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재회(3)

by 박동현

편의점은 대로변 안쪽의 주택가 사이에 있었다. 주변은 빌라와 구식 주택으로 가득했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세탁소나 철물점, 김밥집 따위가 자리한 모습이었다. 밤새 불 켜진 곳이라고는 이 편의점이 전부인 듯했다. 거리는 늦고 외로운 귀가를 하는 이들의 신발 끄는 소리나 영역을 두고 다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정도를 빼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도현은 손님도 물류도 많지 않은 편의점이라 일하기 편한 대신 최저시급은 못 받는다고 했다. 담배를 입에 물어서 발음이 웅얼거렸다. 도현은 피우겠냐며 담뱃갑을 내밀었다. 소호가 즐겨 피웠던 프렌치 블랙이었다. 소호는 손을 내저으며 이제 끊었음을 밝혔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 두세 모금마다 침을 뱉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편의점 앞이 침으로 범벅이었다.


“네 직캠 많이 봤어. 방송도 웬만한 거 다 봤고.”


소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도현은 계속해서 떠들었다. 방송에 나온 소호가 이영자와 신동엽을 폭소하게 만든 순간에 대해, 앞으로 이 기회를 계기로 멋진 모습 보여주겠다고 말한 인터뷰에 대해, 무대의 끝마다 맏형으로서 멤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모습에 대해, 팬사인회에 모인 팬들에게 진심 어린 태도로 건넸던 다짐에 대해, 소호를 무명 시절부터 좋아했던 팬들이 풀어내는 미담에 대해…. 도현은 사인을 부탁했다가 나중에는 사진까지 몇 장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소호는 문득 자신이 도현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와 억지로 섞은 웃음이 밤거리 곳곳을 뒤적거렸다. 누군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밤의 편의점 앞에 선 두 남성을 알아보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대화를 엿듣는 과정에서 둘 중 하나가 소호임을 알아채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었다. 소호는 도현의 어깨를 잡아 편의점 안으로 밀었다. 힘을 쓰자 도현은 가만히 굳어서 저항도 없이 순순히 이끌렸다. 학창 시절의 어느 순간처럼. 소호는 계속 힘을 쓸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손을 떼고 한 발짝 정도 물러났다. 다만 이렇게 된 김에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체 무엇을 바라는 거냐고. 도현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어두워졌다. 내키지 않는 화제인 듯했다.


“소호야, 나는 네 많은 게 까발려지는 상상을 해. 모두에게 실망을 안기고서 고개 숙인 자세로 사라지는 네 모습을 말이야.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도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 말했다.


“근데 이제 다 무슨 소용이야. 그렇잖아? 그렇게 해서 나에게 좋을 게 있을까? 아닌 것 같아. 진짜로. 그러니까… 정말로 네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찾아온 거라면 나를 도와줘. 그게 널 매장시키는 것보다 좋은 일일 거야.”


소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영문 모를 상황에서 무언가 명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픈 조급함 탓이었다. 도현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의 끝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지 못할 순간이라면 최대한 빨리 마주하고 보내는 게 나았다. 어쩌면 이건 연습실을 오가며 보냈던 시간과 비슷한 걸지도 몰랐다. 도현은 핸드폰을 잠시 확인하고서는 어두워졌던 얼굴에 애써 웃음을 섞으며 말했다.


“그럼 사진 먼저 찍어도 괜찮을까? 아직 시간이 좀 있어서….”


소호는 기꺼이 도현과 나란히 섰다. 도현이 먼저 어깨동무를 했다. 소호도 자신의 팔을 도현의 어깨에 걸쳤다. 사진을 찍는 내내 핸드폰을 잡은 도현의 손이 달달 떨렸다. 소호의 어깨에 건 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호는 난데없는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무명 시절부터 음악방송까지 따라오던 팬 하나가 팬사인회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였다. 소호는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린 팬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품에 안긴 몸의 조심스러운 떨림은 앞으로 잊을 수도, 어떠한 경험으로 대체할 수도 없는 순간임이 분명했다. 다만 왜 지금 그 순간이 떠오르는가? 소호는 불길한 마음으로 흔들리는 화면 속 도현의 미소를 유심히 살폈다.


내킬 때까지 사진을 찍은 도현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펼쳤다. 접힌 흔적도 없는 새 공책이었다. 도현은 모든 페이지에 사인을 부탁했다. 그렇게까지 필요하냐며 소호가 묻자, 도현은 집안 곳곳에 부적삼아 붙일 거라고 했다. 소호는 이번 활동기에 앨범과 포토카드 따위에 한참 사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책 정도야 금방이었다.


“봐, 오늘 세 개나 나왔어.”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인 도시락들을 들고 온 도현은 여기서 맘에 드는 게 없으면 파는 걸 골라도 좋다고, 자신이 기꺼이 내겠다고 했다. 소호는 도시락을 챙겨 창고로 향하는 도현을 흘끔거리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사인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날림이 되었다. 노인들 앞에서 무대를 했을 때도 이만큼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호는 밀려오는 짜증을 억누르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번 하루만 잘 버티면 되는 거였다.


편의점 문 위에 달린 종이 요란하게 울린 건 그때였다. 손님이었다. 진열대 쪽으로 슬그머니 피하려던 소호는 계산대를 바라보았다. 자랑스레 펼쳐진 공책을 두고 갈 수 없었다. 다급히 공책을 챙기던 소호는 문득 그 옆에 놓인 가방을 보았다. 무언가 가득 담긴 낡은 가방은 함께 치워야 할 물건으로 느껴졌다. 창고에서 나온 도현이 계산대로 향했다. 진열대 구석에서 고개를 떨군 채 손님이 나가길 기다리던 소호는 무심결에 가방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꽤 가벼웠는데 지퍼가 열려 안쪽이 훤히 다 보였다. 가득 담긴 건 담뱃갑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욱여넣은 건 아니었고 많게는 예닐곱 갑끼리 고무줄로 묶어 잘 구분해 놓은 상태였다. 계산을 끝낸 손님이 나갔다. 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도현이 머쓱한 얼굴로 가방을 돌려받았다.


“봤어?”


소호는 조심스레 그렇다고 답했다. 여전히 지퍼를 닫지 않은 가방을 들고 서 있던 도현은, 이내 결심한 듯 가방에서 꺼낸 담배 묶음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도현은 이게 뭔지 알겠냐며 물었다. 소호는 그 답이 담배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이게 내 부업이거든.”


바로 이해하지 못한 소호에게 도현은 이중원, 김상진, 최준학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소호는 그 이름을 육성으로 듣자마자 발을 헛디뎌 넘어지듯 아찔해졌다. 도현은 그 셋이 강제 전학을 당한 건 아는지 물었다.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그들과 연락을 끊었던 소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현은 그해 여름방학 전부터 자신이 괴롭힘당했음을 입증할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는 그냥 당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도현의 말에는 강한 적의가 되살아나 있었다. 소호는 어쩔 줄 모르는 마음으로 그저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방학이 지난 뒤에도 계속 이어졌던 괴롭힘은, 결국 도현이 모았던 자료를 학폭위에 제출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했다. 곧 졸업이라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던 학교였지만, 워낙 자료들이 집요하여 징계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면서 도현은 한 가지를 고백했다.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게 초여름이었는데, 그즈음 소호는 길거리캐스팅으로 연습생이 되어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기에 모을 만한 자료가 적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은 소호가 하지 않은 일까지 최대한 긁어모아 교묘히 섞어 만든 결과물이라고 했다.


“사실 네가 알아챌까 봐 걱정했었어.”


듣고 보니 숙소에서 밤새 듣고 되새겼던 목소리 중 어떤 것은 도현이 아니라 친구를 향했던 것 같기도 했다. 소호는 운 좋게 도현의 계획에서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지만, 그 영상들이 지금 드러나서는 안 될 시기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소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물론 무엇이 괜찮은지는 전혀 모르는 채였다.


도현은 그 셋을 처리했다는 사실 덕에 알 수 없는 성취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다만 그 기분을 나눌 사람은 없었다. 도현을 주로 괴롭혔던 것은 앞선 세 명이었지만, 도현을 따돌린 건 학교라는 환경 자체였으니까. 졸업하면서도 홀로 그 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어느 날 시작한 것이 담배였다. 그러니까 직접 담배를 구매한 뒤, 피우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을. 도현은 거기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담배를 자연스레 구매하는 자신이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고 했다.


소호의 미간이 구겨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한 달 정도 담배를 사다 보니 뜯지도 않은 담배가 남아돌았다. 특히 입맛에 맞지도 않은 담배들은 억지로 전부 피우기도 곤란했다. 도현은 별생각 없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 담배를 올렸다. 정가보다 오백 원 더 낮춘 가격이었다.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게시글은 지워지고 도현은 사이트에서 강제로 탈퇴되었다. 하지만 이미 구매 의사를 밝히는 쪽지가 잔뜩 도착한 채였다. 도현을 놀라게 했던 것은 웃돈까지 얹을 테니 제발 자신에게 팔아 달라며 사정하던 초등학생들의 쪽지였다. 판매자를 골탕 먹이려는 장난이라 여기면서도 야릇한 기대를 안고 직거래 장소로 간 도현을 맞이한 건 진짜 초등학생이었다. 담배를 전부 처분한 도현은 담배를 판 돈으로 다시 담배를 사서 웃돈을 주고 사겠다며 쪽지를 보낸 초등학생들에게 담배를 팔았다. 곧 도현은 이런 상황이 그다지 드문 게 아님을 깨달았다. 거기서 기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쓸모를 찾은 느낌이라고 했다.


도현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현재로 이르렀다. 지금 일하는 편의점은 사장이 운영하는 여러 지점 중에서 겨우 본전만 유지하는 곳이었다. 사장은 이 지점의 CCTV를 확인하지 않거나 매출에 지장이 없다면야 그냥저냥 넘어가는 게 분명했다. 종종 거래를 위해 문을 잠그고 이십여 분 가까이 나갔다 왔음에도 문제 없이 근무하는 자신이 근거라는 도현의 말투가 은밀했다. 최저시급도 받지 않으면서도 계속 일하는 이유라고 했다.


“요새는 잘 안 팔려. 애들도 전자담배를 피우더라니까.”


그건 도현의 농담이었지만 소호는 웃을 수 없었다. 이 공간에서 혼자 거꾸로 매달린 듯한 기분이었다. 도현은 이 불쾌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소호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지하주차장 내부에 있는 도현의 모습이 보였다. 곧 도현 앞으로 앳된 남자아이 하나가 나타났다. 많이 쳐 봐야 중학생이었다. 둘은 담배 묶음과 돈을 주고받았다. 남자애가 담배를 확인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자리를 떠난 뒤, 돈을 주머니에 넣은 도현이 화면을 향해 손을 뻗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도현은 이게 증거라고 했다. 증거? 차마 눈을 떼지 못했던 소호가 진저리를 치며 도현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도현이 조금 물러났다.


“존나 한심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지?”


소호는 다급히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숨겼다. 그러나 도현은 이미 입술을 부르르 떨며 버려진 아이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소호는 그저 예상하지 못해 당황했을 뿐이라며 도현을 달래 보려 했다. 도현은 편의점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뒤따르려던 소호는 걸음을 멈췄다. 도현은 멀리 가지 않고 문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연기를 뱉으며 눈물을 닦는 그 뒷모습을, 소호는 바라보기만 했다. 그제야 편의점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렸다. 소호 자신의 목소리였다.


줄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도현은 휴지로 눈물과 콧물을 닦으면서도 계속 훌쩍였다. 빨갛게 부은 코끝이 살짝 까져 있었다. 도현은 계산대 안쪽에서 가위를 꺼냈다. 소호는 온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도현이 잘라낸 것은 가방에서 꺼낸 담배 묶음의 고무줄이었다.


“실은 네가 오면 이 짓을 그만두기로 했거든….”


그러더니 도현은 여전히 훌쩍이며 갑작스레 흥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소호는 난감한 마음으로 사과를 받았다.


계산대 위는 금세 담뱃갑으로 어질러졌다. 공간이 넉넉지 않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담뱃갑이 많았다. 도현은 개의치 않고 당장의 가위질에만 몰두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을 주워 든 것은 소호였다. 소호는 흩어진 담배를 모아 종류별로 늘여놓았다. 곧 담배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도현은 소호가 정리한 담배를 계산대 아래 수납장에 일렬로 넣었다. 소호는 죽은 애벌레처럼 주변에 흩어진 고무줄들까지 전부 버렸다. 정리가 끝날 즈음에야 도현은 감정을 추스린 듯했다. 소호는 도현이 만지작대는 마지막 담배 묶음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지?”


도현이 결연한 얼굴로 시간을 확인했다.


“나랑 같이 가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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