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1 코리안 조르바
어릴 때 우리 집은 방 한 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빨간 전축과 수십 장의 LP와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몇 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 기타를 치다 눈이 맞았고, 음악을 좋아하던 젊은 부부이니 음원 몇 개는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중에서는 아빠 글씨체로 쓴 ‘대학가요제’라는 비디오테이프가 내 눈길을 끌었다. 하얀 종이를 덧붙여 제목이 쓰인... 이상한 비디오테이프.
부모님이 부재 중일 때 비디오에 넣어 틀어봤다. 어두운 배경으로 시작된 화면에는 음악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검은색 바지를 입은 다리와 스타킹을 신은 다리만 등장했다. 두 쌍의 다리는 마주 보고서 엇갈리기도 하고, 재빨리 전진하기도 하고, 느리게 돌기도 했다. 이게 뭔가 싶었다.
머지않아 집 안에 좋지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이모한테 들은 말이다. 아빠가 지루박을 배운다며 무도회장을 나갔고, 엄마는 친구를 대동하고 그곳으로 향했단다. 그리고 다시는 아빠가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됐단다. 이후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그곳을 뒤엎었니, 깽판을 쳤니.. 하는 단어가 종종 들렸다.
아빠의 춤 바람은 그게 끝이었을까. 그 뒤로도 비밀리에 스텝을 밟았을까.
아! 그 이후에는 유행하던 '람바다' 음악에 맞춰 두 딸과 플래시를 흔들어가며 엉덩이를 씰룩대곤 했다.
엄마는 이불을 덮고 시끄럽다고 했고. 우리 셋은 신나게 잠옷바람을 날리며 놀던 기억이 난다.
스텝은 안되지만, 골반을 흔들며 아빠는 지루박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지 않았을까 싶다.
그 핏속 유전자로 인해 내가 20대 때 초라방(초급 라틴댄스방)에서 즐겁게 활동을 했었구나 싶다. 이후로도 나는 재즈댄스, 줌바댄스를 이어가고 있다.
아빠가 젊을 때에는 스포츠댄스가 음지의 문화로 취급당한 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은 (동호회에서는 연애가 저변에 깔린 목적이지만) 건강한 취미생활이 분명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