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by 박동현

아무리 들여다봐도 종아리에서 특별히 찾을 수 있는 건 없었다. 한껏 구기고 비빈 종이 같은 질감의 피부와 거기에 힘없이 솟은 털, 검거나 붉은 점들이 전부였다. 피부과를 여러 번 옮기며 바지를 걷어도 의사들은 별다른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보습이 중요하다며 매일 종아리에 로션 등을 바르기를 권유할 뿐이었다. 실제로 나는 의사의 충고를 지키며 목욕을 끝낼 때마다 종아리에 로션이나 바세린 따위를 얇게 펴 바르곤 했다. 기분 탓인지 정말로 가려움증이 호전되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줄곧 넘어져 까지곤 했던 무릎과 같이, 종아리의 가려움도 지난 시절의 상처로 승화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가려움은 다시 나타났다. 며칠 전에는 평소보다 두어 시간을 일찍 깨고 말았는데, 꿈도 소음과 같은 외부의 충격도 없이 어떻게 이 시간에 깨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물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절반쯤 잠들어 의식이 흐리멍덩한 채였다. 그때 다리 어딘가에서 가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흐리멍덩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발바닥으로 다리를 벅벅 문질렀다. 그러자 가려움은 더욱 거세졌다. 가려움의 모양새를 볼 수만 있다면, 아마 그 모습은 불과 같았으리라. 얇고 넓게 퍼진 불길이 다리에서 점점 번지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눈을 뜨지는 않고, 그저 계속해서 다리를 긁었다. 처음에는 방향성 없이 아무 곳이나 긁었다가, 이내 종아리의 가려움임을 알아채고는 손가락 네 개를 붙여서 손톱을 최대한 직선으로 이은 뒤 종아리 위에서 길게 좌우로 움직였다. 종아리뼈를 따라 움직이는 손을 의식하다 보니 철로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기차의 이미지가 선명히 그려졌다. 기차는 철로 위에서 사정없이 앞뒤로 움직였다. 바퀴와 철로가 계속 마찰하면서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과열로 연기가 나도 기차는 멈출 줄을 몰랐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바로 종아리를 바라보았는데, 그때까지도 내 손은 종아리 위에서 멈추지 않고 좌우로 움직였다. 손톱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다. 계속 긁다가는 살이 까지고 피가 흐를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집념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달콤한 꿈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아보는 정도의, 아주 사소하지만 간절한 집념이. 적어도 매끈한 손톱 끝만을 이용하여 칼질하듯 긁고 있었으니 쉽게 피부가 까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종아리를 긁는 것은 점점 수색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가죽 아래에 매장된 무언가가 발굴되기 직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어떤 쾌감의 부피감이 가죽과 종아리뼈 사이에 존재했다. 정확히 짚어내기 위해서는 자꾸 긁어볼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만족감이 그 아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긁어도 가죽 아래의 쾌감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쯤이면 내게 무언가 터져 나와야 하는데…… 다리에 피가 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손톱으로 느껴지는 부피감이 생생했다. 선명한 예감이 한 발짝 앞서서 걷고 있었다. 붙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팔이 짧았다. 보다 성큼성큼 걸었다. 다리가 짧았다. 아예 달려 보았다. 오히려 걸을 때보다 느려졌다. 절대 닿을 순 없는데, 정말 너무 바로 앞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정말로 다리에 피가 나기 직전이 되고 말았다. 표면이 얇게 벗겨진 피부 전체가 쓰라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가려움은 여전히 올라오고 있었다. 차마 계속 긁지는 못하고 손톱으로 피부를 꾹꾹 누르다가 나중에는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렸다. 종아리가 불탈 것 같아서 손부채질도 했다. 대체 왜 그랬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종아리를 씻었다. 열감이 가라앉을 때까지 찬물을 끼얹었다. 가려움을 씻어낸다는 느낌으로 비누칠까지 했다. 달라붙은 가려움이 비누와 함께 헹구어지기를 바라면서. 물기를 닦고 나와서는 바로 바디로션을 종아리에 발랐다. 나는 조금 긴장된 채로 종아리를 바라보았다. 로션을 발라 번들거리는 피부에서 다시 가려움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너무 오래 긁은 탓에 얼얼하기는 했지만 걱정하던 수준의 가려움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제야 이른 아침의 고요한 시간성을 느낄 수 있었다. 누워서 눈을 감자 뒤늦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가 누운 자리에서 안도와 아쉬움이 찰랑거렸다.






그날 저녁, 목욕을 끝마친 나는 언제나처럼 종아리에 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그때 손끝으로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들여다보니 아침에 긁었던 부위에 작고 붉은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나 있었다. 분명히 가려움과도 관련이 있을 그 두드러기는 환부라고 부르기 적절해 보였다. “드디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의사에게 보여줄 것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의사에게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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