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재회(2)

by 박동현

도현이 제안한 대로 연락은 유튜브 댓글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의 아이디로 자문자답을 하는 식이라 알림도 뜨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채널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 불편함 탓인지 연락은 아주 간소하게, 만날 날과 장소를 정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먼저 편한 날이 언제인지 운을 띄운 건 소호였다. 도현은 그래도 바쁘게 지내는 아이돌인데 이쪽 일정에 맞춰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행사 잡힌 날짜만 피한다면 맞출 수 있다고 소호가 답하자, 곧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장소는 두 사람이 다녔던 중학교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편의점이었다. 도현은 거기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현을 만나기 위해 도착한 곳은 소호의 고향이기도 했다. 데뷔 이후로 부모를 만난 적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소호는 기차역 밖으로 나서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실제로 부모를 만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도현과 부모를 번갈아 마주하다가는 마음이 엉망이 될지도 몰랐다. 근처 모텔에 방을 잡은 소호는 끼니 때울 곳을 찾을 겸 주변을 걸었다. 갑자기 인기를 얻은 탓에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할까 걱정했지만, 슬슬 어둑해진 덕인지 아무도 시선을 보내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하기야 청바지에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은 주변에 가득했다. 소호는 내심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도현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알아보는 시선이 있어서는 곤란했다.


그런데 도현은 무엇을 할 생각일까? 소호는 도현의 태도를 떠올렸다. 유튜브에 비공개로 올라온 영상들은 소호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박살 내기 충분했고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보였다. 영상에서 느껴졌던 강렬한 적의를 떠올릴 때마다 소호는 끝났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한데 막상 소호를 대하는 도현의 말투는 미적지근했다.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는 인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애초에 왜 그 영상들을 바로 공개하지 않았는지, 이런 은밀한 방식을 원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입막음을 조건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것도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돈 따위의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면 무엇을? 온갖 가능성의 다발이 소호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곧 그것은 소호를 만나 차분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던 도현이 눈앞에서 미리 작성한 메일을 연예기자들에게 보내고 유튜브 영상을 공개설정으로 바꾸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상상이 되었다.


대로변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소호는 담배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멋대로 연기를 뿜어내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바라볼 작정이었다. 한데 아무도 담배를 물고 있지 않았다. 대신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둘이 자제력 없는 말투로 떠드는 게 보였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한 명도 뒤쪽 골목에서 나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었다. 소호는 건너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골목으로 향했다. 거긴 길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생긴 좁고 지저분한 여백에 가까웠다. 양옆의 건물 외벽에서 실외기가 털털 소리를 내며 더운 바람을 밀어내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길 곳곳에 담배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거길 지나가기 위해서는 바닥의 꽁초와 쓰레기들, 그리고 침까지 밟아야만 했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전부 학생인 건 아닌지도 몰랐다. 다만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소호를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전부 학생이었다. 교복 차림이 아니더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뻔뻔한 눈을 하고서 언제든 충동적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니까. 무사히 골목 밖으로 나선 소호 앞으로 넓은 사거리가 펼쳐졌다. 자동차들이 도로의 선과 신호에 맞춰 경쾌하게 지나다녔고 보행자들은 침착하게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소호도 그들 사이에 섰다. 녹색 불이 켜졌다. 길을 건너던 소호가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그 좁은 틈에다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건너편에 도착한 소호의 얼굴을 증기가 덮쳤다. 작은 만두가게가 호객을 위해 돌출시킨 찜기에서 뿜어진 것이었다. 원래는 분식집이었는데, 생각하던 소호는 과도한 증기로 가려진 가게 내부로 들어가 만두를 주문해 먹었다.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지나 십 분 정도 걸어야 편의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여나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잘못 내리게 될까 봐 소호는 몇 번을 확인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약속 시간에 늦는다면 도현의 심기를 건드리는 꼴이 될 것이었다. 소호는 지도앱을 켠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재 위치를 알리는 점이 도착지를 향해 무사히 움직였다. 중학교 때만 해도 다급한 것은 도현 쪽이었다. 시간에 맞춰 나오지 못하면 맞았으니까. 어쩌다 도현이 그런 어둑한 시간에 불려 나왔더라? 소호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미 친구들이 도현을 그렇게 다뤄왔으니까. 도현을 툭툭 치거나 매점 심부름을 시키는 등의 괴롭힘은 교실에서도 이뤄졌지만, 본격적인 것은 방과 후였다. 그들은 도현에게 담배를 사거나 훔치게끔 시켰다. 당연히 도현을 통하지 않더라도 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현을 통해 구하는 편에는 즐거움이 있었다. 편의점이나 슈퍼에 들어가 애쓰는 도현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보다 즐기기 위해 각자 성공과 실패에 돈을 걸기도 했다. 대개 도현은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씩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담배를 꺼내 보이곤 했다. 운 좋게 사 오거나 잽싸게 훔쳐 온 거였다. 분위기가 과열되어 내기의 판돈이 커지는 날에는 진 쪽이 욕설을 퍼부으며 도현을 마음껏 때리기도 했다. 물론 괴롭히기 좋은 여러 상황을 연출한 것에 불과했다. 영상에서 나오던 자신의 목소리를 듣던 소호는 그 욕설에 달라붙은 즐거움 하나하나를 생생히 떠올려 냈다. 그날 이후로 잠을 설쳤다. 도현에 의해 무너질 위험에 처한 앞날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무언가에 중독된 자신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나 즐거운 일이었나? 고작 그것이? 목소리는 꿈속에서도 그칠 줄 몰랐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소호는 걸음을 멈추었다. 화면의 점이 도착지에 닿아 있었다. 고개를 들자 어두운 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편의점이 보였다. 문을 여니 어서오세요, 하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 도현이 있었다. 소호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다가오는 도현이 보였다. 주위에 진열된 상품들과 함께 이 공간 내부가 팝콘처럼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소호는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현이 꺼낸 말에 소호는 아무런 자세도 취할 수 없었다. 그저 멀뚱히 도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 진짜 소호 맞구나.”

도현이 먼저 손을 내밀어서 소호는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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