 정치적 구성물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는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이므로 바이러스에게 잘못이 없다고 한다. 〈괴물〉의 제작기를 담은 책에서는 괴물이 유전자의 명령에 혼란을 느낀다고 나와 있었다. 유전 과정은 반드시 유전자 풀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유전을 통해 온전한 사회적 존재를 길러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을 때, 사랑이라는 자기기만은 무력할지도 모른다. 번식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신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더욱 인간적인 생활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계산에서 출생률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전하기를 택하지 않는 개인들에게는 선택에 대한 책임만이 있을 뿐, 역시 잘못은 없는 것이다. 혁신을 다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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