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재회(1)

by 박동현


소호야. 오랜만이네. 나 도현이야. 중학교 삼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네가 여름방학 직전에 학교를 그만뒀으니까 사실은 몇 달도 안 된 사이긴 하지.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널 기억해. 네가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자꾸 나타났거든. 못 본 척 지나갈 수가 없더라. 네 무대 영상도 봤고 예능에 나와 출연진들을 웃기는 모습도 봤어. 또 네가 팬들에게 하는 애교도 보았지. 새 종이처럼 구김 없는 네 표정은 정말이지 신비롭더라.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는 애였다니. 드물게 찾아오는 남성 팬까지 한껏 안아주는 네 몸짓이 내겐 특히 놀랍더라고.


그래도 혹시, 정말로 내가 기억나지 않을까? 이렇게 묻는 건, 우리가 서너 달 정도만 아는 사이였다곤 해도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났기 때문이야. 이중원이나 김상진, 최준학 같은 이름들은 기억해? 너 항상 걔네랑 몰려다녔잖아. 그리고 나는 너희의 셔틀이었잖아. 그렇잖아? 거기다 너희가 부르는 밤마다 나와서 대신 담배를 사야 했지. 너희가 지켜보는 앞에서 편의점이나 슈퍼를 들락거리고, 가능하면 훔치기도 했었어. 너희가 시켜서, 내가 그랬잖아. 아직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그럴 거 같아서 내가 만든 영상이 있어. 비공개로 올려서 우리밖에 못 보니까 걱정 마. 아이디와 비번 아래에 적을게. 그걸 전부 본 뒤에 나를 찾아왔으면 좋겠어. 동영상에 댓글을 달 수 있으니까 그걸로 연락하면 될 거야. 기다릴게.




소호는 책상에 내려둔 편지 봉투를 다시 살폈다. 곳곳에 붙은 스티커들이 알록달록했다. 소속사 주소와 우편번호를 쓴 글씨체가 삐뚤빼뚤함에도 어떤 정성이 느껴져 가장 먼저 뜯어본 팬레터였다.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편지에 적힌 유튜브 계정으로 로그인을 하자, 비공개 설정된 <asdsfwfwd> 따위의 제목을 가진 영상들이 소호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눌러본 <voivelfjw>에는 소호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메시지와 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상스러운 대화를 캡처한 이미지, 속옷만 입은 도현이 거울 앞에 선 자신을 찍은 사진이 슬라이드 쇼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진 속 도현의 몸에는 검붉은 멍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설명을 덧붙이는 자막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은 제가 담배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맞았습니다. 소호가 뺨을 때리는 바람에 안경테가 부러졌는데 그때 왼쪽 뺨에 이렇게 상처가 난 것입니다. <nlnlndippppppp>는 도현에게 욕설을 퍼붓는 소호의 음성이 담긴 영상이었다. 소호와의 통화를 녹음한 것이라는 자막이 화면 하단에 표시되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함께.


어떤 시간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소호는 배신감을 느꼈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저럴 수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미 깔끔히 정돈된 자신에게서는 아무 답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억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신 소호가 떠올린 것은 데뷔 후 질식할 것 같던 2년여간의 무명시절이었다. 길거리캐스팅을 받았다는 자신감으로 학교까지 그만두며 소속사에 들어간 소호는 모든 게 잘 풀리리라고 자신했다. 바로 데뷔조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듯했다. 곧 보이그룹으로 데뷔한 소호는 첫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마쳤음에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부 시간문제로 보였다. 놀랍게도 그룹을 반겨준 것은 무관심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어떻게든 그룹을 굴리기 위해 소속사가 잡은 온갖 자질구레한 스케줄에 내던져진 채였다. 어느 시골 축제의 무대에서 노인들의 무관심한 얼굴을 바라보며 춤을 추던 소호는 그간 어마어마한 착각 속에 지내왔음을 깨달았다. 인지도 없는 아이돌은 결국 계약에 붙잡힌 연습생과 다름없었다. 연차가 쌓이며 계속 낡아질 예정이었으니 연습생보다 더욱 암담한 처지였다. 소호의 선택은 매일 연습실을 오가는 것이었다. 열심히. 그야말로 열심히 연습했다. 소속사가 새로 런칭하려는 걸그룹 데뷔조만큼 열심히 했다. 그러고서는 기진맥진한 채 숙소로 돌아가 바로 잠들었다. 위약금을 낼 능력이 없어 탈퇴마저 불가능한 소호의 자기학대이자 아주 부지런한 후회였다. 그릇된 선택 하나가 인생을 손쉽게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셈이었다.


하지만 소호의 인생은 끝장나지 않았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덕분에 소호의 무대 직캠 조회수가 급상승한 것이었다. 대중들은 무관심한 관객 앞에서 꿋꿋이 칼 같은 안무를 소화하는 소호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는 무명 아이돌. 어느새 노력의 상징이 된 소호는 온갖 티브이 프로그램과 라디오에 불려 갔다. 그건 소호를 넘어 그룹 전체에 찾아온 기회였다. 신곡 쇼케이스와 팬사인회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숙소로 향하던 차 안에서 멤버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뒤늦게 몰려온 감격에 한껏 몸을 맡기며, 소호는 앞으로의 시간을 소중히 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잘하자. 열심히 하자. 소호의 말에 멤버들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몸 안쪽에 단단한 뼈대 하나가 새로 돋아난 느낌이었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


야이씨발년아니일부러나좆돼보라고이러는거지개새끼가눈치살살보면서존나재고있네병신이쪼개지마새껍다니까진짜뒤질라고또개패줘?깝쳐?깝치냐고야야야


마찬가지로, 그것도 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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