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by 박동현


설레이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아무도 내게 말 안해

가르쳐 주지 않아


디지몬 어드벤쳐의 엔딩곡을 들으며, B는 마음이 울적해졌다. 선택받은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처지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서였다. 안녕 디지몬, 네 꿈을 꾸면서 잠이 들래. B는 그 멜로디를 들으며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곧 노래가 끝나면 디지털 월드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듯한 수많은 광고와 뉴스가 B의 마음 따윈 신경도 쓰지 않으며 시끄럽게 떠들 거였다. 그건 곧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식탁에 모여, 온 가족 세 명이. 그러나 오늘은 두 명이서 먹어야 했다. 엄마가 잠시 이모네로 갔으니까. 평소와 달리 식탁은 텅 비었고 대신 아빠가 시켰던 도미노피자 박스가 아직 열리지 않은 모습으로 식어가는 중이었다. 디지몬 끝났어요. B가 거의 닫혀 있던 안방 문틈에 대고 말했다. 곧 아빠가 입을 굳게 닫은 모습으로 나왔다. 아빠는 B를 앉히고 접시와 컵을 식탁에 놓았다. 냉장고에서 마운틴듀를 꺼냈고 피클 국물을 싱크대에 졸졸 흘렸다. 미지근해진 피자를 뜯어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뜨끈하게 익은 피자 냄새가 퍼졌다. B는 핫소스와 치즈가루를 듬뿍 뿌려 먹었다. 쩝쩝대며 피자를 먹는 B의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아빠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B는 내색하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싸움도 없었다. 브로콜리와 호박 대신 피자를 먹을 수도 있었다.


피자 세 조각을 해치웠을 무렵에 아빠가 B를 불렀다. 네 생각이 궁금하단다. 엄마랑 아빠는 이제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 엄마도 아빠도 너무 널 사랑하지만 더는 셋이서 살 수는 없단다. 아빠 말 알겠니? B는 고개를 끄덕이며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컵의 밑바닥이 아빠에게 보이도록 고개를 들었다. 네가 정하렴. 아빠랑 엄마 중에 누구랑 살고 싶은지. 네 생각이 궁금해. B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도 잠시 기다렸다. B는 여느 때처럼 기다리기만 하면 지나갈 순간이라 믿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네가 아빠랑 살았으면 좋겠어.


삐삐. 삐삐. 소리가 난 건 그때였다. B는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식탁에서 내려와 잽싸게 방으로 뛰어갔다. 돌아온 B의 손에는 디지몬 게임기가 들려 있었다. B는 대답을 기다리는 아빠 앞에서 게임기를 조작했다. 삐빗. 삣. 소리를 듣던 아빠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아빠가 얘기하잖니. 대답 대신 삑, 소리가 났다. 아빠가 손을 뻗어 B의 게임기를 빼앗으려 했다. 게임기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긴 B가 원망스런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랑 얘기하고 있잖아. 아빠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지금 똥 치워줘야 한다고요. B는 게임기를 마저 조작했다. 제때제때 밥도 주고 약도 줘야 제대로 진화한단 말이야. 계속 울면, 계속 울게 두면 다 늦는단 말이에요. 아빠는 의자에 앉아 B의 게임기 조작이 끝나길 기다렸다. 뜻 모를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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