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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n유미 Nov 01. 2024

학창 시절 내내 반장한 비결은 말빨

Chap. 4  조르바가 되기 위한 조건 : 수준 높은 지껄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3학년 때까지. 나는 매년 학급 임원을 했다. 


아, 단 한 번 예상치 못한 공백기가 있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1학년. 

새 학기 임원 선거를 하루 앞둔 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대입을 앞두고 있으니 공부에 전념할 것인가, 또 임원을 맡아 반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같은 반이 된 친구 J에게 전화를 했다. 

(어찌합니까.) 친구 왈, "네가 나서지 않고 잘 참겠다."


다음 날 선거는 부지불식간에 완료되었다. 1등 반장, 2등 부반장. 땅땅땅. 

정년을 앞둔 학년주임인 꼰대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선고하고 나가셨다. (선거 아님, 선고 맞음)


J는 나를 보며 배꼽을 잡고 소리 죽여 키득키득거렸다. 성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것 같지만, 난 임원은 할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 논리적으로 대항하고 상황을 바로잡아 민주적인 방식의 선거를 통해 임원이 된다. 이런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할 힘도 없었다. (J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 해를 제외하고는, 나는 선거에 나가면 백전백승. 3:1, 2:1, 단독 출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는 적었기 때문에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그냥 무투표 당선도 있었다. 그래도 선거 전 공약이나 당선 후 소감 발표는 기대에 미쳤는지, 선거 직후 화장실에서 내 뒷담화를 하는 걸 들은 때도 있었다. 

“야 우리 반 반장 된 애, ㅈㄴ말 잘해, 짱이야.” 

('에헴~ 그게 나란다.') 화장실 칸에 쪼그려 앉아 나오지 않고 흐뭇함을 즐겼다. 


매년 같은 의도와 공약이었다. 

"학우 여러분, 내가 반장이 되면 말이야. 우리의 1년이 훨씬 더 즐거워질 거야. 

왜냐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구체적인 공약도 없고 뜬구름 잡는 멘트지만, 유머를 섞고 제스처 좀 넣은 별볼 일 없는 꼬드김이다. 

담임선생님께는 안정된 학급분위기를 바치고, 친구들에게는 날라리와 범생이의 조화를 이끌어 온화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리고 행사가 있을 때는 열정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아무튼, 비결은 말발. 말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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