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실러

by 박동현

“왜 이렇게 나약해졌어, 이 자식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영호를 끌어안으면서 내가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날 영호는 혼자 방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수면제를 한 움큼이나 삼켰다고 했다. 운 좋게도 연락이 안 되는 게 이상했던 내가 구급차를 부른 덕에 죽지 않은 거였다. 그때 이미 세 번째 시도였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면 죽기보다는 구토를 한다는 건 영호 덕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매번 영호가 쓰러진 방은 사방으로 튄 토사물 천지였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안간힘으로 구토를 참았다고 했다. 당시 영호의 턱관절은 탈구가 돼 있었고 입술은 이빨에 눌려 찢어질 정도로 푹 패여 있었다. 어떻게든 손으로 막아보려다 그랬다는 거였다.


영호는 차도로 돌진한 오토바이에 얼굴이 갈린 탓에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강제로 중단했다. 진물을 줄줄 흘리는 얼굴의 상처들은 회복이 더딜 뿐 아니라 지워질 가망이 없는 흉터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영호는 소속사와 합의하여 계약을 해지했다.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신세가 된 것이었다.


영호는 병문안을 온 내게 미안해하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뭐를?”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는 거 말이야.”


나는 영호에게 제안했다.


“이제 아이돌에서 미련은 버려. 대신 운동을 하자.”


일종의 자살 중독 치료라고 할까. 몸이 힘들면 마음이 힘들 새가 없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운동을 시작했다. 힘도 세지고 그만큼 근육이 불어 덩치가 배는 커졌다. 나는 단순히 벌크 업에 그치지 말고 어떤 목표 의식을 갖자고 얘기했다. 이내 누가 우리에게 직업을 물어본다면, 우리는 ‘보디빌더’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곧 영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연습생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목표가 생기자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운동 후 정말로 지쳐서는 약은커녕 물이나 벌컥벌컥 들이켜고 바로 곯아떨어지곤 했다. 우연히도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는데, 영호는 역경을 딛고 일어난 인간군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인터뷰 영상에서 영호의 얼굴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나오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튜버가 영호 얼굴에 컨실러를 발라 주었기 때문이었다.


“잘 됐다. 이렇게 가리면 없던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내가 말하자, 영호는,


“대단해. 역시 네 덕이야.”


라고 답해 주었다.


이후 영호는 매일 얼굴에 컨실러를 발랐다.




보디빌딩 대회를 마친 우리는 안면 있는 참가자들끼리 모여 연탄 삼겹살 집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오늘 가장 성적이 좋았던 영호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았다. 두껍게 바른 컨실러 덕에 얼굴이 아주 멀끔했다. 나는 수면제를 한 주먹씩 입에 욱여넣던 시절의 영호를 떠올리고서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래도 내 덕에 영호가 살았구나. 내가 영호를 살렸구나. 역시 몸이 강해지면 마음도 강해지는 법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약간 취기가 기분 좋게 올라와서는 서로 자기의 힘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곧 서로 으스대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간단한 게임과 함께 벌칙으로는 딱밤 때리기를 제안했다. 나는 영호를 생각하며 얼굴 대신 손목 때리기로 바꾸자고 했다. 곧 분위기는 왁자지껄해졌다.


“다들 빼는 거 없기야!”


내가 소리쳤다.


그렇게 서로의 손목을 때리며 돌고 돌아 내가 영호를 때릴 기회가 왔다. 영호는 그게 처음 손목을 맞는 거였다. 손목을 걷어 올리는 내게 영호가 반대쪽 손목을 내밀며 이쪽 팔을 때리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거 없다고. 다들 왼손을 맞는데 너 혼자 오른손을 맞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게 공평한 거야.”


나는 손을 번쩍 들어서 내리쳤다. 뺨 맞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자리의 모두가 우오-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괜히 으쓱해져서는 맥주를 마시다가 잔에 묻은 피를 발견해냈다. 갑자기 무슨 피? 그것은 내 손에도 묻어 있었고, 심지어 아직 마르지 않은 채였다. 자세히 보니 피만 묻은 게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도 함께 묻어 있었다. 손가락을 비벼 보니 덩어리지기 시작한 그것은 컨실러였다. 피와 섞여서 거무튀튀해진 컨실러 덩어리를. 손가락에 얹어진 코딱지만 한 크기의 그것을. 나는 뒤늦게 바라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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