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재회(4)

by 박동현

안쪽에서 편의점 문을 잠근 도현은 창고로 들어가더니 곧 건물 뒤쪽에서 나타났다. 출발 직전에 들어온 손님이 느긋하게 술과 핫바를 사 가는 바람에 촉박해진 모양이었다. 도현은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급한 몸짓이었다. 소호도 뒤를 따랐다. 도현은 가로등이 망가져 어두컴컴한 길목에서도 망설임 없이 달렸다. 소호는 방향을 틀 때마다 눈앞에 무언가 우뚝 나타날 것 같아 두어 번 몸을 움찔거리며 멈추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달리던 도현이 담벼락을 넘어가고 있었다. 소호는 그 경쾌한 몸놀림이 부담스러웠다. 어린 시절의 멍청한 장난을 되풀이하는 기분이었다. 담벼락을 마주한 소호의 움직임은 우물쭈물했다. 높아서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서 그랬다.


둘은 작은 공원에 다다랐다. 소호는 담 두어 개 넘어간 것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초조한 듯 두리번거리던 도현은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산책로 외곽으로 소호를 이끌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 구석에서 깜빡이는 빨간 점과 함께 녹화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도현은 가로등의 백색 빛을 쬐고 있는 배드민턴 코트를 가리켰다. 저길 찍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을 멈추면 안 됨을 강조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무 뒤에 숨은 소호는 이게 전부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영상을 찍고만 있으면 끝이냐고.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줘.”


소호는 숨죽인 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도현이 코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도현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자 상대방은 당장 넘기라는 듯 손짓했다. 소호는 그것만으로도 화면 속 둘 사이의 위계를 파악했다. 위축된 건 누가 보아도 도현 쪽이었다. 도현이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건네지 않자, 둘 사이의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물론 그건 일방적이었다. 상대방은 도현과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다가갔다. 뒷모습만으로도 도현이 눈을 내리깔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소호에게도 몇 마디 정도가 들렸다. 물론 별 내용 없는 욕설이었다. 도현이 뺨을 맞은 건 그때였다. 짝, 하는 선명한 소리에 소호는 조금 흥분했다. 상대는 담배를 내놓으라는 듯 도현에게 손을 들이밀었다. 도현이 담배를 내놓는 것으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길어질 거였다. 도현은 담배를 내놓지도, 그렇다고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완전히 굳어버린 듯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상대는 강제로 도현의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는 태도였다.


어느새 소호는 진심으로 도현이 무언가를 보여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몸집은 도현보다 별로 크지 않았다. 몸집뿐 아니라 종합적인 느낌이 그랬다. 둘은 사실 거기서 거기였는데 그들 자신만 모르는 듯했다. 도현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 이상도 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도현이 상대에게 박치기를 먹이는 순간에 소호는 오, 하고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져 나온 소리로 감탄했다. 주머니를 뒤지느라 무방비했던 상대가 코를 움켜쥐었다. 문제는 도현이 거기서 다시 굳어버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자빠져 상대에게 깔린 채 얻어맞기 시작한 뒤에야 손을 뻗어 머리채를 잡는 등 저항하는 도현이었지만 상황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서로 너무 흥분한 탓이었을까? 도현 위에 올라타 있던 상대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도현이 한 손으로 상대를 밀어내고 다른 손으론 코트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래, 좀 해봐, 그대로 밀면 된다고… 소호는 바닥을 짚은 도현의 팔이 꺾이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중얼거렸다. 뒤늦게 자세를 고친 상대가 온몸으로 짓누르려 했다. 소호는 애써 버티는 도현을 보며 이상한 전율에 휩싸였다. 소호는 그 둘이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공원까지 뛰어다니느라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실랑이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관계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듣지 못한 덕에, 도현의 움직임은 간절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화면 정중앙에서 상대와 뒤엉킨 도현이 불빛 아래서 힘을 겨루는 모습은 음악이 사라진 무대에서 펼치는 안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꽤 버틴 도현이었지만, 힘이 전부 빠졌는지 결국에는 다시 상대에게 짓눌리고 말았다. 소호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다시 아래로 깔린 도현은 일 분 정도 더 맞았다. 상대 역시 지쳐 있어서 심각한 상황이 되진 않았다. 느릿느릿 주먹을 들어 내리치는 반복에 불과했다. 더러운 꼴을 보았다는 듯 도현을 내려다보던 상대는 두어 번의 발길질을 끝으로 공원을 떠났다.


코트에 홀로 남겨진 도현은 조명이 꺼지길 기다리는 배우처럼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암전도 박수도 없었으나 바라보는 소호는 있었다. 두세 번 휘청거리며 다가온 도현은 전부 찍었느냐고 물었다. 도현이 입을 열 때마다 피가 묻은 이빨이 언뜻 보였다. 소호는 핸드폰을 도현에게 넘겼다. 도현은 바로 편의점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괜찮지만 물류 기사를 기다리게 하면 곤란하다면서. 풀린 다리 탓인지, 담벼락을 올려다보던 도현은 가로등이 멀쩡하게 솟은 아스팔트 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둘은 걷다 뛰었다 다시 걸으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미 도착한 물류 기사가 도시락과 빵을 담은 플라스틱 상자를 잠긴 문 앞에 쌓아두고 있었다. 기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도현에게 뭐라 툴툴거린 다음 트럭을 타고 떠났다. 편의점으로 들어간 소호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손을 떠는 도현 대신 빵과 도시락을 정리했다. 손님이 오면 구석으로 피할 셈이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도현과 실랑이를 벌였던 상대는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고등학생인 건 아니고, 수시로 개설과 삭제를 반복하는 SNS 계정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중학생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딱 한 번 담배를 정가에 팔 수 없냐고, 나머지 금액은 다음 거래 때 얹어주겠다며 애걸복걸한 적이 있었다. 그 애걸복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도현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도현은 그게 둘 사이의 마지막 거래일 줄 알았다고 했다. 애당초 서로 다시 만날 이유가 없는 사이니까. 그러나 이듬해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다시 도현에게 연락해 담배를 구매했다. 다음에 주겠다던 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채였다. 도현은 문득 불길해졌다. 아이가 돈을 얹어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도현을 대하는 태도 탓이었다. 머지않아 도현은 확신했다. 아이가 자신을 얕잡아보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아이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외상은 안 되느냐며 아이가 요구했을 때, 도현은 저도 모르게 승낙하고 말았다. 담배가 급하니 어서 구해 오라는 재촉에도, 받지 못한 채 쌓이는 외상에도 따지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됐다. 도현은 자신이 어떤 시간에 멈추어 버렸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즈음에 화제가 된 소호의 직캠을 본 거였다.


“네 영상 보면서 내가 뭘 느꼈는지 알아? 사람이란 변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거였어. 그렇잖아? 지금의 너처럼….”


그러나 소호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도현을 괴롭히며 느꼈던 즐거움이 낯설어졌다고 그걸 변화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건 잠깐의 시절에 불과했다. 감기에 걸렸다 낫듯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질 필요는 없었다. 공원에서 몸싸움을 벌인 두 사람의 사연처럼,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자잘하고 시시해지는 법이니까. 그런 사실 따위는 공백 아래로 던져두는 게 나았다. 소호는 도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아직 사인을 덜 했으니 공책을 달라고 했다. 눈이 동그래진 도현은 계산대 아래에서 꺼낸 공책을 내밀었다. 소호는 다시 사인을 시작했다. 그 사인은 회사에서 만들어 준 것으로, ‘소’의 모음의 끝을 길게 늘여 만든 둥근 동산에 미소를 지으며 떠오르는 해를 그리면 그것이 ‘호’가 되는 식이었다. 그 대책 없이 해맑은 사인을 연습하는 건, 모양에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속이 뒤틀려지는 느낌에 익숙해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능숙하게 해의 미소까지 그린 소호는 그전에 쓰지 않았던 문구를 덧붙였다.


항상 응원할게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사인을 마친 소호가 공책을 내밀었다. 도현은 공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인을 확인했다. 그건 여태 보인 도현의 모습 중에서 가장 느리고 신중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공책을 덮은 도현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서는 소호와 자신의 모습을 아무렇게나 찍기 시작했다. 기념사진이라기보단 소호와 자신의 모습을 한 화면에 집어넣기 위한 행위에 가까웠다. 소호는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끝나지 않았음에 충격을 받으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다니던 도현은 지금이 몇 년도 몇 월 며칠 그리고 몇 시인지를 과장하여 발음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찍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호의 중학교 동창 이도현입니다. 저는 오늘 소호에게 정중한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끝난 일입니다. 혹시 다른 누군가가 이 일을 폭로한다면 그것은 저희끼리 잘 마무리한 일을 다시 꺼내는 일이 될 겁니다. 어쩌면 제가 폭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저와 소호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닙니다. 제 감정 기복으로 인해 약속을 어기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에 불과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초코맛 츄러스 과자는 이번 달 오리온에서 나온 신상품입니다. 때문에 이 영상은 조작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소호를 비난하고 있다면 이 영상을 보고 멈추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소호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소호는 모텔 전화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 화면을 켰다. 퇴실 30분 전이었다. 손에 든 것은 자신의 핸드폰이 아니었다. 소호는 누가 옆에서 자는 게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다른 이의 흔적은 없었다. 소호는 뒤늦게 그 핸드폰이 도현에게 받은 공기계임을 기억해 냈다. 도현은 유튜브에 올렸던 영상들과 관련된 것들 전부를 세상에서 아예 지워 버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며 자신과 소호의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됐음을 알리는 영상을 찍은 공기계를 소호에게 건네준 거였다. 거기에는 자신이 담배를 판매했다는 증거도 있다고. 도현은 만약 자신이 그 영상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폭로한다면, 거기에 담긴 사진과 영상들을 이용해 역으로 자신을 매장시키라고 당부했다. 사진첩에는 도현이 말한 증거로 가득했다. 도현이 담배 판매를 위해 만든 SNS 계정부터 스스로 담배 거래 과정을 촬영한 영상, 편의점에서 소호와 찍은 사진, 그리고 소호와의 문제를 해결했음을 설명하는 영상까지…. 소호는 도현이 마지막으로 건넨 말을 기억해냈다.


“나를 믿지 마. 나라면 절대 안 지울 거야.”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소호는 공기계에 담긴 사진과 영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추잡한 기록을 들추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 빠진 듯했다. 모든 사진과 영상을 확인한 소호는 공기계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알아챘다. 바로 소호 자신이 촬영한, 도현과 고등학생이 공원에서 벌인 몸싸움을 찍은 영상이었다. 주로 핸드폰 화면을 통해 보았던 그 광경을 떠올리는 소호 곁으로 누군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혹시 소호 아니예요?”


소호는 공기계 화면을 껐다.


“맞죠? 혹시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가온 여자를 바라보던 소호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확인한 뒤 알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은 여자는 지금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적으로 삼고 싶다면서 응원을 담은 사인을 부탁해도 되는지 물었다. 물론이라고 답한 소호에게 여자는 자신의 문제집 맨 앞장을 펼쳐 내밀었다. 소호는 자연스레 다음과 같이 사인했다.


소호

항상 응원할게요!


저기요… 저기요…? 여자의 당황한 얼굴을 본 소호는 그제야 자신이 문제집을 너무 강하게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문제집의 표지가 구겨져 있었다. 뒤늦게 손에 힘을 뺀 소호는 여자에게 연신 사과했다. 여자는 괜찮다고, 자신도 항상 응원하겠다고 답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소호는 서둘러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퇴하는 풍경과 겹쳐진 얼굴이 보였다. 서울까지는 이제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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