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모래밭에 털썩 앉았다. 친구들이 놀이기구 위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거기 있으면 너 술래야.
예나는 노란 스니커즈를 가지런히 벗었다. 양말까지 벗자 까진 뒤꿈치가 나타났다. 발등과 새끼발가락에는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심지어는 발목까지도 뻐근했다. 예나는 이 영문 모를 상처를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왜 이런 게 발에 생기는 걸까.
-너 술래라고!
머리 위에서 몸을 기울인 친구들이 예나를 재촉했다. 예나는 고개를 들어 외쳤다.
-이따가 한다고!
친구들은 바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는데, 그걸 본 예나는 속이 픽 상했다. 통증을 견딜 수 없어서 잠깐 내려온 건데 친구들은 자꾸만 달달 볶으며 재촉했다. 예나 때문에 놀이가 시시해졌다는 거였다. 곧 깔깔 웃으며 노는 친구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예나는 튀어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친구들이 이상하게 볼 게 뻔했다. 눈물을 집어넣으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노란 스니커즈는 새엄마가 생일선물로 고른 신발이었다. 새엄마는 조금 우물쭈물하며 신발을 내밀었고 예나는 난감한 마음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받았다.
새엄마가 들어온 이후로 집안은 설명서대로 맞추지 않은 블럭마냥 어딘가 어색했다. 예나는 일부러 노란 스니커즈를 신었다. 아빠가 좋아해서였다. 잘 신고 다니네.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예나를 본 아빠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때면 예나는 아빠를 돌려받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였지만 집안의 공기도 익숙했던 때로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뛰어논 뒤부터 발 곳곳이 아팠다. 뒤꿈치에 상처가 난 것도, 물집이 난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그 상처를 처음 발견한 건 새엄마였다. 뒤꿈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새엄마를, 예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헷갈렸다. 손길을 피할 정도로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얌전히 따르기엔 괜한 심술이 났다. 새엄마에게 소식을 들은 아빠가 말했다.
-신발이 좀 컸구나. 한동안은 다른 신발을 신으렴. 이 신발은 네 발이 커지면 딱 맞을 거야. 그때는 아프지 않을 거란다.
그러곤 아빠는 새엄마에게도 슬쩍 던지듯 말했다.
-당신이 고른 사이즈로 살 걸 그랬어.
반창고를 붙인 지 이틀도 안 돼서, 예나는 다시 노란 스니커즈를 신었다. 그걸 본 새엄마가 저기, 아직은, 하고 부르며 새 신발을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예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술래가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예나는 물집을 계속 만지작댔다. 물집은 어제 터뜨려서 쪼그라든 풍선 같았다. 아빠가 꺼낸 실과 바늘이 무서워 그냥 손톱으로 찢어 터뜨린 거였다. 그렇게 빈 주머니가 된 물집이었지만 아픔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뒤꿈치에 붙인 반창고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노란 스니커즈를 계속 신어야만 했다. 다른 신발을 신기에는 하루가 너무 불안하고 쓸쓸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새엄마가 미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나는 아빠가 고른 5밀리미터 때문에 울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발만 커지면 될 거였다. 그럼 신발이 맞을 테고, 발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였다. 친구들과 놀다 눈물을 참으며 눈치 볼 필요도 없을 거였다. 예나는 발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꼼지락거렸다. 어서 그런 날이 오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