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by 박동현

길을 걷다가 어느 남자가 울고 있는 걸 보았다. 그를 어떻게 만났느냐면, 정말 우연히도… 아니, 솔직히 말하겠다. 맥주를 너무 들이켰던 바람에 오줌이 마려웠다. 급했던 나는 오줌을 눌 만한 골목을 찾고 있었다. 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그런 정도의 골목을 원했다. 쓰레기통 옆에 앉아 울던 그 남자를 진즉에 보았다면 자리를 피했겠지만, 이미 그가 있는 줄 모르고 오줌을 쏘아대기 시작한 후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혹여나 달려들면 그쪽으로 오줌을 갈겨버리겠다고 다짐하며 그를 흘겨보았다. 남자의 머리와 수염은 보통 떡진 게 아니라서 오래되고 낡은 밧줄을 폐기름에다 푹 담갔다 꺼낸 듯했다. 거무죽죽하게 때 탄 피부는 흐린 빛 아래서도 보였다. 꽤 오랜 노숙 생활을 한 듯했다. 바로 옆에서 오줌을 누는데도 그는 내 쪽을 바라본다거나 자리를 피한다거나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나는 멈추지 않는 오줌이 벽을 타고 남자에게로 흐를까 싶어 방향을 조금 틀었다. 오줌 소리가 민망하게 쪼르르 울려서, 그걸 가리고자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 울고 있느냐고. 그는 아내가 죽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아내가 죽은 게 맞는지, 아내가 있기는 했는지, 아내가 죽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캐물었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아내 이야기를 하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탈탈 털고 바지를 끌어올렸을 때가 되어서야 남자의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까만 바퀴벌레의 등껍질 같은 눈이었다. 깊다기보다는 눅진하고 찐득하며 경계선이 옅은 눈. 나는 보다 밝은 곳에서 그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 남자에게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겨우 저었다. 그의 눈동자가 내게 고정된 채로 얼굴만 움직여서 흰자위가 좌우로 언뜻언뜻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왜요, 하고 물었다. 그는 너무 굶어서 힘이 없다고 했다. 마침, 내 손에는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과연 그는 배고픈 게 분명했다. 하도 게걸스럽게 먹어 입가와 손에 하얀 반죽이 찐득하게 묻은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내가 그에게 준 건 부침가루였다. 다가올 명절을 대비하여 슈퍼에서 산 거였다. 밀가루와 달리 부침가루는 간이 좀 돼 있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뿌듯했고 손에 좀 부어 주었던 부침가루를 봉지째로 그의 손에 얹어 주었다. 그는 나를 흘끔 보더니 바로 손에 얹어진 부침가루를 향해 혀를 내밀고 얼굴을 박았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흰 가루가 안개처럼 피어났다. 덕분의 그의 눈이 더 돋보였다. 어찌나 숨을 거칠게 쉬던지 그의 얼굴엔 부침가루가 곳곳에 묻었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서투른 분칠을 떠오르게 했다. 그의 눈을 보니,


눈밭에 던져진 바퀴벌레가,


추위 한복판에 버려진 찐득한 어둠이,


득한 어둠이 추위와 외로움에 몸을 떨고 있는,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곧 켁켁거리며 부침가루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가 손짓으로 목이 마르다고 해서 나는 바로 봉지에 있던 이 리터짜리 생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곤 실수를 가장하여 생수병을 세게 쥐어서 그의 얼굴에 물을 한 번 부었다. 어이구, 급하게 꺼내다가, 나는 그렇게 사과했다. 그는 관심도 없다는 듯 생수병을 잡아 들이켰다. 그러곤 다시 부침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물 때문에 부침가루가 찐득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혀와 손을 이용해 먹었다. 그의 모습은 이제 백색 페인트를 거칠게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건 꽤 만족스러웠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이만 일어나서 어디든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여기서 계속 계시면 안 돼요, 떠나간 부인께서도 슬퍼할 거예요, 이렇게 말을 끝내자 그는 스위치라도 켜진 듯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는 묻었던 부침가루 반죽이 마르기 시작한 얼굴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에게서 악취가 몰려왔다. 곧 명절인데 씻기라도 하셔야죠, 제가 목욕비는 드릴 테니 어서 찜질방 같은 데서 잘 씻고 푹 주무세요, 나는 그에게 현금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냄새가 너무 심하니 향수라도 뿌려 드릴게요, 나는 품에서 향수를 꺼내 그의 머리 위에다 뿌렸다. 곧 그에게서 나던 악취는 향기와 뒤섞여 정체불명의 냄새가 되었다. 나는 그 냄새가 선명히 새겨지도록 반복해서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아쉽게도 나는 곧 자리를 떠났는데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언제까지나 골목에 머물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은 잠깐의 일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선명했다. 골목에서 본 남자의 눈을, 몇 걸음 걷다 뒤돌아서 그의 행복을 바라는 척 손을 흔들며 보았던, 골목에 몸이 끼기라도 한 듯 계속 앉아만 있던 그 모습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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