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와 입맞춤

by 박동현

다리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슬쩍 보았을 때, 거기에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검정 색깔의 바퀴벌레는 내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였고 몸통은 다소 납작했다. 기겁하며 다리를 털어내려던 찰나, 납작한 바퀴벌레의 겉껍질 아래에 삐져나온 얇고 투명한 날개를 보게 된 나는 바퀴벌레가 내 귓전에서 날갯짓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울기 직전의 상태가 되며, 차라리 바퀴벌레에게 물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퀴벌레는 내 허벅지 위에까지 올라왔는데 거기서 더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엎드렸다.


한데 그렇게 되는 동안 나는 바퀴벌레에게 이유 모를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은 바퀴벌레의 걸음걸이 때문이었다. 바퀴벌레의 걸음걸이는 아주 느리면서 보폭이 컸는데, 왠지 자신의 뾰족한 발끝을 견뎌낼 나의 입장을 배려한 움직임 같았다. 또한 그렇게 허벅지에까지 올라온 벌레는 좌우를, 혹은 내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빙글빙글 돌아다니지 않고 아주 가만히, 그래서 고요하게 멈춘 자세로 한 쌍의 긴 더듬이만 번갈아 위아래로 흔들었는데 그 리듬이 경박하지 않았고 마치 행성 모양의 모빌이 유유히 일정 궤도를 돌듯이 느리고 일정했다. 나는 이 바퀴벌레에게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바퀴벌레가 친근해지자 내 허벅지 위에 얹어진 뾰족한 여섯 개의 발바닥이 주는 미세한 간지러움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유하자면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에게 뽀뽀를 받는 느낌이었다.


굳었던 몸이 풀어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바퀴벌레의 등을 약지로 쓰다듬었는데 벌레는 돌연 자신의 등껍질을 좌우로 높게 들어 올렸다. 내가 몸을 들썩이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도 바퀴벌레는 허벅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등껍질을 든 자세 그대로였다. 허벅지를 붙든 여섯 개의 다리에서 약간의 힘이 느껴졌다. 나는 바퀴벌레의 어디를 쓰다듬으면 좋을지 고민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머리 혹은 등껍질이 열림으로써 드러난 잘 포개어진 투명한 날개였는데, 왠지 머리를 잘못 쓰다듬었다가는 거대한 꿀밤을 맞는 기분일지도 몰랐고, 그렇게 머리를 맞는다면 벌레도 사람처럼 화가 나겠거니 싶었다. 날개를 쓰다듬기로 했는데 이 얇은 날개를 잘못 만졌다가는 찢어질 것만도 같아서, 쓰다듬기보다는 살짝만 눌렀다 떼기로─마치 고양이가 부드러운 박치기로 호감을 표현하듯이─했다. 과연 바퀴벌레는 내 손길에도 얌전했다. 더듬이 움직임의 리듬이 다소 경쾌하게 변했는데 그건 누가 보더라도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서로를 조심스레 만지던 시간이 얼추 지나자, 나는 슬슬 바퀴벌레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입맞춤을 가로막은 건 종의 차이가 아니었다. 바퀴벌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지간하면 더러운 곳에서 지내왔을 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은 꽤 고층의 오피스텔이었는데 바퀴벌레가 여기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바람을 견디며 벽을 타고 올라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시야에 드러나지 않는 어둡고 습한 길을 지나왔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나는 바퀴벌레가 위기의 순간에는 초월적인 IQ를 뽐낸다는 식의 여러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고 그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비율 덕에 지금까지도 내게 종교적인 믿음으로 남아 있었다. 이야기에는 바퀴벌레가 사실 청결한 벌레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다만 바퀴벌레가 병균을 옮기는 것은 살아가는 환경과, 일종의 방진복 역할을 해내는 겉껍질에 균들이 잔뜩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바퀴벌레가 등껍질을 치켜세운 것은, 서로의 부드러운 피부를 만지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오염된 자신의 더러움을 걱정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바퀴벌레를 씻겨 주기로 했다. 굳이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우연히 동물들을 만나서 잠시나마 함께 지낼 때 목욕을 시켜주는 건 당연했고 바퀴벌레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바퀴벌레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바퀴벌레가 비누까지 먹는다는 이야길 본 적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비누칠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듯했다. 그건 간장이나 고추장 혹은 식초 등에 사람을 푹 담그는 일과 비슷한 일인지도 몰랐다. 나는 한쪽 손으로 비누거품을 내어서 그 거품을 받아둔 물에 풀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바퀴벌레의 등과 배를 조심히 집었다. 발 디딜 곳이 없다는 불안감 탓인지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다리들이 보였다. 배 쪽을 잡은 엄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여섯 개의 다리가 손가락을 편안히 잡을 수 있도록 조절했다. 그제야 내 엄지손가락을 끌어안은 바퀴벌레는 안정감을 찾은 듯했다. 나는 거품을 섞은 물에 바퀴벌레를 엉덩이부터 조심히 집어넣었다. 혹여나 숨이 막힐까 싶어 얼굴까지 담그지는 않았다. 나는 바퀴벌레를 물에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고 있으니 물이 바퀴벌레의 꽁무니부터 천천히 탁해지는 것 같았다. 해냈다는 생각에 신이 난 채로,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럽게 바퀴벌레를 씻겼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목욕에 바퀴벌레는 지쳤는지 더듬이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키친타월을 뜯어와 그것으로 바퀴벌레의 물기를 조심스레 닦았다. 그건 닦는다기보다는 두드리는 것에 가까웠다. 물기를 더 잘 말려주고픈 마음에 드라이기의 바람을 약하게 하여 멀리서 온풍을 쐬어주었다. 나는 어서 징그럽다고 느꼈던 바퀴벌레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고 왠지 그 순간은 감정의 변화가 아주 극적이었던 만큼 보다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 감촉을 상상하던 순간, 바퀴벌레의 더듬이 한 짝이 바람에 날아갔다. 놀란 나는 바퀴벌레가 살아있는 게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툭툭 건드렸는데, 살아 있는 벌레가 바닥을 붙들고 있는 탄력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살살 건드렸을 뿐인데도 바퀴벌레는 이리저리 무게감 없이 비틀거렸다. 어디에 상처가 난 게 아닐까 싶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징조를 찾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바퀴벌레는 아주 깨끗했으며 묘하게 톡 쏘는 생강 냄새가 나는, 그야말로 청결한 상태였다.


나는 검정 색깔의 바퀴벌레와 이 비누 향기의 조화로움과 탈진, 혹은 죽어가고 있는 이 벌레의 상태를 번갈아 느끼다가 서서히 끔찍해졌다. 그건 죄의식에 가까웠다. 나는 벌레를 이리저리 건드리다가 벌레를 분해해서라도 그 원인을 찾아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벌레는 아직 죽지 않았고 나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이 비누는 평범한 비누가 아니라, 생강향이 나는 천연비누였는데, 친구에게 받아서 꽤 요긴하게 사용하던 것이었다. 혹시 벌레에게 좋지 않은 성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생강향이 나니 분명 생강도 조금이라도 들어갔을 텐데 생강의 독함이 바퀴벌레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이 비누를 제조한 곳이 어딘지는 이미 포장지를 버린 뒤라서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비누 아느냐고, 어디서 샀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깊은 밤이었으니까.


결국 바퀴벌레에게로 돌아온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움직임이 멈춰버린 바퀴벌레의 꽁무니에서 커다란 알집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나는 아주 난처해지고 말았다. 알집에 들어있는 어린 바퀴벌레들은 어쩌면 씻길 필요도 없이 깨끗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병균이 없으니 기꺼이 입을 맞출 수 있었겠지만 나는 죽은 벌레와의 추억을 그의 자식들로 대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슬픈 마음으로 바퀴벌레와 알을 종이컵에 담았고 컵 주둥이를 아주 살짝만 접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나는 종이컵을 근처 화단 구석에 놓았다. 알이 부화한다면 새끼들은 죽은 바퀴벌레를 먹고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었다. 다시는 바퀴벌레와 친해지지 말아야지. 입맞춤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발바닥이 간지러웠는데 거기에는 떨어져 나갔던 더듬이 한 가닥이 절반으로 꺾인 채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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